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9)
사회문화적 청산(2)

과거청산은 일차적으로 과거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목표를 두지만 궁극 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즉 과거에 발생한 과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밝혀 또 다시 유사한 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면역력과 비판의식을 함양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과거청산 과정에서 규명된 진상은 교육과 계몽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더욱이 사법적 청산이 많은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과거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안적 과거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 박물관과 추모지를 통한 기억화


과거사를 기념하고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관, 박물관 및 추모지의 건립은 과거청산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사통당 독재의 역사를 고증하고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지가 건립되어 과거청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기억의 공간은 무려 600곳이 넘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우선 베를린 장벽 추모지(Gedenkstätte Berliner Mauer)를 들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은 독일 분단의 상징물로, 동독 이탈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다. 베를린 장벽 추모지는 이러한 분단의 비극을 되새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8년 베를린 베르나우어가에 건립되었고, 이후 2011년까지 확충되었다.
추모지가 있는 베르나우어가는 동독 시절 동서 베를린의 접경지대로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곳이다. 건축가들이 추모지 건립 당시 60m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의 잔재를 살려서 설계를 했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분단의 비극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 재단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베를린 장벽의 역사 및 장벽의 잔존물에 대한 전시회를 개최하고, 베를린 장벽을 둘러싸고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독일 분단사 전반에 대한 기록 영화를 상영해 기본적인 역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각종 추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장벽을 넘다 사망한 136명의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이 전시된 격자창 스타일의 추모 공간도 있다. 더불어 약 1.4km에 달하는 추모지 곳곳에 베를린 장벽에 관한 사진, 비디오 영상 및 음향 파일 등으로 꾸며진 야외 전시 공간을 마련해 사통당 정권의 독재에 대한 계몽을 시행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슈타지 기념관 및 박물관을 들 수 있다. 베를린의 슈타지 박물관은 국가안전부장관 밀케의 집무실이 있었던 국가안전부 본부 건물 1동에 마련되어 있다. 이는 ‘베를린 노르마넨가의 반스탈린주의 활동 연합(Verein Antistalinistische Aktion Berlin Normannenstraße)’이 운영하고 있는데, 주로 동독 민주화 혁명 과정에서 결성된 노르마넨가 시민위원회(Bürgerkomitee Normannenstraße) 출신 동독인과 과거 동독 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민권 운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슈타지 해체 과정에서 슈타지가 사회 감시에 사용한 대다수 장비들은 슈타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대로 보존한 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한편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슈타지 벙커 박물관(Museum im Stasi-Bunker)은 과거 국가안전부가 비상사태 혹은 핵전쟁을 대비해 비밀리에 만든 벙커를 전시실로 이용해 국가안전부의 실체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라이프치히 국가안전부 책임자는 1969년부터 1972년에 걸쳐 비상시에 100명의 요원과 함께 대피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벙커를 지었다. 약 5.2 헥타르에 달하 , 거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이 벙커 박물관은 국가안전부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정기적으로 시행한 다양한 훈련을 고증함으로써 사통당 정권과 국가안전부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권력을 지키고자 했는지를 알려 준다.

  • 청소년 대상 교육의 강화


근래에 이르러 독일의 다양한 과거청산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은 미래를 위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청소년을 위한 교육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독일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이들의 동독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독일 연방 및 주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청소년들이 사통당 독재의 역사와 과거청산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 연방 공화국 대통령, 혹은 독일 연방 및 주 정치 교육 센터 (La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는 동독사를 포함한 역사·정치에 관한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그 결과물을 제출하는 공모전을 해마다 개 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는 단편적 지식을 넘어 독일 분단사와 동독의 독재 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 심화 학습을 유도하고 이들에게 비판적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과거청산 관련 기관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국가안전부 문서관리청 교육부서는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역사·정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국가안전부 문서 관리청 교육부는 교사들이 국가안전부와 사통당 독재 체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우선 국가안전부가 남긴 방대한 자료를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편집해 교사들에게 수업 참고 자료로 제공하고, 교사들이 효율적으로 국가안전부 문제를 가르칠 수 있도록 교수 방법 연수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이 국가안전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위한 정보서도 출판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서적은 국가안전부의 감시와 탄압을 청소년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예컨대 국가안전부의 비공식 정보원이 된 동독 청소년들의 사례와 동독 청소년의 저항 행위 등을 소재로 삼아 청소년들의 관심과 공감을 유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자료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상으로 제공되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상을 통해 볼 때 통일 후 독일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통당 독재에 대한 역사 교육과 희생자에 대한 추모작업이 꾸준히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인과 민간 차원에서도 자발적인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짐에 따라 사통당 독재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잘 알수록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힘이 커지는 만큼 이러한 사회문화적 청산의 노력은 정치적, 사법적 청산이 갖는 한계를 보완하며 과거청산의 성과를 공고히 하 는데 기여할 것이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205호 31면, 2021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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