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61

독일의 또 다른 명품, 히든 챔피온 (1)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헤르만 지몬 교수 덕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개념이다. 매출액이 50억 유로를 넘지 않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출액 기준으로 동종업계에서 세계 1~3위권을 점한 기업을 말한다.

세계 1,000대 거대 다국적 기업 중 독일 기업을 보면 벤츠, BMW, 폭스바겐 등 자동차 기업, 지멘스 등 기계류, 바스프 등 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34개사밖에 없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위상으로는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히든 챔피언의 수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헤르만 지몬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1,307개가 독일 기업이다. 나머지는 미국 366개, 일본 220개, 오스트리아 116개, 스위스 110개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3개로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와 폴란드에 이어 13위에 불과하다.

히든 챔피언의 성장과정

왜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많을까? 이는 독일 사람들의 자존심 회복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 비해 산업혁명이 늦게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을 기준으로 보면 제품 생산기술이 낮은 수준이었다.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엑스포에서 독일 제품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자극받은 독일 기업가들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품질이 급상승하였다. 독일산(Made in Germany)이 신뢰받는 고품질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독일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첨단기술 고급제품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명가 등 우수인력과 학교를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인 클러스터가 형성되었다. 중세 이후 수학과 물리학이 유명했던 괴팅겐(Göttingen) 지역에는 유명한 계측기기 기업이 39개 소재하고 있다. 명문 공대생들이 취업을 시작하면서 칼스루에(Karlsruhe)에 지역에 기계,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글로벌 리더 기업이 탄생하면 인근 지역으로 기업가 정신이 확산돼 새로운 성공기업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가세하면서 산업 클러스터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1995년 이후 독일 정부의 클러스터 육성정책에 힘입어 베를린 인근의 IT 클러스터, 함부르크 인근의 해양 클러스터가 탄생하였다. 지역별로 형성된 클러스터는 기업과 학교, 연구소가 협력하는 산학연 협력 시스템의 영향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현재 독일 전역에서 327개 클러스터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를 이어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발전해온 가족기업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넓이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특성을 보인다. 극심한 경쟁의 시기 동안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밸류체인상 핵심 분야에 특화되고, 해당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의 업력을 보면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8%, 40년 이상 된 기업이 75%인 것을 보아도 깊이를 알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아시아 제조업 분야의 도전으로 미국과 유럽의 많은 기업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서비스 분야로 이동했지만,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끝까지 제조업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 특유의 교육제도도 히든 챔피언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오랜 기간 봉건영주 중심의 분권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비스마르크 덕분에 1871년 통일 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지금도 독일은 세계에서 분권적 시스템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교육에서도 지역별로 대학들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어 우수학생들이 특정 대학에모여드는 현상은 미미하다. 교육기관과 산업 클러스터가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직장인들도 일반적으로 소재지의 우수한 기업에서 일한다. 우수인력이 직장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기보다는 지역 내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가는 것이다.

또한 독일은 기업 친화적, 현장중심 교육제도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어 진학하게 된다. 인문계 과정에서 8년간 공부하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실업계로 진학한 학생들은 5, 6년 후 졸업과 함께 취업한다.

그런데 취업 후 2, 3년간은 직장의 현장실습과 학교 교육을 병행한다. 주당 4일간은 현장에서 일하고,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이를 이원화 교육제도(Dual Education System)라고 한다. 동기간 중 현장실습 과정을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고 하는데, 교육을 받는 중이지만 일하면서 월급을 받는다. 현장실습 교육을 마친 후 80, 90%가 훈련과정으로 일한 기업에 취직한다.

따라서 학생은 안정된 직장을 잡을 수 있고, 기업은 훈련된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러한 직업교육을 받은 직장인은 1~3년간 추가 교육을 받고 경험이 쌓이면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100개 분야로 나누어 운영되는 마이스터는 특출한 기능을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부여하는데, 독일에서는 전문인력의 상징으로 대우받고 있다 .

독일의 임금구조를 분석해보면 중소기업의 급여가 대기업의 85~90% 수준이다. 이와 같이 급여차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히든 챔피언과 같이 중소기업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해 대기업 수준의 안정성이 보장된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교육받은 지역에 머물고 싶어하는 독일 사람들의 특성상 히든 챔피언은 소재지 인근의 우수한 인력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

정부 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방정부에서 연금, 보험 및 금융지원 제도로 기업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한 것이다. 연금제도 덕분에 직원들은 고용 불안 없이 맡은 일에 집중한다. 상속제도의 영향도 막대하다. 기업을 상속받은 후 7년간 고용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면제해준다. 따라서 오랜 기간 대를 이어 가족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1336호 29면, 202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