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1)

동서독 문화통합(1)

통일독일의 문화통합 작업은 분단에 따른 동서독 간의 문화적 이질화 현상을 되돌리는 작업임과 동시에 통일국가로서의 새로운 문화공동체적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었는바, 독일의 제도적 통합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 안 에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심리적 통일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통일 초기 동독지역 주민들이 갖고 있던 2등 국민의식과 열등주의, 패배주의,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서독 주민들이 갖고 있던 통일비용 부담에 따른불만, 동독 출신자에 대한 차별의식 등의 심리적 갈등이 통일 후 통합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내적 갈등 속에서 동독지역에 공산당의 후신 정당인 민사당(PDS)이 출현하여 동독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일통일 과정에서 문화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통일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하는 동인(動因)이었으며, 통일을 촉진하는 촉매제로서도 기능을 하였다. 통일 이후에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심리적 통일을 강화하는 주요한 기회이자 수단으로서도 문화통합이 기능을 하였다.

문화통합이 정치·제도통합과의 다른 점

정치적·제도적 통합과는 달리 문화통합은 문화라는 제도화·규범화되지 않는 가치관을 포함하는 생활양식을 통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문화통합은 정치·제도통합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먼저 정치·제도통합은 외적 통합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문화통합은 심리적 통합 등 내적 통합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화통합의 정도 등을 측정하는 것은 정치·제도통합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 문화통합은 단일성과 획일성을 목표로 하는 정치·제도통합과는 달리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문화공동체로서 통일국가가 갖게 되 는 문화적·심리적 공통분모를 형성하고자 한다.

셋째는, 문화통합은 국민의 의식, 가치관, 심리, 공동체 의식 등과 같은 비제도적 요소의 통합을 지향하며,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 만큼 통일국가에 있어서의 주요 과제인 국민통합의 달성과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분단국이 정치적·제도적 통일을 이루게 되면 각 분야별 통합작업 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문화 분야의 통합작업은 서서히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된다.

동서독 문화통합의 특징

독일의 통일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며, 특히 서독 정부의 동방정책 이후 약 20여 년간의 통일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분야에서의 동서독 통합 또한 문화적 단절의 극복이자 원래 하나였던 것을 다시 하나로 하는 ‘재통합(Wiedervereinigung)’으로서, 통합의 힘과 분단의 힘 사이에서의 변증법적 역사발전 과정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일 이후 이루어진 통일독일의 문화통합 노력은 분단시기 이루어 졌던 동서독 간 문화교류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점은 다른 분야에서의 동서독 통합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서독 문화통합의 특성은 독일의 분단 및 통일과정의 특성과도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분단 시기 문화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은 여타 정치경제적 교류협력에 비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통일 후 제도적 통합 이후에 심리적 후 유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독은 서독과의 정치적 분리뿐만 아니라 민족적 분리를 시도하여 자신들을 독일 사회주의 민족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공통의 민족의식에 기인한 문화교류협력을 추진하고자 하는 서독의 노력을 차단하였다.

이러한 동독의 입장으로 인해 동서독 간의 문화협력은 이념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문화교류협력도 다른 분야에 비해 소극적으로 진행되어 문화협정이 1972년 기본조약 체결 후 14년이 경과한 1986년에 이르러서야 체결되었다. 동서독 간의 사례는 문화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정치경제 등 다른 분야의 교류협력에 비해 매우 어려운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통일 이후 구동독지역에서의 문화통합 작업을 각 주가 주도하였고, 연방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통일 이후 구동독지역에는 5개의 신연방주가 설치되었는바, 독일 기본법 상의 관할권 배분 원칙에 따라 각 주가 문화통합 문제를 관할하게 되었다. 따라서 구동독지역에서 행해지는 문화통합 작업에 대해서 구동독의 시민들이 주체가 될 수 있었으며, 자율적인 문화통합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

셋째, 구동독지역에 대한 문화통합과 문화행정 체제의 재편은 대규모의 문화 분야 구조조정을 야기하였다는 점이다.

문화행정 체제가 지방자치가 주도하는 분권적 사무로 전환됨에 따라 동독시절에 중앙집권식으로 행해지던 동독 정부와 공산당에서 운영해 온 문화 시설들이 폐쇄되었으며, 문화 단체와 기관들 또한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구동독지역에서 일하던 많은 문화계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발생하여, 문화통합에 있어서의 갈등요소로 작용하였다.

넷째, 문화통합에 있어 연방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연방정부는 새롭게 설치된 신연방주 정부의 재정 및 업무 부담을 덜어주 기 위해 1994년 말까지 동독 정부가 운영하던 문화예술지원기금을 함께 관리하고 지원하면서 문화행정 체제의 정비 및 문화통합 사업의 추진을 지원 하였다.

그 결과 베를린의 국립도서관과 박물관들에 있던 소장품의 재배치와 통폐합을 비롯해 많은 구동독의 문화기관들이 효율적으로 재편되었으며, 소위 ‘등대사업’을 연방 차원에서 추진함으로써 구동독지역에 소재하는 주요 문화시설의 보존과 복원 등에 대해 주정부와 협업을 진행하였다.


교포신문사는 2020년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연재를 통해 살펴보며,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편집자 주

1207호 31면, 2021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