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 “베를린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일본 <산케이신문> 5월 11일자 보도, <연합뉴스> 5월 11일자 보도) 한 국가의 총리가 다른 수상을 만나는, 이른바 정상회담의 자리에서 상대 국가 도시에 세워진 한 기념물 철거를 요청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곤혹스럽다.
베를린 소녀상은 국가가 세운 것이 아니라 평화와 정의를 염원하는 베를린 시민들이 세운 기념비이다. 또한 정상회담 장에서 숄츠 수상이 직접 언급한 바와 같이 소녀상은 베를린 미테구를 관장하는 미테구청의 담당 부서에서 적법한 심사를 통해 설치가 허가된 기념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례적으로 일본 총리가 나서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 및 시민사회의 활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전체주의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일본정부가 지자체의 행정에 연방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독일의 정치문화에 무지할뿐더러 “총리가 전달하면 강한 메시지가 될 것”(<산케이신문>에서 재인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개입에 대한 낡은 수직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일본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한편 코리아협의회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운영 및 소녀상 영구 존치 운동 외에 주요 사업으로 독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을 진행해왔다. 이것은 베를린 소녀상을 주제로, 본 단체가 3년간 지속해온 핵심 사업이다. 모든 사례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본 단체가 독일 학교, 공공기관, 지자체, 청소년단체들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일본대사관을 비롯한 일본 측의 교묘한 방해와 압력, 끈질긴 협박 메일로 본 단체는 말로 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과 재정적 손실이 축적된 상태이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행태는 그동안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공공연한 압력 행사와 개입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시민사회의 활동에 재갈을 물린다 하더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사실’이 지워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일본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독일정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시 벌어졌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반인륜적 전범 행위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치유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활동인 것이다.
2020년 12월 1일과 3월 18일, 미테구 지역의회가 미테구청에 소녀상을 영구히 보존할 것을 요청했지만, 구청은 이를 무시하고 있는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올해 9월 28일 이후로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며칠 전에는 한국에서 우익 인사들이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위해 미테구 담당자를 만나러 베를린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제도가 날조된 것이라며 식민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생존자들을 가짜 위안부라고 모욕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고 친일 및 극우활동을 벌여온 이들이다.
이에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중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소녀상 존치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소녀상 철거를 막아내기 위한 시민의 힘을 모아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소녀상 철거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더 이상 가해자에 의해 은폐되지 않도록 소녀상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나아가 일본은 자국에 스스로 소녀상을 세우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시 성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베를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들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서명 부탁드려요!
온라인 서명 하러가기 (클릭하시면 링크된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1268호 17면, 2022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