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핵심적 역할은 민간부문의 잉여자금을 조달하여 자금이 필요한 부문에 배분하는 것이다. 이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경제는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과도한 버블로 인하여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럽의 재정위기는 바로 이러한 금융의 불안정 속에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동시다발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유럽 경제의 안전판 역할과 함께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독일은 자본시장과 펀드산업 등의 활성화보다는 은행 중심으로 작동되는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주식시장, 채권시장, 펀드, 벤처캐피털의 GDP 대비 규모가 영미국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예를 들면 GDP 대비 주식시가총액이 39,1%에 불과하고(미국 108,0%, 영국 125,8%, 한국 100,1%), GDP대비 투자펀드 규모도 독일은 8,2%이다.(미국 77,0%, 영국 33,5%, 한국20,8%)
이는 미국이나 영국이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잉여자금을 조달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독일의 경우는 은행시스템을 살펴보는 것으로 금융시스템의 전반을 이해하고 그 함의를 찾을 수 있다.
3주(柱)체제의 겸업은행
독일의 은행은 크게 겸업은행과 특수은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겸업은행으로는 상업은행, 공립은행 및 협동조합은행의 3대 부문으로 대별되는 3주(柱)체제(Die Drei-Säulen- Struktur)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전체 금융시스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독일 금융시장에서 영업을 위해 설립된 은행은 2015년 12월말 기준 1,775개이며, 외국계 은행(외국계 은행 현지법인 포함)은 142개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은행에 해당하는 상업은행(Kreditbank)은 2015년 말 기준 총은행자산중 38.7%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대형은행은 전국적인 점포망을 가진 민간상업은행으로서 Deutsche Bank, Commerzbank, UniCreditbank AG (Bayerische Hypo-und Vereinsbank) 및 Deutsche Postbank로 총 4개이다. 그 외에 지방은행은 기관수는 많으나 일부를 제외하고 지역 소재지에서의 예금 및 대출업무를 위주로 하고 있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공립은행은 공법상의 기관(Anstalt des öffentlichen Rechts)으로서 주립은행(Landesbank)과 저축은행(Sparkasse)이 있다. 공립은행이 금융체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말 기준 전체 은행자산 기준으로 약 27.1%에 이른다. 여기서 주립은행은 일반은행 업무 외에 해당 주정부의 은행 역할, 관할지역 저축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저축은행은 소재 지역에서 주로 가계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소매금융에 주력하고 있다.
삼주체제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협동조합은행(Genossenschaftsbank)은 공무원, 의사, 약사 등 특정집단의 공제조합금고에 상당하나 현재는 조합원 이외의 고객까지 대상으로 영업한다. 2015년 말 기준 총은행자산중 14.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전체 은행자산의 약 20%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특수은행은 종합금융업을 영위하는 겸업은행과 달리 특정 분야의 업무만을 취급한다. 바로 주택 건축자금을 공급하는 건축대부조합과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모기지은행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특수목적 은행으로는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사회간접자본투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연방 및 주(州)차원의 정책금융기관이 있다.
연방 차원으로는 독일부흥은행(KfW:Kreditanstalt für Wiederaufbau)와 독일농업개발은행이 있으며, 주(州)차원의 각 주(州)정책금융기관( 예: Nord-Rhein Westfalen주의 NRW.Bank) 등이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독일의 금융을 특징짓는 공립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은행의 은행수가 현재 각각 423개, 1천여 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점포수는 각각 1만 2천개를 넘는다. 이것은 각 도시, 마을 단위로 점포들이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독일 금융의 특징을 나타내는 ‘관계형 금융’으로도 표현된다. 이러한 관계형 금융을 통해 개인, 소규모 기업들의 저축이 이루어지고 필요한 사업자금 등의 조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금융시스템 가운데 유의해서 보아야 할 또 하나는 겸업은행 3대 부문 중 공립은행부문과 각급 정부 정책금융기관인 특수목적은행의 소유 및 후원구조와 그 역할이다. 특히 이들 은행은 법률적으로 공공소유의 공적인 금융기관인데 독일 전체 은행자산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독일은행시스템이 전통적으로 공공소유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의 경우 소유관계만을 두고 본다면 삼주체제 내의 공립은행과 특수목적은행은 모두 공적 금융기관이지만, 공공기능(정책금융) 수행여부에서는 차이가 있다.
저축은행그룹은 주(州)정부 혹은 시(市)정부와 같은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설립목적은 영리추구보다는 지역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지역주민 이익증진 등이다. 이들은 겸업은행으로서 일반 영업행위는 하지만 높은 수익성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또한 저축은행그룹을 구성하는 주립은행이 저축은행의 상위기구로써 해당지역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주(州)정부의 은행 역할도 수행한다.
한편 신용협동조합은행 부문의 단위조합은행은 협동조합법에 근거하여 설립되며, 조합원의 자립자조를 원칙으로 예금을 통한 재산증식과 대출기회 보장을 기본목적으로 한다. 조합형 은행은 고객, 즉 예금자나 대출자가 조합원(출자자)으로 일정지분을 소유하는 은행을 의미한다. 그러나 1974년 이후 비조합원과의 거래도 가능하게 되면서 조합원이 아닌 일반 주민 등 비조합원들도 협동조합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단위조합은행의 상부기구로 지역중앙회가 있는데 현재 WGZ Bank와 DZ Bank가 영업하고 있다. 이들은 단위조합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면서 단위조합은행의 지급결제 및 유동성 관리 등의 지원업무를 수행하며 겸업은행 업무도 병행한다.
1352호 29면, 2024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