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 임수경 방북도 30주년

-동베를린과 동독, 그리고 북한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연속 토론회 열린다

‘통일의 꽃’ 임수경이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은 지 30년이 흘렀다.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측 대표로 참가하여 당시 타도의 대상으로 성토했던 그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올해 북한 최고지도자와 함께 넘었던 그 군사분계선이다. 임수경의 군사분계선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분계선은 둘 다 역사적인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오늘날의 시대상황에 비추어보면 좀더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읽히게 마련이다. 그만큼 한반도의 정세와 트럼프를 위시로 한 미국의 대북외교, 북한에 대한 시민정서가 그동안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임수경이 30년 전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분단된 독일이라는 역사적인 시대상황 또한 기여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빌리 브란트 대통령의 동방정책으로 인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의 왕래가 가능했기에 비로소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던 베를린 한인시민단체 동포들의 숨은 노력도 뒷받침되었다. 이렇듯 독일의 옛 역사가 결과적으로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친 사실은 그 동안 깊이 있게 성찰된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장벽붕괴 30주년을 맞아 베를린에서는 이와 관련된 의미 있는 연속 토론회가 진행중이다. ‘베를린, 북한으로 가는 창’이란 제목으로, 동독과 북한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해보는 총 3회의 패널토론회가 그것이다.
첫 토론회에서는 동독은 30년전에 사라졌지만, 사회주의 블록의 동맹국으로 북한을 왕래하며 연구를 해온 훔볼트대학 북한학과 교수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11월 14일에 베를린 <타츠신문사>에서 열리는 두 번째 토론회에서는 임수경의 방북이 독일 내 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시대 증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관련 영상 자료 및 사진, 방북 때 동행했던 아르헨티나 감독의 다큐멘터리도 부분적으로 상영된다.
세 번째 토론회는 이미 잘 알려진 1967년 동백림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당시 구명운동을 펼쳤던 독일인과 한인들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독일 정부는 당시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나아가 동백림사건이 한인 사회에 어떤 후유증을 몰고 왔으며, 언제 어떻게 납치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었나에 대해 증인들이 함께 토론한다.
지금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는 장벽붕괴 30주년을 맞아 3만 명의 소망과 기억을 담은 형형색색의 리본이 전시중이다. 동방정책으로 성사된 임수경의 방북 사건도, 동백림사건 피해자들의 구명을 위한 독일인들의 활발한 연대도 이제는 통일 전 베를린 역사의 한 장으로 당당히 기록되고 성찰되어야 할 것이다.
동백림사건의 경우 아직도 총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으며, 오늘 우리는 새 역사를 향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홍콩과 칠레 사태를 보면서 또 다시 국가와 체제의 억압, 새 역사 만들기에 역동적인 주체로 시민들이 나서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오래된 문제들을 오늘 다시 이 자리로 소환해야 할 차고 넘치는 이유다.

‘베를린, 북한으로 가는 창‘ 3회 연속 패널토론회

-1차 토론회 : 북한과 훔볼트대학 한국학과‘
-2차 토론회 : 11월 14일(목) taz-Kantine, Friedrichstraße 21, Berlin, 10969
‘임수경-베를린을 지나 북한으로’
-3차토론회 : 11월 16일 코리아협의회, Quitzowstraße 103 10551 Berlin,
‘1967년 동백림사건’

행사 문의/ (0)30-3980 598-4/-5 mail@koreaverband.de

기사제공: 글/ 정유진 (jung@koreaverband. de), 사진/ 조혜미 (hyemi.jo@koreaverband.de)

2019년 11월 8일, 1146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