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162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헤르만 지몬 교수 덕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개념이다. 매출액이 50억 유로를 넘지 않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출액 기준으로 동종업계에서 세계 1~3위권을 점한 기업을 말한다.

자동차, 전자, 화학 등의 산업 분야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지멘스, 애플, 코카콜라 등 세계 각국의 일반인에게도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다국적 기업에 비하면 규모와 인지도 면에서 취약해 보인다. 그러나 밸류체인(Value Chain)상에서 핵심 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세계적 조직망을 갖춰 기업 경영의 안정성이라는 면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대등한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헤르만 지몬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1,307개가 독일 기업이다. 나머지는 미국 366개, 일본 220개, 오스트리아 116개, 스위스 110개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3개로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와 폴란드에 이어 13위에 불과하다.

히든 챔피언의 경영상 특징은 다섯 가지 전략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먼저 틈새라고 할 수 있는 좁은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히든 챔피언의 틈새시장 전략은 시장을 정의하는 시각에 잘 나타나 있다. 헤르만 지몬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히든 챔피언은 여섯 가지를 기준으로 시장을 정의하는데, 고객의 니즈(62%), 타깃 고객이나 집단(55%), 제품이나 기술(42%), 가격수준(24%), 품질(22%), 지역(14%)이다. 고객의 니즈와 타깃 고객 그리고 기술과 같은 핵심역량을 기준으로 시장을 정의하는 것을 볼 때 히든 챔피언의 경영전략에 대한 이해가 다른 기업보다 탁월하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R&D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전략이다.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R&D를 통한 기술력과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프로세스, 시스템, 마케팅 및 서비스 등 경영전반에서 혁신을 추구한다. 혁신에 대한 의지와 역량은 R&D 부문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히든 챔피언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은 6% 수준으로 글로벌 1,000대 기업의 R&D 비중인 3.6%보다 훨씬 높다. 특허 보유건수도 많은데, 다국적 기업의 직원 1,000명당 특허 보유 건수가 6개에 불과한 반면 히든 챔피언은 무려 31개에 달한다.

세 번째는 철저한 고객중심 경영전략을 들 수 있다. 히든 챔피언의 83%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고객과 직접 거래하며, 고객의 66%가 고정 고객이다. 고객의 컴플레인과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경영전략에 반영하려고 고객밀착 경영을 고집한다. 이와 같이 고객의 니즈를 찾고 충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혁신활동이 전개된다. 또한 히든 챔피언들은 고객과 접점을 놓치지 않으려 주요 고객 소재지 인근에 생산기지와 서비스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네 번째는 히든 챔피언의 세계 경영이다. 히든 챔피언의 세계 경영에는 두 가지 추진 동력이 있다. 먼저 고객 경영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동력이다. 해외에 있는 고객을 밀착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경영을 하게 된다. 아울러 틈새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가게 된다. 헤르만 지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히든 챔피언들은 평균 24개(8개 생산법인 및 16개 판매법인) 해외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시장에 진입할때 히든 챔피언 77%는 단독으로 진출하며, 17%만이 다른 회사와 제휴해 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으로 해외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 그러나 고객의 니즈를 직시한다는 일관성 있는 경영철학을 구현하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이다. 히든챔피언들이 초기 해외진출 과정에서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저돌적인 접근방법에 의존했지만, 점차 전문적・체계적인 방법으로 대체되고 있다. 외국어 구사능력과 문화적 적응능력을 배양하면서 전략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저한 인력관리 체계다. 히든 챔피언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우수한 경영자와 직원들의 역량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의 경영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장기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히든 챔피언들이 인력관리를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히든 챔피언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20년으로 다른 기업에 비해 훨씬 길다. 이와 같이 CEO의 재임기간이 긴 것은 가족경영이라는 특징 덕분이기도 하다. 히든 챔피언 기업 중 가족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비중이 66.3%에 달하며, 소유권과 경영권이 한 사람에게 있는 비중도 55%에 달한다. 그러나 이것이 10년 전에 비해 10% 정도 낮아진 비율임을 감안하면 점차 전문경영인체제로 변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히든 챔피언의 CEO는 대부분 회사 내부에서 선발하였다. 내부 출신이 회사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헤르만 지몬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79%가 회사 내부에서 CEO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고, 10%만이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히든 챔피언은 일반 직원의 선발과 훈련, 관리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지역인재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공감받을 수있는 인력관리 체계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재한 기업이 지역 내 인재들에게 생활 터전을 제공하면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정착된 시스템이다. 직원들은 히든 챔피언 덕분에 직장을 구할 수 있으며, 히든 챔피언 기업은 지역 내 인력을 고용해 상호 의존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덕분에 오랜 기간 상호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일까? 헤르만 지몬 교수는 히든 챔피언 경쟁력의 원천으로 회사에 대한 직원의 충성심(79.5%), 직원의 자질(72.9%), 직원의 근무 의욕(72.7%), 경영의 유연성(58.4%)을 들었는데, 이 중에서도 직원들의 충성심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기업 평균이직률이 7.3%인데 비해 히든챔피언의 이직률은 2.7%로 낮아 충성도가 높음을 보여준다.

1337호 29면, 2023년 1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