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157/ 또 다른 명품, 독일 총리들(24)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 합리적 타협과 융합의 정치를 실천하다, ➄

명품 왕국 독일에는 제품·인프라·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물에도 명품이 많다.
경제적으로 ‘라인강의 기적’과 정치적으로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어온 ‘서독과 통일독일의 연방총리들’이야 말로 나치 정권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독일이 길러낸 최고 명장들이며 독일 국민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품이다.
독일의 연방총리를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강력한 서독(아데나워)- 시장경제와 경제기적(에르하르트)- 동방정책(빌리 브란트)-동서 데탕트 시대(슈미트)-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헬무트 콜)- 노동개혁과 독일병 처방(슈뢰더)- 독일병 치유와 EU 대주주(메르켈) 그리고 현재 올라프 숄츠로 이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건국-분단-냉전-성장-통일-통합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구성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가지 위협에 맞선 16메르켈 독일 총리가 남긴 유산 (2)

독일 시사주간 ‘Spiegel’은 “메르켈 시대는 보이지 않는 위협의 시대였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불안정한 시대를 이끄는 총리로서 자격이 충분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시사주간지 ‘Spiegel’이 선정한 메르켈 총리가 마주한 “7가지의 위협과 그 대처”에 대한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4. 난민 문제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2년이 지난 2015년, 메르켈의 대중적 지지도는 여전히 높았다. 당내에서도 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메르켈 임기 기간 중 가장 큰 위기였던 난민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당시 유럽에서는 난민 수용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밀려오는 난민들 수가 100만 명이 넘어가자 유럽 각국은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를 가리켜 “아마도 메르켈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은 많은 독일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펼쳤다. 난민 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메르켈은 독일 국민들을 향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확신시켰으며, 실제 9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슈피겔’은 “메르켈의 타고난 기질, 자유에 대한 사랑, 장벽에 대한 거부감, 목사였던 아버지를 통해 물려받은 기독교적 배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해 ‘타임’은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메르켈은 서방세계의 등불이자 민주주의 가치를 상징하는 선구자가 됐다.

물론 치러야 할 대가도 있었다. 모든 사람이 메르켈의 포용 정책을 환영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으며, 유럽은 분열됐다. 독일 곳곳에서는 난민들에 대한 분노, 인종차별, 증오가 촉발됐으며, 급진적 우파인 독일대안당(AfD)은 하루가 다르게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5. 도널드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네 명의 미국 대통령과 함께했지만 메르켈은 그때마다 미국과의 동맹을 견고히 다졌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늘 껄끄럽고 불편했다.

트럼프는 메르켈과 정반대 성향의 인물이었다. 때문에 메르켈은 트럼프의 견해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메르켈은 트럼프의 비이성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스타일을 싫어했다. 메르켈이 한동안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교류를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슈피겔’은 분석했다.

실제 트럼프 정부 시절 독일과 중국의 친밀도는 예전에 비해 증가했었다. 메르켈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비록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이긴 하지만 결코 비이성적이진 않았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메르켈 총리에게는 차라리 이쪽이 더 나았다.

6. 기후 위기

“미래 세대의 생명이 달려있는 토대가 위태롭다. 우리 모두는 당장 행동해야 한다.”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메르켈은 적극적이었다. 2007년 3월, EU 회원국들에게 탄소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도록 촉구했는가 하면, 그해 6월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만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기후 정책을 유엔의 손에 맡기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8월에는 그린란드를 방문해서 녹고 있는 빙하를 배경으로 빨간 재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런 잰걸음은 효과가 있었다. 많은 독일인들이 ‘기후 변화에 관심이 있는 총리가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9년이 되자 메르켈은 더 이상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인해 독일의 경제가 침체되자 메르켈은 독일 국민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당장 발등의 불인 재선을 위해서라도 기후 문제에 관심을 보일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재임 기간 탓일까. 메르켈은 궁극적으로는 기후 문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2019년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미래 세대’인 젊은 학생들이 스웨덴의 환경운동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기후 정책에 항의하기 시작하면서 기후 문제는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 이슈가 됐다.

그 결과 유럽연합과 독일은 앞다퉈 새로운 기후 변화 정책을 쏟아냈다. 그리고 임기 말인 올해에는 폭우로 인한 대홍수가 발생해 서쪽의 마을들이 폐허가 되자 메르켈은 다시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임기 말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은 메르켈보다는 후임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1332호 29면, 2023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