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71

독일 경제성장의견인차-철강 ‘티센크루프’ (2)

전후 알프레드 크루프의 전범 처벌과 미국의 크루프 재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4대 경영자 베르타의 장남인 5세 경영자 알프리드 크루프(Alfried Krupp)는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지분 75% 매각 명령을 받았지만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점차 심화되면서, 미국 점령군은 크루프의 회사 경영을 재개시키게 된다. 이후 크루프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끌며 새롭게 성장하여 196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총자산규모 10억 달러 수준으로 재건되었다.

한편 알프리드의 외아들 아른트는 가문의 사업을 잇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공익재단 ‘알프리크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가 1968년 크루프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유럽연합(EU)의 기초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탄생

하지만 크루프의 재건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행운이 있었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전범인 독일의 재건이 불러올 또 다른 전쟁의 위험과 독일 없이는 구 소련의 공산진영과 대항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때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인 장 모네(Jean Monnet, 1888~1979)는 당시 프랑스 외교장관인 로베르 슈망의 이름을 딴 ‘슈만플랜(Schumann Plan)’을 제안한다.

이는 독일을 유럽 안에 포용하고 동시에 독일의 재무장을 방지하기 위하여 당시 전쟁의 수단이 되는 두 가지 자원인 석탄과 철강을 범 유럽 통제하에 두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51년 4월 파리조약을 통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은 유럽 내 석탄 및 강철 자원의 공동관리에 대한 조약을 비준하고,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를 창설하였다.

이후 유럽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와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를 통합하여 유럽공동체(EC)를 발족시켰으며, 이후 1992년 2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통화연맹(EMU)을 추가하여 대망의 유럽연합(EU)을 설립하였다. 이후 유럽 석탄철강공동체는 2002년에 공식 해체를 하고 완전히 유럽연합 산하로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되었던 유럽이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모이게 되기까지 40여 년의 시간은 바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부터 기인하였으며, 이러한 공동체의 보호 아래 크루프 등 독일 철강사는 거침없는 성장행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티센은 젊은 후발 기업으로 1867년 출발

반면 티센은 19세기 중·후반에 설립되어 크루프에 비하면 젊은 기업이다. 1867년 아우구스트 티센(August Thyssen)은 뒤스부르크에 오크통을 고정하는 쇠테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였고, 1891년 현재 티센제철소가 위치한 뒤스부르크의 석탄회사(Gewerkschaft Deutscher Kaiser)를 매입하며 철강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우구스트 티센은 기술자들을 해외로 보내 당대 최고의 제철소를 벤치마킹한 뒤 싸게 지을 수 있는 제철소가 아닌 가장 우수한 기술을 지닌 제철소를 만들게 하였다. 1895년 고로 가동을 시작으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이후 프랑스 로레인과 노르망디 지역에서도 제철소를 가동하였다. 또한, 지중해 연안 항구를 개발하여 러시아와 인도에서 원료 수입을 용이하게 하는 등 크루프와 유사하게 사업장 확대, 수직 계열화를 통해 전문 철강업체로 성장하였다.

티센도 임직원 복지를 중시하여 1913년 뒤스부르크 제철소 직원과 관련자 4만 4,000명에게 회사 소유 주택을 8,750채 제공하였다.

철강사업에 집중하기 위하여 1919년에는 석탄회사를 매각하고 전문철강제조사 티센휴테를 설립하였으며, 1926년 루르강 주위에 있는 철강사들과 합병을 추진하였다. 티센은 루르 지역에 산재하던 철강사 수백 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관제철소이기도 하다.

1999년 티센과 크루프의 합병으로 세계 5위로 부상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철강 산업이 쇠락의 길로 들어서자 스페인,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의 철강사들은 자구책으로 ‘아르셀로’라는 유럽 최대 철강회사로 합병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은 다른 길을 택했다. 독일 10대 기업이었던 티센과 크루프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하였고, 범용 제품을 생산하는 설비는 남김없이 팔아 치웠다.

1999년 가장 큰 두 경쟁사가 합병해 연간생산량 1,700만 톤 규모의 유럽 2위, 세계 5위의 철강그룹 티센크루프가 탄생하였고, 합병 이후 흩어져 있던 제철소들을 물류의 최적지인 뒤스부르크로 집중시켰다.

산업솔루션 기업으로 재도약하는 티센크루프

티센크루프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떠오르는 북·중미 시장을 타깃으로 2007년 5월 42억 달러 규모의 미국 앨라배마 탄소강 및 스테인레스강 압연설비와 브라질 용광로 투자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실제 투자비용이 계획대비 세 배로 증가된 총 120억 달러에 이르고, 2007년 철강 경기 정점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로 북미 철강수요와 가격이 급락하여 110억 달러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며 티센크루프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경영 자구책의 일환으로 북미 스테인리스 부문을 핀란드 오토쿰푸사에, 탄소강 공장을 아르셀로미탈/신일본제철 합작사에 16억 달러에 매각하였다. 큰 손실을 경험한 북미사업을 정리하면서 티센크루프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기존 철강사업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우수한 엔지니어링 기술은 각종 플랜트 및 설비관리 솔루션 제공 사업으로 확대하며, 고층빌딩용 고속 엘리베이터, 자동차 조향 시스템, 잠수함용 카본 볼트 등의 첨단 틈새산업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사업 다각화로 안정적 이윤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해가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1346호 29면, 2024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