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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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의 생일날 만나는 지인들은 정해져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 년에 한번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끌어안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이 가져오는 자연현상으로 생일 손님들의 숫자가 줄었다.
그동안 친분이 있었던 베라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동베를린에 사는 베라의 오빠는 노병으로 참석하지 않은 지가 3년째라 들었고 여동생은 베라가 70 살 되는 날 돌아가셨다. 그녀의 가족은 물론 몇 명의 옛 동료와 친한 친구 한 명과 남독에 사는 딸이 참석하고 이웃 사람이 빠지지 않는다.
나는 베라를 1970년 10월 1일 처음 만났다. 그 전날 도착한 20명의 한국 간호사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라는 청탁을 받아 우리에게 왔다. 우리에게는 최초의 독일인이었다. 그 속에 끼어 만나게 된 나는 그날로 시작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왔고 멀리 있는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잊지 못할 그날은 냉기를 담은 가을비가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린 그 전날과 다름없이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카스타니언 고목 아래 모여 서서 베라를 맞았다. 고향 산천과 부모 형제 죽마고우 들과 작별하고, 지구의 반을 날아와 도착한 우리 20명의 심신은 아직 공중에 떠있었다.
독일 땅에 두발을 디디고 서긴 했는데 우리의 영혼은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제트랙의 피로에 쌓인 우리들의 손을 돌아가며 잡고 자기소개를 했다. 20 명의 젊은 한국 여성들 중 11 명이 기혼으로 젊은 남편과 어린 자식들을 두고 온 터였다. 베라는 말을 가르쳐야 할 선생님으로 우리를 맞았으니 오히려 피로에 젖은 우리보다 더 흥분하고 긴장 상태였다.
최소한의 필수조건인 환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기대한 의도였다. 이렇게 우리는 노동 계약이 정한 월급을 받으며 독일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
두고 온 오만 가지 걱정들과 어린 자식들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 독일어 단어가 뒤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상황을 종종 생각하며 회상에 잠기는 분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
나와 베라와의 첫 상면은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의 순간이었다. 나의 이국생활에서 중요한 의미 깊은 날이 되었다. 그녀는 55년의 세월을 지켜온 나의 은인으로 지금까지 파란만장의 인생길에서 나를 지지하고 동행했다. 그녀는 우리 20명이 그녀의 첫 클라스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잊을 수가 없는 만남이라고 말했다
베라는 몇 년 전부터 85 살의 생일을 기해 자서전을 출판한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준비한 원고를 보여주며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을 위한 것으로 걸어 나온 자취를 남기는 일로 끝나가는 생을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했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기대가 컸다.
그녀는 철학과 독문학을 전공한 다독가로 자서전을 출판 하는 일은 여생의 숙제라고 말했다. 시도해본 사람들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은 수정 할 수 없는 없기에 그냥 기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영감에 의지하여 인생살이를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거나 상상을 기록해 보는 것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베라는 자주 말했다.
글자에 내용을 담아 표현한 문장이 마음에 안 들 때면 지난 과거의 한 부분을 앞뒤로 잡아당기고 옆으로 돌려서 수정하고 삭제하고 추가하면서 읽는 사람들의 측면에 까지 고려해서 사실 표현을 해야 한다. 옛날의 한 조각을 아물아물 한 망각의 골짜기에서 끄집어내어 기억을 더듬다 보면 회 한의 아픔이 몰려온다.
혹사라도 문장 하나에 묻혀 나온 이야기가 가족 중의 한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지도 몰라 조심해야 한다. 과거의 일들은 때때로 가슴속을 채워 떠나지 않기에 며칠을 앓기도 한다. 기록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일이다.
나는 베라의 자서전 속에 반세기 전 우리의 이야기와 우리의 모습을 기록되어 남는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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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이면 베라는 86 살이 된다. 새해를 기해 일월 초에 방문한 그녀는 자서전이 계획보다 일 년 늦게 나오는 거야 그렇게 문제가 안 되지만 그때까지 남은 힘이 견뎌줄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동안 체중이 줄어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신체적인 것보다 심리적으로 많이 허약해졌고 내면 속에 감추고 살아온 심병이 그녀를 허약하게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예감 하게 되었다
때때로 그녀는 기억상실증으로 절망적인 날을 보내며 희망을 잃어갔다. 그녀는 말이 적었고 불만 토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살아왔다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 나에 대한 부분은 미리 읽어봐야 한다며 마누스크립트 뭉치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첫날 만난 장면, 나에게 받은 첫 인상, 지켜보며 나를 관찰한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원에서 둘이 손을 잡고 서서 찍은 사진과 옆얼굴이 찍힌 나의 독사진이 프로필로 한 페이지를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 대한 것은 자세하게 읽어 보아야 한다며 다시 재촉 했다. 단 한마디의 한국말도 모르는 베라와 해외개발공사에서 2개월 간 준비 과정의 반공교육에 섞은 독어 문법이 언어 전 재산이었던 우리가 만났던 날, 그녀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있었던 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베라는 두 남매를 가진 서른 살의 젊은 어머니였고, 지구의 반쪽을 날아온 동양인 우리가 그녀의 첫 코스였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20명의 한국 간호사들이 남긴 기억은 그녀를 평생 동행한 셈으로 나와의 친구 사이가 된 것은 그녀의 인생에 큰 선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베라는 짧은 3개월 동안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독일어를 가르쳐서 환자들을 대하는 간호사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를 수행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12월 말 3개월의 코스가 끝나자 그녀가 우리를 위해 크리스마스 파티 겸 작별파티를 주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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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스크립트를 접는데 낯선 남자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양복에 창 넓은 모자를 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 미남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의 설명을 읽기 위해 다시 마누스크맆트 위로 고개를 숙이며 집중을 했다
토니는 나의 의도를 금방 알아보고 “나의 아버지 사진이야!” 했다.
베라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처음으로 그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서 살해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베라를 데리고 재혼하여 두 동생을 낳았고, 그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사진과 서류를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그녀는 자서전에 아버지의 사진을 올리고 아버지 집안의 내역을 추적해서 쓰는 일을 극복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말하며 두 눈에 담긴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때까지 베라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코등이 시큰해 오는 것을 숨기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지난날 셀 수없이 많이 나를 끌어안아 나의 아픈 마음을 풀어주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안아 준 적이 없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녀의 힘없는 어깨 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끝)
1448호 14면, 2026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