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독일의 산업화는 영국에 비해 100여 년 늦게 진행되었다. 이는 독일이 약 35개의 제후가 이끄는 봉건국가 구조로 통합된 시장이 부재한데다 교통망이 결여되어 있었고, 귀족층의 기술 적대감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대규모 투자를 위한 필요한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전반 독일은 가내 수공업 위주의 생산이 주도하였다. 독일에서는 1815년 독일동맹의 성립과 더불어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19세기 초 농업혁명 경작방식 개선과 신기기 도입 등으로 농업 생산력이 확대되며, 식품 공급량 개선과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이후 독일은 수십 년 내 농업국가로부터 산업선도국으로 전환되었다.

관세동맹을 통한 연방내 자유 시장경제 체제 확립

시장 개방은 독일 산업혁명을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튀빙겐의 경제학자 리스트(Friedrich List, 1789~1846)는 70명에 이르는 독일 상인과 공장생산자의 이름으로 관세철폐를 촉구하였다.

19세기 초반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당시 독일 내 바이에른, 바덴, 뷔르템베르크, 프로이센이 내부 관세를 철폐한데 이어 관세동맹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1834년 프로이센의 주도 하에 18개 국가 간 관세동맹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1834년~1873년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가 확립되고 국내 시장이 통합되었다.

관세 동맹으로 독일동맹국가 내 관세 없이 제품 수송이 가능하게 되었고 동시에 개별적이나마 기계 설비를 갖춘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는 면 가공을 위한 방적공장이 주를 이루었는데, 섬유기계가 독일 섬유산업 산업화의 시초를 알린 최초의 혁신 기술로 통한다. 면사생산은 섬유 공장 기계화와 더불어 기계 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845~1873: 1차 산업혁명기

독일에서는 1845~1873년을 1차 산업혁명기로 부른다. 증기기관 의 수, 면사 생산, 철, 석탄 등 새로운 에너지 사용 증가와 더불어 국가 주도 하의 철도, 도로, 항만, 운하 건설이 이뤄졌다. 특히 1848/49년 독일 혁명을 거치며 독일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었다. 기존의 수공업이 근대식 제조로 변화되고 인구 증가와 석탄 이용의 증가와 더불어 철도, 근대식 기계 등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내 산업화는 주로 특정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빌레펠트(Bielefeld)에서는 대규모 섬유 공장이 생겨났고, 루르(Ruhr)지역에서는 석탄채굴과 더불어 다수의 광산이 개발된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였다.

독일의 산업화는 영국과 달리 섬유산업보다는 19세기 중반까지 철도 건설과, 기계, 철강, 광산 등 중공업이 주도했다. 특히 독일의 산업화가 역동적인 모멘텀을 맞았던 시기는 1848/1849년 독일 혁명시기이다.

독일에서는 1835년, 뉘른베르크(Nürnberg)와 퓌르트(Fürth) 간에 최초로 철도가 건설된 이후, 1840년 총 연장길이 500km에서 1850년 약 5,900㎞, 1870년 19,000㎞로 확대되며, 영국의 선도기업을 추월하고 수출을 개시하게 된다. 철도부설로 파생되는 수요가 제철, 제강, 기계, 석탄 등 연관 산업분야에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미치며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철로 수요 증가에 따라 철강소비량이 급증하며 압연기를 도입한 공장을 통한 생산과 기관차 및 기계 제조공장의 생산은 선철생산을 급속화 하였다.

1819년 하르코르트(Friedrich Harkort)에 의해 최초로 기계공장이 설립된 이후 1848년에는 독일 최초의 공구기계 생산공장이 켐니츠(Chemnitz)에 설립되며, 켐니츠가 기계제조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기계 역시 1863년 수출이 수입을 상회하는 수준이 되었다. 아울러 50년대 이후에는 자본 수요 증대에 대응한 주식은행이 설립되었고 주식회사의 설립도 이어졌다. 50년대 자본 집중으로 샤프하우젠(Schaffhausen)은행을 비롯하여 디스콘토・게젤샤프트 (Diskonto-Gesellschaft), 다름슈타트(Darmstadt)은행, 베를린(Berlin) 상업은행 및 기타은행이 생겨나며 금융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철도 건설로 인한 엄청난 양의 철강 및 석탄 생산과 산업화의 시발점이 된 증기기관 개발은 특히 루르(Ruhr) 지역과, 자르(Saar), 오버슐레지엔(Oberschlesien) 지역 내 지속적으로 광산업의 붐을 가져왔다. 특히 석탄과 갈탄 매장량이 많은 루르지역의 석탄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미 1841년 독일 에센 인근에서 최초의 갱도 영업이 개시되었고, 1851년부터 1857년에 걸쳐 석탄생산이 2.5배증가하였다.

광공업 발전은 공업지대로의 인구 이동 현상을 가져왔다. 더불어 1850년 중반 소비재 수요가 성장하고 임금상승과 더불어 섬유산업이 붐을 일으키며, 기존의 사치품에 속하던 담배와 설탕 등의 기호품의 판매가 증가하였다. 특히 임금 상승에 따라 일반 노동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1857~1859년 이른바 최초의 세계경제 위기로 불리는 경기 하락세에 따른 여파로 유통, 투자, 금융 부문에서 타격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1860년대 중반 이래 뚜렷한 경제성장을 기록하였고, 이는 1870~1871년 전쟁을 통해 잠시 중단됐다

1873년까지 지속되었다. 1873년에 불어 닥친 세계 대불황으로 독일 산업화의 제 1단계가 종결되었다.

독일에서는 1845~1873년을 1차 산업혁명기로 부른다. 증기기관의 수, 면사 생산, 철, 석탄 등 새로운 에너지 사용 증가와 더불어 국가 주도 하의 철도, 도로, 항만, 운하 건설이 이뤄졌다. 특히1848~1849년 독일 혁명을 거치며 독일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었다.

기존의 수공업이 근대식 제조로 변화되고 인구 증가와 석탄 이용의 증가와 더불어 철도, 근대식 기계 등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독일내 산업화는 주로 특정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빌레펠트(Bielefeld)에서는 대규모 섬유 공장이 생겨났고, 루르(Ruhr)지역에서는 석탄채굴과 더불어 다수의 광산이 개발된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농업 에 의존하였다.

1340호 29면, 2023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