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12)

– 글을 마치며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지난 해 7월부터 연재해 이제 그 마지막 회를 소개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신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지난 1년간의 기고를 통해서 나는 자녀를 다중언어 사용자로 키운 성공 사례를 나누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다중언어를 전수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임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글을 마치며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교사, 친척, 지인 등 다중언어 구사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혹은 주변에서 지켜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남았으면 하는 메시지를 환기시켜 보고자 한다.

두 개 이상의 언어로 자녀를 키울 때에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언어 교육이 아닌 가족 간의 소통과 행복이다.

독일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전수하는데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은 자녀와의 소통이며, 자녀와 부모의 참살이 (well being)다.

돌아보니 이 고통스럽고도 가슴 벅찬 다중언어 자녀 양육을 하며 가장 중요했던 점은 부모로서 자신을 잘 돌보는 것과 아이들이 다중언어 환경에서 행복한지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언어를 전수하는 모든 전략들과 방법들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이들과의 소통이고 양육하는 부모의 행복이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허물어가면서 이중언어 다중언어를 습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가족의 행복과 다중언어 습득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려움은 있지만 현명하게 소통하고 조정하고 행복을 찾아가며 언어를 전수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일련의 어려움은 각오하자. 이중언어 교육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된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더 잘 해 낼 수 있다.

닥치면 잘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중언어 교육을 시작하면 그 어려움에 놀라 금세 포기하게 되기 쉽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배우자와 함께 이중, 다중언어를 전수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계획을 짜고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중언어에 관한 책, 인터넷 사이트는 넘친다.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해서 지식을 쌓으면서 어떤 방식과 정책이 해당 가정에 가장 잘 맞는지 숙고해 보고 실천해 가야 한다.

나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

한국어, 독일어로 이중언어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키우며 닥친 문제나 어려운 점을 나열하려면 끝도 한도 없을 것이다. 일단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거기에 타문화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벌써 이중 고통인데다가 부모 스스로가 이중언어자인지 아닌지를 떠나 아이를 이중언어자로, 혹은 다중언어자로 키워가는 것은 더한 어려움이지 않겠는가. 이럴 때에 자녀에게 부모의 스트레스를 전가하지 않고 (아이가 무슨 죄인가) 스스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아이는 도통 한국어를 하려 하지 않아요. 내가 한국어로 물으면 아이는 독일어로 대답해요. 주말에 한글학교 데려가는 것도 힘들고, 아이가 도통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사용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자녀가 부모의 모국어 사용을 거부하는 이야기는 한국인 부모뿐 아니라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러시아어, 터키어 등 다른 나라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부모들에게도 적지 않게 듣는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고 그때마다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나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많이 돌아봤었다.

삽화 : 노민선 작가

내가 낳은 아이가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아이에게 나의 모국어를 말하게 하는 것이 내가 애써서 이루어 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부모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기에 이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왜 이렇게 힘들고 답답한지를 찬찬히 시간을 내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에게 한국어 전수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시키려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아니면 본인이 워낙 바빠서 양육으로 인해 발생되는 그 어떤 불편도 못 참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분노가 터지는 것인지 그 이유를 잘 알아내야 한다. 본인에 대한 성찰을 잘 이끌어냄과 동시에 필요한 일은 아이의 한국어 실력이 얼마나 발달하기를 원하는가 즉 한국어 발달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이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유연하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물론 자녀의 한국어가 한국에 거주하는 아이들처럼 잘 발달되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겠지만 이것은 한국에 살 때나 가능하지 독일에 거주하면서 독일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인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는 고정되어 흔들림 없는 목표라기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유동적인 목표여야 한다.

혹자는 그러려면 목표를 왜 설정하느냐 하겠지만 자녀는 계속 성장하면서 변하기에 흔들림 없는 언어 습득의 목표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취학 전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최대한 아이에게 한국 동화책도 읽어주고 한국어 사용 기회를 최대화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독일어 읽고 쓰기를 배우느라 바쁘니 그 기간에는 한국어 읽기 쓰기는 재미있는 방과 후 활동처럼 이끌어준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서 한국어와 거리가 멀어져 갈 때는 드라마, 영화, 노래 등을 통해서 끊기지 않고 한국어에 노출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예시는 나의 경험일 뿐 이보다 훌륭한 목표 설정과 방법들도 많다.

목표를 세우고 실천함에 있어 아이들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의 개인적인 성향과 성격도 한국어 전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감안해야 한다.

나의 큰 아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먼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다. 어려서부터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공차고 흙먼지 뿌리며 노는 것을 최고로 좋아했다.

딸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이것저것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이렇게 상이한 두 자녀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같은 목표를 세워 한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미련한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배움의 과정이다

그 누구도 완벽한 부모로 태어날 수 없으며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부모가 세운 목표는 실천에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하면 목표를 수정하고 다시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모는 서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양육의 과정이고, 게다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전수하고자 하는 임무를 가진 부모들은 더 치열한 과정을 겪어 나가게 된다.

문화가 다른 부모일 경우 이 타협은 각자의 생각 차이가 커서 더 힘들 수 있고, 혹시 한 부모 가정이거나 아이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더욱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언어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이중, 다중언어자가 되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연구는 없다.

즉 언어 발달이 늦거나 또래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도 모두 이중언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부모는 꾸준히 아이에 대해 배워가며 이 항해를 해 나가야 한다.

잘 발달된 하나의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중언어 사용자가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고 해도 모든 언어를 모든 상황에 똑같이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삽화 : 노민선 작가

필자가 쾰른대학교에서 다중언어 대해서 수업할 때에 다중언어 습득자인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학생들은 각각의 언어를 언제부터, 어떤 강도로,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으며, 어떤 상황에서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이탈리아인이고 아버지가 프랑스계 알마니아인인 키아라는 집에서 어머니와는 이태리어를 하고 모두가 함께 있을 때는 프랑스어를 하지만 학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받거나 독일어로 수업을 받고, 친 조부모를 만나면 알마니아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키아라가 가장 공부할 때 편안한 언어는 영어나 독일어이고, 일상생활에서 편안한 언어는 이태리어와 프랑스어라고 한다. 이것은 키아라만의 느낌이고 언어에 대한 그녀의 고유한 지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럴 리 없다는 둥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러 가지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여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개의 언어 중에 반드시 한 개의 언어는 단일 언어 사용자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일에서 학교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려면 독일어가 독일어 단일 언어 사용자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이며, 만약 영어를 주언어로 사용하는 국제학교에 다닌다면 영어가 나이에 맞는 영어 사용자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국제학교에 늦게 입학했다면 탄탄한 한국어를 기반으로 영어를 배워가야 한다. 즉 한 개의 언어가 잘 자리 잡아야 다른 언어는 그 견고함을 기반으로 잘 발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만약 각개의 언어가 들쑥날쑥 발달하여 그중 하나의 언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면 (원어민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독일어 한국어 습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언어가 튼튼하게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우면서 다른 언어들을 함께 습득해야 한다.

언어와 문화 전수는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는 한국어를 전수하면서 또한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 문화를 애써서 전수해야 한다. 일단 부모가 한국에서 자라고 먹는 습관, 생활 습관을 한국식으로 유지하고 있다면 애써서 전수한다기 보다 한국 생활 습관 문화 안에서 자녀가 자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전통, 의식 등을 지역 행사나 한국 방문, 영화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정체성의 경계성, 혼종성, 다층성을 건강하게 확립해갈 수 있고, 혼란을 겪더라도 긍정적으로 표출 하게 된다.

언어의 습득은 전 생애를 걸친 과업이다.

언어는 지금 아주 잘한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퇴행하기 마련이다. 바꾸어 생각하면 지금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녀에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문을 열어주면 아이가 진정 원할 때 시작해서도 얼마든지 습득 및 발전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 자녀가 나의 바람을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해 할 필요 없고, 불안해할 필요 없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아이가 원하게 될 때 시작돼도 좋다. 다만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계승어 배움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녀에게 더 도움 되는 것임을 피력해야한다.

일 년간의 연재를 마치며 세상 어디에서인가 자녀를 다중언어자로 키우고 있는 부모, 조부모, 친척, 선생님, 이웃, 모든 분들께 힘들고도 보람 있는 여정에 최고의 성과가 있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70호 20면, 2022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