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11)

다중언어 가정의 웰빙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가 얼마나 바쁜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태어나서 몇 주가 흐르면서 제법 단단해진 아가는 옹알이를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부모는 옹알이를 적극적으로 말로 바꾸어가며 아이에게 말을 전수한다. 이때 한 가지 말을 전수하기도 정신없는데 두 개, 심지어 세 가지 이상의 말을 가정에서 사용하기도 하는 가정, 게다가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상상해 보면 다중언어 환경에서 사는 모든 부모에게 다중언어를 반드시 전수 시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하게 들린다.

그렇게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중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이중언어, 다중언어를 익히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연구에서 다각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다중언어 구사자가 가지는 장점을 정리해서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 다중언어 구사자는 의사소통의 범위가 넓다. 한독가정의 자녀나 재독 한인 가정의 자녀들은 독일 사회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하며 사회 활동을 하게 되고 동시에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에 계신 조부모, 친척,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 뿐 아닌 국제적인 활동 참여가 가능해고, 더 나아가서 직업 선택에도 한 언어만을 하는 사람에 비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결국 아이가 자라서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자본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심지어 “언어 경제학”이라는 학문도 있으며 이 학자들은 외국어를 배우면 직장에서 얼마나 더 벌 수 있는지, 외국어를 잘 하는 직원을 둔 업체는 어떤 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얼마나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한다.)

둘째, 다른 문화를 빨리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생활하기에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과 관용을 두루 갖출 수 있게 된다. 독일 사람들은 왜 저렇게 유연성이 떨어지지? 왜 한국 사람들은 성적에 목숨을 걸지? 자라면서 두 문화를 다 경험해 보았기에 다른 문화는 다른 판단의 기준과, 생각하는 방법, 다른 규칙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셋째, 이중언어 구사자들은 사고력의 발달에도 혜택을 받는데 창의성, 의사소통에 대한 민감성 등에서 얻어지는 인지적 발달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잘 자란 이중언어 구사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안정성을 가지게 되기에 자아 존중감이 뛰어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의 의도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기에 발달된 공감 능력을 갖는다.

넷째, 언어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거부감 적고 언어를 배우는 과목 이외의 다른 과목에 대한 학엽 성취 능력도 더 높다.

이렇게 여러모로 장점을 많이 가지게 될 이중언어 습득을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쉽게 중도 하차를 결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녀의 다중언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가정에서 말을 전수하는 것은 “아이들과의 소통”을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부모-한 언어OPOL (One parent One language) 의 원칙을 사용하는 가정에서 즉 엄마는 한국말을 사용하고 아빠는 독일말을 사용하거나 혹은 반대로 아빠가 한국어를 하고 엄마가 독일어를 사용하던지, 이러한 원칙을 세워 놓고 아이들과 소통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거부하거나 불편해서 싫어한다면 부모가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잘 알려진 이중언어 학자인 콜린 베이커 (Colin Baker)는 부모를 정원사에 비유했다. 정원사는 씨를 자라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정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영양가 있는 흙, 충분한 빛, 물, 돌봄을 제공하고 씨앗이 자라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에게 이중언어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격, 발달 정도를 잘 살피면서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이중언어에 노출시킬 것인지, 혹은 이중언어 사용을 어떤 식으로 계속할 것인지 더 확장할 것인지 아니면 멈추어 갈 것인지를 민감하게 관찰하면서 탄력적으로 조절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너무도 다르기에 부모는 아이들의 참살이(웰빙, well-being)를 가장 최우선에 두고 이중언어를 전수해야 한다.

언어 전수의 방법뿐 아니라 문화의 전수에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양육하며 갈등을 겪게 되는데 문화가 다른 가정의 경우 이 갈등은 큰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부모의 양육에 대한 태도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정상적인 발달을 늦출 수도 있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예를 들어 원리 원칙대로 해야 하는 아버지와 너그럽고 유연하게 상황마다 다른 규칙을 정하는 엄마가 있다고 하자.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8시가 되면 아이에게 자야 한다고 명령하고 엄마는 오늘은 친구가 놀러 왔었으니 10시에 자도 되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있으니 9시에 자도 된다 하며 시시때때로 규칙을 바꾼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을 이용하여 8시에 자고 싶으면 아빠에게 달려가서 허락을 받고 10시에 자고 싶으면 엄마에게 달려가 허락을 받으며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떼쟁이가 되기 쉽다.

아이들은 영리하기에 금세 고집을 꺾고 자신의 편을 들어줄 부모를 선택해서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렇게 두 부모가 상충하는 양육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 놓고 왜 아이가 버릇없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보통의 가정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문화가 많이 차이 나는 한독 가정의 경우에는 그 갈등의 양상이 더 클 수 있고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부정적 결과도 심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힘들고 양육방식 차이도 많이 날 수 있는데 부모는 어떻게 이 힘든 일을 견뎌 나가야 하는가?

자녀에게 이중언어를 전수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부모는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상황과 삶을 잘 돌봐야 한다. 힘들면 쉬어가기도 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부모들과도 소통해 가면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그 어떤 부모가 “아, 아이에게 한국말 전수하기 힘들다” 하면서 살아가겠는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며 본인도 모국어 사용이 아닌 독일어 사용과 독일 문화에 적응하고 견뎌내면서 지쳐있으면서도 아이에게 한국어를 전수하는 부모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진정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다가 화가 날 때, 한국어 전수가 피곤하고 힘들 때 먼저 부모는 왜 그런지 자신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아야한다. 혹시 내가 아이를 너무 들들 볶아서 아이가 말썽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한국어를 전수한다며 너무 많이 이것 저것 시키려 든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즐겁게 독서 시간을 주기 보다는 한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게 만들려다가 아이와 갈등이 야기된 것은 아닌가 … 다른 독일 아이들은 다 놀이터에서 흙 푸고 놀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앉아서 한글 숙제를 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 누구도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다. 부모가 처음 아닌가? 첫째를 낳은 것도 처음이고 둘째를 낳은 것도 처음이고 모든 것이 처음인 부모는 서투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도 처음으로 사춘기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처음이기에 서툴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되면 고쳐 나가면 된다.

이 과정을 잘 해내가기 위해서 부모는 일기를 쓰는 등 기록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의 이중언어 발달 과정, 내가 부모로서 한 일, 어떤 것이 잘 되었고 어떤 것이 힘들었는지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자신과 아이를 돌아보고 힘든 일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에게 한국어를 익히는 동기부여를 단단하게 해 주는 것이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이다. 잘한다고 자꾸 칭찬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 잘하게 된다. 한국어를 배우며 작은 성취에도 칭찬해 주고 기뻐해 주면 어느날부터 저절로 굴러 가게 된다.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공부보다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이다. 이것이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서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한국어로 잘 안돼서 고생하고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독일어로 표현하면 잘 들어 준 후에 (아이의 표현이 일단 먼저다) 아이가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받아들여준 후에 한국어로 바꾸어주든 단어를 가르쳐주든 해야 한다.

부모와 말하고자 하는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자고 소통을 막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한국말 사용을 거부하면 부모는 애써서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나 이중언어 교육을 위한 부모 교육 서적을 보고 읽고 따르는데 신중해야 한다. 한국 티브이를 보면 이중언어 다중언어를 하는 아이돌스타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연예인을 출연 시켜서 외국어 한두 마디 하게하고 감탄하는 프로그램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이제는 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당연히 다국어를 하게 된 스타들을 티브이에 불러서 온 국민에게 박탈감을 줄 것인가.

이중언어 자녀 교육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잘 읽고 참고삼으면 좋은 책들이지만 자신만의 철학 없이 가정 사정과 상관없이 책을 읽은 데로 마구잡이로 실행하다가는 불쌍한 아이만 잡게 된다. 주변에 성공한 이중언어 가정, 이중언어 습득자가 있으면 잘 배우고 자녀 교육서를 참고하되, 반드시 자신의 가정에 맞는 아이의 성정과 부모의 능력에 맞는, 이중언어 교육과 습득 방법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정의 참살이(웰빙)를 지키며 다중언어 습득을 해나가는 몇 가지 방법을 필자 가정의 예시와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1 부모의 계획

엄마와 아빠, 조부모나 기타 가족이 함께 산다면 모두 머리를 맞대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이중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정하고 이견이 있으면 타협해야 한다. 우리 집의 경우 남편은 독일어, 나는 한국어를, 함께 있을 때는 영어를, 하지만 최대한 내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영어를 겸비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의 계획이었다.

2 이중언어 교육의 이유에 대한 고찰과 달성 가능한 목표 설정

부모 간에 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한국어를 전수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되어야 한다. 우리 집의 한국어 전수 목표는 “일상생활에 가정에서 무리 없이 사용하는 정도, 한국 방문 시 일가친척들과 이야기 가능하고 동화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으며 한국 방문 시 입간판을 스스로 읽을 수 있다”가 목표였다.

3 끊임없는 부모 능력에 대한 모니터링

살아가면서 보니 애초에 설정한 목표가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지체되거나 아예 계획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었다. 이때마다 유연성 있게 목표와 계획을 수정해 나가야 했다.

4 배우자와의 대화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이쯤에서 무엇을 허락해 주고 어떤 행동을 제약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상의한다. 아이들이 십대가 되어 더 이상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영어 독일어 대화를 거부했을 때 나는 남편과 이제 가족이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독일어나 영어 만으로 대화하기로 협상했다. 다행인 것은 (?) 아이들이 십대가 되며 식탁에서 거의 말이 없어져서 남편이 대부분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에 전략이 변했어도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5 아이들과의 대화를 최우선에

아이들의 기분과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의 정도를 잘 측정해가며 한국어로 소통하고, 무엇보다도 아이와의 소통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부모도 지치지 않고 아이도 즐겁게, 건강한 이중, 삼중, 다중 언어 습득자가 되어 갈 수 있다. 건강한 가치관과 자기 존중감으로 무장한 이중, 다중언어 구사자가 된 우리의 아이들이 작금처럼 문화, 국가간 갈등과 심지어 전쟁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에 다른 문화와 소통을 원활하게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63호 14면, 2022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