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최월아

2018년 끝 무렵에 슬쩍 미끄러지면서 땅을 찧은 무릎 뼈가, 떨어진 접시 깨지 듯, 몇 조각나고 인대마저 끊겨 지체 없이 수술을 받았다. 곧 다가오는 연휴의 일정들과 이듬해에 계획되어 있던 여러 여행들이 다친 다리걱정에 앞서 머릿속에서 와글거렸다.

사고 전에 친구와 통화하다 3년 후에 다가 올 졸업50주년기념행사에 대한 애기를 했었다. 2002년 30주년기념 땐 미국 L. A.에서 모여 전야제를 치르고 크루즈로 미 서부와 멕시코를 여행하며 참으로 멋진 행사를 했었다. 2008년엔 독일과 유럽을 2주간 여행했었다. 그래서 인지 친구는 대뜸 “우리 대부분이 내년이 칠순이잖아, 어떻게 3년을 더 기다리니. 지금 요만큼이라도 건강할 때 만나야지!”라 했다. 나는 “맞다!” 라고 맞장구 치고 오지랖에 서둘러 한국•미주•호주•유럽에 흩어져 거주하는 졸업동기들을 수소문하여 찾아냈다.

무심히 살아오는 동안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도 여러 명 있음을 알게 되어 서둘러야겠다 싶었다. 연결 연결해 대부분 찾은 친구들의 주소와 이 메일을 알아내어 주소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휴대 전화에 한데 묶어 SNS 방을 개설해 모임의 뜻을 알리니 친구들 모두 대 찬성하며 환호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이듬해 가을에 고국의 단풍을 즐기는 ‘칠순기념 여행’ 을 하기로 의견을 모아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 외에도 2019년 봄에는 가족여행과 여고 친구들이 독일여행을 겸해 우리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몇 년 동안 한 단체 활동에 매달렸었기에 시간이 자유롭지 못해 미뤄오던 여행들이었다. 그러다 중책에서 풀려난 여유로움에 서둘러 계획한 여행들이었기에 무척 고심이 되었다. 수술 받은 무릎의 회복과 완치가능성 또한 엄청 걱정되었다. 하지만 일단 사고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행준비를 계속했다.

마침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하니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 여행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었다. 한편 여행계획은 아픔과 걱정, 지루할 뻔 했던 시간을 이겨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회복의 원동력이 되어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걷는 연습을 하게했다.

제법 걷을 수 있을 때쯤 친구에게 나의 사정을 살짝 알렸다. 놀라는 친구를 안심시키고 다른 친구들에겐 비밀로 만약의 경우 여행을 진행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아!~ 참 세상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집 거실 소파에 고정된 다리를 쭉 뻗은 채 지구촌 곳곳의 친구들과 실시간 의논하여 한국의 여행사와 우리만의 맞춤형 여행을 짤 수 있는 현대문명. 파독 후 오랜 동안 편지는 열흘이상, 전화는 시차로 인해 한밤중에 통신국에 신청을 해 놓고 전화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한참 후 연결이 되면 엄마는 “아이고, 야야 전화비 오른다! 얼른 끊어라.” 만 하는 통에 할 말을 채 못하고 끊었어도 통화료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일정계약 아래, 스마트 폰으로 어디로든 무료 문자와 보이스톡이 무한가능하다. 나의 거동이 제한되어 생긴 시간적 여유에 이 공짜 카카오 톡 덕을 톡톡히 보았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 놓고 시시때때로 전 세계의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 한국의 여행사와 더욱 알찬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한편 친구들은 대화 방을 이용해 반세기를 넘나드는 추억담과 사진들을 공유하며 옛정을 되살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뜸했던 서먹함을 허물어 갔다. 한편 건강과 개인사유로 여행을 망설이던 친구들에겐 개별 접촉하여 위로하고 다독이며 용기를 갖도록 부추겼다. 가능하면 칠순짜리 우정의 꽃을 함께 피우려고.

다행히 수술한 다리는 4월을 지날 무렵 퍽 좋아져 제법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4월 말에 세상에 귀여운 손자가 생겨 넋을 잃고 있던 중 오월 초에 소속되어있는 기구의 ‘세계 컨퍼런스’가 중국 칭다오에서 열렸다. 계획에 없던 나들이에 용기를 내어 참석한 후, 지인들과 함께 칭다오와 베이징여행도 함께했다.

칭다오(청도)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삼면이 바다이다. 1898년 독일에 의해 개항된 이후 급속도의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 덕분에 청도는 중국 속의 유럽이라고 했다. 칭다오에 남아 있는 독일식 건물인 총독부와 그 유명한 칭다오 맥주 공장건물들은 당시 독일이 남긴 유산이었다. 그 외에도 독일인이 지은 중국의 첫 성당과 시내 중심가에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인 독일총독의 관저를 모택동이 별장으로 이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들이 현재는 모두 박물관으로 견학 온 학생들과 우리 같은 관광객들로 엄청 붐볐다.

칭다오 관광을 마치고 시속 300km 이상인 고속철CRH, China Railway High-Speed,을 타고 북경(베이징)으로 이동했다. 북경에서 먼저 이회영, 신채호, 이육사 선생님들의 흔적을 찾은 항일역사투어를 했다. 이어 북경의 대표인,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광장, 크고 웅장한 자금성, 자금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산인 경산에 위치한 경산공원과 무대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자막이 나와서 불편함 없이 볼 수 있고 눈을 즐겁게 해준 중국의 3대 쇼 중 하나인 금면왕조를 관람했다.

이 모두는 대륙답게 규모들이 어마어마했다. 아름답고 더 넓은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 다음 베이징시내에서 120km 가량 떨어진 수양마을 고북수진(古北水镇, 구베이수이전)으로 두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했다. 세계정상회담장이며 숙소였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6성 호텔에 짐을 풀었다.

고북수진은 옛 중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가옥들과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잔잔한 물길이 햇살아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길가의 표지판, 길을 잇는 돌다리 등 모두 예스럽고 예쁜 모습의 민속마을. 그리고 멀리 뒤편으로는 마을 전체를 감싸 안은, UNESCO 세계 문화유산인 만리장성 중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사마대(쓰마타이,史馬臺) 장성이 둘러쳐져 있었다. 만리장성 중 가장 험준하고 높은 지대에 위치 해 있지만 그만큼 명(明)나라 때의 원래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었다.

장성 중 유일하게 야간에 오를 수 있는 곳이기에 야경을 즐기고자 어둑한 시간이 되어 하늘 가까이에 있는 이 높은 장성에 올랐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400m의 계단을 올라 장성에 닿는 순간 멀쩡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귀청이 터질듯 바로 머리 위에서 우레와 같은 천둥과 하늘이 천 갈레, 만 갈레로 쩍쩍 갈라지듯 번개가 번쩍였다. 이어 거센 바람이 불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우리 일행들은 아찔한 위험을 느꼈다. 바람에 날려갈 뻔, 벌벌 떨며 다행히 가까이에 있던 망루에 겨우 기어드니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이 와중에도 망루에 뚫린 구멍으로 내려다보던 마을과 산들의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 사진을 찍어댔다. 이 좁은 공간에서 한 시간 반을 갇혀있다 비가 조금 수그러든 사이에 비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나무 가지들을 붙잡고 기듯 걸어가 새앙 쥐 꼴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마을에 도착하니 비는 거의 걷혔다. 우중에도 길에서 중국식 특유의 사극을 레저로 관람하고, 야경 속에서 운치 있는 뱃놀이도 즐겼다. 그러고도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며 신비스러운 볼거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늦은 밤 호텔에 돌아와 온천에 고단한 몸을 담갔다. 물이 얼마나 좋은지 호텔의 식수는 수돗물이라고 적혀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천둥벼락으로 생명이 위험했던 순간들 또한 아득한 추억의 자료가 되었다. 이렇게 고비를 넘기며 걷고 또 걸었어야 했던 열흘 동안의 대륙여행이 무릎 재활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계획되어 있던 다른 여행의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 다쳤던 무릎의 회복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중국에서 귀국한 닷새 만에 우연찮게 역시나 예약되어있던 가족휴가차 오스트리아의 알프스에서의 트래킹도 무사히 마쳤다. 알프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나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놓고 혼자 귀가했다. 미리 날짜에 맞춰 계획했던 한국의 여교친구 4명을 픽업했다.

친구들과 함께 바로 예약해 둔 가이드의 안내로 일주일 간 우리들만의 맞춤관광을 즐기고 우리 집에 와서 짐을 풀었다. 남은 날들엔 쾰른 성당 등 이웃도시들을 다니며 일일 관광을 즐겼다. 집 앞의 루르 강에서 유람선도 타고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느긋이 강변 산책도 했다. 그러다 집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산지대 자우어란드 빈터베르그(Sauerland, Winterberg)의 자연 속에서 3일간 웰빙을 취했다. 이렇게 해서 친구들에게 독일생활을 두루 경험하게 했다. 떠나기 전날엔 보흠에서 Starlight Express 공연을 관람시키고 18일 만에 떠나보냈다.

친구들이 떠난 일주일 만에 1955년 이후 덴마크에 거주하시는 87세의 한국인 지인이 오셨다. 한인 접촉이 거의 없어 한인이 그리운 그분과 일주일을 함께 한국말하고 한국음식을 해 먹으며 조용히 집 주변을 산책하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참으로 유난스레 연이어 꽉 찼던 나의 2019년 5~6월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 냈다. 무릎사고로 무산시키려 했던 모든 계획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무사히 실행할 수 있었던 것에 크게 감사했다.

더불어 자신을 갖고 한국에서의 가을 동창모임을 위해 항공권을 발급받았다. 그리곤 기분 좋게 부푼 마음으로 10월의 한국여행을 기다렸다. 동기들 중 몇을 반세기만에 처음 만나게 되기에 호기심과 함께 설레기까지 했다. 설렘 속에서 세부적 모임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몇 친구들이 함께하기로 했었기에 여행사와 함께 많은 신경을 썼다. 다행이 일 년을 넘게 함께 여행준비를 해 준 여행사 팀장의 친절은 예상 밖이었다. 애초에 칠순의 우리들이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함으로 품위를 지키며 우리들만의 우아한 여행을 바란다고 했다. 이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 주었다. 수시로 바뀐 우리들의 요구 사항을 짜증 한 번 없이 들어 주었다. 이 또한 대단히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다.

나이에 상관없이 생각만 해도 그리움이 일렁이는 고국! 고향! 고난을 이겨내고 풍요로워진 고국에서 우리들은 처음 타본 프레미엄 버스로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정답고 재밌게 여행을 즐겼다. 반짝이던 고국의 가을 햇살 아래에서 반백년을 묵살하고 되찾은 우정과 웃음보약을 심신에 떡칠했다.

근 5년을 한 기숙사에서 동거 동락하던 우리들은 서로서로를 아우르며 우아할 만큼만 느긋한 움직임으로 아름답던 한반도를 두루 돌면서 생애 최고의 행복감을 뼈 속 깊이 저장했다. 줄어드는 남은 날들이 허전할 때 야금야금 빼 먹으려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은 억울하지만 이미 직장과 자녀들에게서 해방이 된 칠순의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해했다.

우린 2022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움을 머금은 채 헤어졌지만 오늘도 카톡 방을 들락거리며 COVID-19를 무사히 이겨내라고 문자를 주고받는다.

2020년 4월 24일, 1168호 16-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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