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의 언어와 정체성 이야기(9)

언어 습득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재조명 – 1

독일어를 꾸준히 배우고 있는 분들이나 새로운 외국어 습득에 도전하시는 분들 혹은 자녀들의 외국어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앞으로 두 회에 걸쳐서 언어 습득에 대한 세간에 알려진 상식들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언어는 주로 모방에 의해 습득된다.

말을 배우는 아가들이 엄마 아빠의 발화를 따라 하면서 배우는 것은 상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언어 습득이 주로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희박하다.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도 외국어를 배우는 어른도 자신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너무나 재미있고 참신한 발화를 해서 듣고 있던 어른들이 즐겁게 웃게 된 상황을 직접 겪어보거나 주변에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끔 유튜브에 말 잘하는 어린아이들의 비디오들이 올라오는데 트로트 가수 장윤정 씨의 딸인 하영이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영이는 매우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표현과 다양한 문법적 장치를 말속에 수려하게 섞어서 발화하여 그 동영사을 혹은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많은 어른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한다.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아빠가 아나운서이고 엄마가 가수이기에 어린 딸이 발음도 좋고 말도 잘한다고 많이들 칭찬한다. 틀린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하영이가 발화하는 문장들은 단순한 장윤정 씨와 아빠 도경완 씨의 말을 듣고 배워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 하영이 머릿속 작업의 결과이다. 하영이는 물론 엄마와 아빠의 말을 통해 말을 배우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입력된 언어를 재 조합하여 자신만의 발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문장을 조합하는지는 아이들의 틀리게 발화한 문장 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꼬마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말이 ‘율리안가 놀이터에 갔다.’였었다. 이 표현은 주격조사 ‘이’를 써야 하는 부분에 ‘가’를 잘못 써서 생긴 실수인데 엄마인 내가 이렇게 발화했을 리는 만무하다 (어른은 한 잔 걸쳤다 해도 이런 실수는 절대 안 한다). 이 실수에서 우리는 어린아이가 벌써 두세 살 때에 주어와 함께 주격 조사를 결합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조사를 문장 속에 조합함으로써 이 문장을 만들어 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틀린 발화이지만 아이들이 어른을 그저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단어를 조합해서 새로운 표현과 문장을 만들어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학습자의 실수에서도 마찬가지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 과거 동사의 불규칙 형태를 몰라서 규칙동사처럼 과거형을 잘못 변환해서 쓴다든지 하는 것은 학습자 자신이 동사의 과거 형태를 만드는 기본 규칙을 알고 있지만 다만 불규칙 동사 변형의 모든 경우를 습득하지 못하였기에 아는 규칙으로 잘못된 패턴을, 그러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언어학습자들 역시 언어 안에서 패턴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새로운 문맥에서 확장시켜 사용하며 언어를 배워간다는 것이다.

언어를 모방한다는 것의 정의를 그저 남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에 한정시킨다면 아이들의 어떤 발화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언어는 모방을 통해 배운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심지어 모방을 통해 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사실은 따라 하면서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듣는 말 중 일부를 가위로 자르듯이 선택해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쏙 넣어 사용한다. 심지어 남의 말을 정확하게 따라만하는 아이들보다 자기만의 표현을 많이 쓰는 아이들이 말을 더 빠르고 잘 배운다고 한다.

결국 남을 따라 하는 언어 습득 방식은 개인적인 전략일 뿐이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언어를 배우지는 않는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원어민을 따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연습을 한다. 드라마를 보며 영상을 멈추어 가며 배우의 발화를 따라 하기도 뉴스를 듣고 따라 하기도 하고 그저 따라 하면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고 반복학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 학습은 커다란 인지적 도전을 요구하지 않기에 편안하게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중 고급 학습자가 정확한 발음을 익히기 위해서 원어민의 발화를 정확하게 듣고 여러 번 따라 하는 것은 좋은 훈련이다. 하지만 새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습자들에게 그대로 따라 하고 외워서 말하는 것은 그것과 똑같은 상황에 닥치지 않을 경우 별로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한 학습자가 범죄물 스릴러 영화에 빠져 그러한 장면에 있는 대사들을 깨알같이 외운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한 상황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영화에서 배운 범죄와 관련된 표현과 문장들은 생활 속에서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지 않은가. 학습자는 단순히 원어민의 발화를 따라 하는 것으로 언어를 익힐 수 없다. 그러니 외국어 공부를 도와주는 유튜브 비디오 등에서 자주 권하는 드라마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반복하고 하는 학습은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되지만 언어를 배우는 통합적 전략은 될 수 없다.

그럼 반복하고 따라 하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주요한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언어 습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데 “Usage based theories”라고 하여 언어는 사용에 따라 학습된다는 이론이다. 사실 우리는 일생생활을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주에서 일어난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역시 일정 부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사는지를 잘 생각 해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과 서로 잘 잤는지 간단하게 체크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서로 바쁘게 아침을 먹으며 오늘 일어날 일들을 간단하게 체크한다. 특히 다 자란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할 말이 오늘 돈이 필요한가 아닌가 뿐이다.

아이들은 조가비 같이 입을 꾹 다물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간다. 그 후에는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쓰는 말들도 사실 대부분 정해져 있다. 물론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 속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해져 있다.

또한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산다 해도 역시 대단히 화려한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다 – 보통 계산대의 점원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카드로 계산을 할 것인지 현금으로 계산을 할 것인지를 간단히 묻고 답한 후에 다시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다시 해가 저물어 집에 돌아와 가족과 저녁 식탁에서 늘 쓰던 말로 하루 일과를 나누고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나 새로운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 경우가 생기겠고 그 외에는 늘 쓰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새로운 상황을 설명해야 할 몇 가지 경우를 빼고는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은 사실 매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같은 상황에서 늘 똑같은 문장을 발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습자는 일상 생활에서 대부분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예상 가능하다.

그러므로 언어는 한 개 한 개 단어를 배운다기 보다 어떤 단어와 표현의 조합으로 패턴을 만들어 맞는 상황에 그것을 꺼내어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조합은 단순히 원어민이나 부모가 발화한 예를 모방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습자 스스로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로 바꾸는 내부적인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 IQ가 높은 사람은 언어를 잘 배운다.

보통 IQ가 높은 사람이 학습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즉 머리 좋은 사람은 공부를 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IQ가 높으면 언어도 잘 배울까?

언어에 자체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과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두 개의 다른 능력이다. 언어에 대해 잘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예를 들어 문법적 규칙을 잘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것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IQ와는 무관하게 나 역시 언어 자체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잘 하는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디게 늘어 고초를 겪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으니 대충 귀 동냥은 되어 단어는 많이 알고 그래서 남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될 때마다 인텐시브 코스를 등록할 때 치르는 언어 레벨테스트에서는 항상 높은 점수를 받아 높은 반으로 배정된다. 독일어 실력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레벨테스트를 하도 많이 봐서 무슨 문제가 나올지 대충 알고 있고 오랫동안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언어 학원과 언어 학습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불 보듯 뻔히 알아서이다. 그저 시험을 잘 치르는 전략을 아는 것 뿐이다.

그러니 높은 반에 배정되어서 말하기는 맨날 꼴등이다. 수려하게 말 잘하는 입시준비반의 학생들 사이에서 나이 들어 목소리만 크다. 문법에 맞추어 정확하게 독일어를 구사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아는 단어만 남발하기에 선생님은 나의 발화문을 재구성해주느라 바쁘다.

물론 IQ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보인 사람들은 다른 시험 점수를 잘 받을 확률 역시 높다. 하지만 자연언어를 배우는 것, 즉 사람들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것은 인지능력만 높은 사람들보다는 여러 가지 능력이 골고루 발달된 사람들이 더 유리하다.

즉 언어 습득은 다양한 능력과 상관이 있기에 인지능력이 높은 것으로는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없다. 시험 점수가 높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꼭 회화를 잘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많은 학교에서 이민자 배경의 학생들을 제 2, 제 3 언어 교육에서 소외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다른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면 사회어 발달이 덜 되어 있는 상태라도 외국어를 잘 배울 수 있다.

3. 언어 학습자는 자신들이 학습한 것을 배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내 경험에 따르자면 – 아니 독일어 학습자로서의 경험도 같다 –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친 것을 모두 배우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학습자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은 표현들도 습득해서 발화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습자들은 고유한 내적인 학습 능력을 통해서 새로운 패턴들을 발견해 가고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

가르치는 방법 중에 학생들에게 주어진 단어나 대화 패턴을 주고 배우게 하는 법이 있다. 이 방법은 학습자의 현재 레벨에 따라 학생들에게 매우 다르게 흡수된다.

예를 들어 ‘Tomaten auf den Ohren’이라는 관용어를 수업시간에 배웠다고 치자. 독일어 레벨이 낮은 학생은 이 관용어의 뜻을 배우고 토마토의 단수, 복수형을 배우고 귀라는 말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편 이미 모든 단어를 알던 학생은 이 관용어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으며 어떤 상황에 쓰이는지를 배우는 학습으로 바로 넘어갈 것이고, 이미 이 관용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상황에 쓰이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던 학생들은 자신도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례와 앞뒤 말에 연결하는 법을 배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입력(input)이 주어져도 학습자가의 현 실력(competency)에 따라 같은 수업도 다르게 학습하게 되고 학습자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이 관용어 문장을 얼마만큼까지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학습자에게는 자신의 현재 능력보다 훨씬 어려운 단계의 문법이나 표현을 배우는 것은 그 사이에 거쳐야 할 절차가 너무 많아 힘든 경험이 된다. 다만 단어의 경우는 학습자의 단계와 큰 상관 없이 학습자가 흥미있어 하는 분야부터 배워나갈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독일어가 어느 단계인지 정확히 알 수없을 때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공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단어를 공부하는 것이라 하겠다. (2 부에 계속)

1305호 면, 2023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