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33)
독일의 정당(3) – SPD ➀

독일은 ‘정당국가’라고 칭해질 정도로 정당의 법적·정치적 위상이 높은 국가이다. 이러한 정당의 높은 위상은 독일 민주주의와 나치즘의 역사, 그리고 선거와 국가체제 등 제도적 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낳은 결과이다. 세계에서 정당정치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독일정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독일 기본법상의 정당과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연방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을 창당 순서로 살펴본다.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in Deutschland, SPD) ➀


사회민주당(SPD·이하 사민당)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삼고 스스로 ‘좌파 정당’이라고 칭하는 등 이른바 ‘진보정치’의 산 증인과 같은 정당으로 손꼽힌다.사민당의 기원은 1863년 라살(F. Lassalle)의 주도로 만들어진 ‘독일노동자협회’와 1869년 베벨(A. Bebel)과 리프크네히트(W. Liebkncht) 주도로 만들어진 ‘사회민주노동자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단체는 1875년 고타에서 합동 당 대회를 열어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통합하였으며, 이후 1890년에 ‘사회민주당’으로 그 명칭을 바꿨다.
‘고타 강령(Gothaer Parteiprogramm)’에서부터 사민당은 국가 내 합법적인 정당으로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밝혔는데, 그 뒤로도 치열한 노선투쟁을 통해 혁명주의 노선을 청산하고 의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추구하는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한 당내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갈무리된 강령 속에 담겼다.
사민당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강령 가운데 하나는, “계급에 바탕을 둔 노동자의 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의 전환,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 냉전 체제의 인정” 등을 천명한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Godesberger Programm)’이다. 이처럼 이념보다 현실을 강화한 노선을 바탕으로 삼은 사민당은 1969년 자민당(FDP)과의 연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펼쳐진 ‘사회민주주의 15년’은, 경제 발전과 복지제도 강화와 같은 사회정책의 제도화 등을 이뤄내 오늘날 ‘사회국가’ 독일을 만드는 기틀이 됐다. 분단 현실의 인정에서 출발한 ‘동방정책’은 화해와 공존의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애초 사민당은 현실적 집권에 몰두하는 권력정치 정당이라기보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계급정당으로서 정치운동 조직에 가까웠다. 그런데 집권당으로서 15년 동안 펼친 개혁이 한편으론 사민당 고유의 ‘운동성’을 실종시키고 당을 기득권 정당으로 만들었다. 사민당 집권 기간 동안 되레 평화운동과 환경운동 세력들이 사민당 바깥으로 뛰쳐나가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운동성을 포기하지 않은 진보정치 세력들은 녹색당, 좌파당으로 각자의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게 됐다. 또한 사민당이 통일에 대해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옛 동독 지역에서 어떤 지지세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도 쇠퇴의 원인으로 꼽는다.
사민당은 90년대 말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앞세워 다시 집권하긴 했으나, 대대적인 복지 축소와 노동 개혁을 펼친 그의 ‘신(新)중도’ 노선은 당세를 더욱 본격적으로 축소시키게 되었다.
1972년 총선에서 45.8%의 득표율을 보였던 사민당은, 지난 총선이었던 2017년 총선에선 고작 20.5%의 득표율에 그쳤다. 1975년 110만명 이상이었던 당원 수는 현재 43만명 수준이다.

◈ 사회민주당의 역사

  • 바이마르공화국 공화국 이전 (1863-1918)


사회민주당은 1863년 5월 23일 페르디난트 라살이 라이프치히에서 만든 전 독일 노동자 협회와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주도로 1869년 8월 아이젠나흐에서 만들어진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두 조직은 “독일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로 갈라졌었다. 라살레주의자들은 소독일주의를 아이젠아흐 쪽은 대독일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제국이 성립되면서 그 차이는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1875년 5월 고타에서 합동 대회를 열어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통합하게 된다.

  • 당명의 개정

독일 제2제국(보불전재 이후 비스마르크주도로 수립된 독일제국)시기 독일 사민당은 독일제국의 내외 정책에 대해 아주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1878년 비스마르크의 제국의회에서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제정되면서 12년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독일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집회를 가지지 못하게 하면 다른 나라에서 갖는 등 지혜를 발휘하여 극복하였다.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폐지되는 1890년 독일 사회민주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으로 당명을 개정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를 공식적으로 지향하였다.

  • 이념의 변화

초기 사민당은 노동조합과 가까웠으며 19세기 유럽의 사회주의 또는 사회 민주주의당과 비슷하게 이념적으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영국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베른슈타인에 의해 수정주의이론이 제기된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여 사회주의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 수정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야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당은 정식으로 채택하기 이전부터 베른슈타인(E. Bernstein)의 수정주의를 곳곳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전시 공채 발행 문제로 독일 사회민주당은 심각한 내분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당원 및 의원들이 전시 공채 발행에 찬성표를 던졌고, 소수 세력들이 이에 반발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세력 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져 한동안 두 개의 당으로 분열되기도 했다.

찬성표를 던진 다수파 세력들은 다수파 사회민주당이라 불렸으며, 소수파는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이라는 당을 창설했다. 후자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Ruxemburg(와 카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등이 주요 지도자였다. 그러나 독립사회민주당은 그들보다 더 급진적 좌파인 독일 공산당(KPD)과 다수파 사회민주당 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결국 다수파 사회민주당과 다시 통합하게 된다.


교포신문사는 독자들의 독일이해를 돕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황경, 교육등에 관해 ‘독일을 이해하자’라는 연재란을 신설하였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1205호 29면, 2021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