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69회: “앞선 세대를 이어가는 다음 세대들”

독일의 명절이 부활절과 성탄절이라면, 한국의 명절은 설과 추석이다. 설은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명절로 지내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고, 나라의 상황에 따라서 이중과세라고 하여 휴일의 날짜를 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설은 큰 명절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계신 동포들은 한국의 명절과는 무관하게 살아가고 계시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다 보니 한국의 가족 친지들과의 소통이 많아지게 되었고, 올해도 설을 맞으면서 새해를 축복하는 인사와 다양한 축하 사진들을 많이 주고받는 것을 보게 된다.

설에는 어른들에게 세배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로 무병과 건승을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어서 떡국과 맛있는 명절 음식을 나누며 풍성한 설을 맞게 된다.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들도 찾아가 봉투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복을 기원하며 인사를 드렸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덕담하며 세뱃돈도 주었다. 집집마다 준비한 음식이 비슷하다 보니, 같은 음식을 사양하지 못하고 여러 번 먹었던 추억도 있다. 설 명절은 세대와 세대가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사랑과 감사를 나누는 축복의 시간이다.

AUA 4기 자원봉사자수료식

설 명절을 맞아, 베를린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베를린에 살고 계시는 고령 동포와, 독거 또는 장기요양등급 어르신들에게 명절 음식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새해 인사를 겸하여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여서, 어르신들 도시락 봉사에 그동안 함께 해왔던 “해로”에서 수고를 맡아서 하기로 하였다.

명절 음식으로 80여 명의 도시락을 한꺼번에 준비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드려서 방문 약속을 잡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로의 자원봉사자들은 명절 도시락을 받고 기뻐하셨던 어르신들의 모습을 생각하여,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믿고 기꺼이 수고를 감당하기로 하였다.

파독근로자로 독일에 오셔서 긴 세월을 보내시느라 몸과 마음이 힘드신 어르신들에게 타국에서의 명절은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고 외롭기까지 하다. 아주 작은 도시락이지만 정성이 담긴 맛있는 명절 음식으로 이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가 커서 힘들다는 생각을 잊게 하였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해로의 봉사자들은 역할을 나누어 열심히 준비하였다.

이번 도시락 봉사의 특징은 작년보다 더 많은 봉사자가 음식을 만들기에 동참한 것이다. 도시락 반찬의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더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기꺼이 자원하여 수고를 해주시겠다는 봉사자들도 많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다. 선한 목표와 뜻이 있을 때, 그 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 분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번에도 증명되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쁨으로 섬겨주시기에 맛도 최고였고, 양도 풍성하였다.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배달하려고 차량 봉사팀을 5팀으로 나누어 신속하게 배달해 드렸다. 젊은 봉사자들이 밝은 미소로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와 함께 도시락을 전해드릴 때, 어르신들이 매우 흐뭇해하셨고,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어떤 분들은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를 아시고 초콜릿과 같은 간식을 미리 준비하여 격려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나중에 전화와 문자를 주셔서 지금까지의 어떤 명절 음식보다도 최고로 맛있었다고 감사 인사와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봉사자들도 모두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작은 봉사였지만, 꼭 필요한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였다고 오히려 감사하였다.

해로의 봉사는 단순히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일만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해로는 어른 세대를 섬기면서 동시에 젊은 다음 세대들을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해로는 어르신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젊은 세대가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어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음 세대가 기억하고 본받도록, 가르치고 계승하는 일들도 감당하려고 한다.

어르신들이 어르신들을 섬길 수는 없다.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은 다음 세대인 젊은 세대가 해야 한다. 그러기에 다음 세대와 소통하고 다음 세대를 봉사의 현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사실 지금 해로가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도 모두 다음 세대 젊은 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선 세대가 일궈 논 많은 일들이 지속가능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가 어른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 일들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은 해로가 젊은이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젊은이들이 꾸준하게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아 봉사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한인사회는 이전보다도 더 나은 모습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설 명절 도시락 봉사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일이고, 우리 한인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지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을 섬기며 세대를 이어가는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나이 많은 노인을 공경하며 높이 받들어 모시고,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위기 19:32)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00호 16면, 2023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