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4)

전성준

사우디 한국 토목공사 현장 소장인 고향 선배가 잠시 독일 출장 가는 길에 따라 나선 박기수, 그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먼저 찾은 곳이 중앙역 근처 카이저 스트라세 허름한 민박집이었다. 때 마침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앞두고 그가 찾은 민박집 주인을 따라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던 비스바덴 한인회 송년 잔치를 찾았다.

낯 설은 타국 땅 아는 사람이 없는 동포 망년회를 찾은 그는 오랜 가뭄에 물을 찾은 물고기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분위기를 압도 했다. 맥주 몇 잔에 거나하게 술기가 오른 그는 디스코에서 사교춤까지 춤 실력을 발휘하는가 하며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노래로 관중의 심금을 울렸다. 고만 고만한 동포 사회에 혜성같이 나타 난 그는 분위를 리드하고 그의 걸출한 춤 실력은 망년회를 열광케 했던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한인 동포 사회에 박기수의 선풍적인 입지를 확보한 그가 유명인 행세를 하고 있을 즈음 그의 실체를 달수씨가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정을 하고 도리어 자신을 음해하는 것으로 심한 갈등이 있었으나 달섭씨의 한국에서 전력을 알고 난 뒤 박기수는 꼬리를 내렸다. 가진 것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독일 땅을 찾아 와 멘 땅에 헤딩하듯 살고 있는 자신을 위해 한번만 눈을 감아 달라는 박기수의 간곡한 간청에 달섭씨는 모른 척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박기수는 달섭씨를 친형님 못지않게 따랐으며 술을 좋아 하는 달섭씨가 술친구와 어울려 술판을 벌릴 때 슬그머니 뒷전에서 술값을 계산해 주는가 하며 달섭씨 호주머니에 돈 봉투를 찔러 주는 등 달섭씨의 체면을 크게 세워 주웠던 박기수였다. 그러나 유엔군 아줌마들이 남편 따라 본국으로 떠나고 복고풍 춤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그의 인기가 점점 쇠퇴 할 무렵 그는 여행 가이드와 골프 도박을 주선하는 등 다른 분야에 주목하는 인물이 된 뒤로 달섭씨와 연락이 뜸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그의 근황을 전혀 모르고 지내다 봉수를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에 감염 중증 환자로 대학병원 격리병동에 수용되어 쓸쓸히 이 세상을 하직 했을 기수를 하고 망연자실했다.

달섭씨 자신도 언제 어느 때 자신을 덮칠 줄 모르는 죽음의 코로나 공포를 벗어 날수 없었다. 병구도 죽고 기수도 이 세상을 떠나고, 다음 차례는 과연 누구일까… 불길한 생각을 하며 밤낮으로 바짝바짝 피가 말라 가는듯한 불안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때 마다 차라리 술이나 마시고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술친구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술이란 상대가 서로 권커니 잣거니 분위기에 따라 술이 땅기고 흥이 나는데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스스로 독약을 마시는 것 마냥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술 생각을 접어 두고 무료한 시간 대신 눈앞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집념이 강한 그는 독일의 명품 라이카 카메라와 롤라이 하셀드라드 카메라에 흠뻑 반한 그는 그 때문에 독일을 동경했고 독일행을 택했다.

연예부 사진기자로 있을 때 일제 카메라 미놀타와 콘택스를 들고 다니던 그가 고가인 명품 독일 라이카 카메라와 롤라이 흐렉스 하셀드라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행세하던 선배 기자들을 볼 때 마다 나도 언제쯤 저런 명품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선망하던 때 마침 독일 광부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 3년을 마치고 라이카 카메라를 사들고 귀국을 꿈꾸던 때 광산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활차에 끼여 오른 손 팔목이 아작이 났다. 산산 조각 난 뼈를 원상대로 복구 완치를 받으나 팔목을 바로 펼 수 없는 장애자 2급 판정을 받고서 독일에 눌려 앉은 것이다.

장애자 2급 판정을 받고 그가 택한 직장은 대학 병원 환자 급식 배달 기사였다.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 입원 환자들을 위한 식사와 커피를 카트에 실고 소형 버스로 대학 병원 각 병동을 찾아 배달하는 일을 20여년 종사하다 정년을 맞은 것이다.

생판 자신의 꿈과 희망이 다른 직업을 선택 정년을 맞은 그는 울적한 마음을 늘 쉬는 날 술친구와 어울려 술판을 벌려왔다. 이렇게 살아 온 그를 코로나는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게 했다. 외부 출입을 절제하고 집안에 묻혀 지내던 그가 설상가상으로 예기치 못한 코로나 증상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부부간 각방을 사용하게 되고 격리기간 마스크를 쓰고 지내며 겨울 철 긴 밤을 지세우고 있노라니 온갖 환상과 악몽에 시달려 왔다.

시시각각 자신한테도 멀지 않아 불행한 일이 닥쳐오리라 상상을 하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각 증상에 발버둥을 쳤다. 어느 때는 눈을 감았다 하면 눈앞에 기수가 나타났다. 잘 생기고 헌칠했던 그의 모습은 간곳없고 피골이 상접한 미이라 같은 그가 달섭이 형님! 하며 그 앞에 나타나 손짓을 하며 달섭씨를 부르는 꿈을 꾸었다.

그 때마다 온 몸이 물에 젖은 듯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밤이 두렵고 어둠이 두려웠다. 불안과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자신을 향해 한 발 두발 다가오는 망상 속에 빠져 가고 있을 즈음 때마침 커튼 사이로 레이져 불빛 같은 강력한 햇살이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구름 사이로 가려진 해가 석양을 앞두고 잠깐 얼굴을 내민 그 햇빛이 길 건너 게오르그 킨더슐레 2층 창에 반사되어 어둑어둑한 달섭씨 침실을 환하게 밝혀 준 것이다.

순간, 기억의 뇌 세포가 하나 둘 죽어 가던 달섭씨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스쳐 가는 장면이 나타났다. 옛날 서울 어느 극장 시사회에 초대되어 보았던 십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구세주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 하나님 등 뒤에 나타난 강력한 빛이 달섭씨 눈에 나타난 것이다. 몸이 허약하고 심신이 탈진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환각 증상일까. 마침 잠시 멈췄던 재채기가 다시 튀어 나왔다. 심한 재채기에 충격을 받은 청각이 마비되어 한 순간 귀 속이 멍한 정적이 감돌았다.

달섭씨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춘자씨가 침대 옆에 놓고 간 따끈한 생강차를 한 모금을 마셨다.

막혔던 귓속이 뻥 뚫리고 조용했던 정적이 사라지고 어느 곳에서 흘러들어 오는지 알 수 없는 은은한 노래 소리와 멜로디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듯 말듯하다 불현듯 떠 오른 노랫말과 멜로디는 어느 해인가 성탄절 날 유명 호텔 디너 쇼에서 애절한 가락으로 심금을 울려 주었던 가수 윤복희가 부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Higher Ground> 찬송가였다.

저 높은 곳을 향하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 합니다.

내 주여 내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넘처 옵니다.

그 찬송가는 달섭씨를 용수철에서 튕겨 내듯 침대에서 불뚝 일어나게 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구쳐 올랐는지 불뚝 일어난 달섭씨는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슬며시 침실을 빠져 나와 찬송가가 들리는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 틈 사이로 찬송가를 펴 놓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춘자씨가 눈을 감고 두 손바닥을 모은 채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달섭씨 눈에 확 들어 왔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지금 길을 잃고 황야를 헤매고 있는 저 늙고 병든 양이 하나님 품에 안겨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간, 달섭씨 몸에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그리고 조금전 자신이 떠 올렸던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보았던 그 강력한 햇빛이 거실 창 틈 사이로 다시금 눈부시게 그의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달섭씨 몸에 일어난 그 열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난 병적인 열기가 아니었다.

그 열기와 강력한 햇빛은 달섭씨가 일흔 여덟 해 살아 오는 동안 처음 경험한 신비한 빛의 순간이었다. -끝-

1201호 16면, 2021년 1월 8일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