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登山)은 산 정상에 오르는 것만 등산이 아니다. 출발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등산이다. 어쩌면 등산 후에 하산(下山)이 더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등산 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는 대부분 하산 과정에서 일어난다.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지만,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에 하산하는 시간은 집중력과 긴장이 풀어지고 기운도 없어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산도 등산이기에 전체 등산 과정을 살펴 전략적으로 힘도 분배하고 점점 짐도 가볍게 함으로써 골인 지점인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와야 비로소 등산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끝이 좋은 삶을 꿈꾼다. 그러려면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을 운동경기에 비유하곤 하는데, 축구와 농구 같은 구기 종목 스포츠 경기에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하프타임(Half-time)이 있다. 선수들은 이 시간에 전반전에 쌓인 피로를 풀고, 감독은 전반전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후반전에 대비한 전략을 선수들에게 지시하게 된다. 하프타임을 잘 활용하여 경기의 판세를 바꾸고 승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하프타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좌우될 수도 있기에 하프타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의 삶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하프타임은 꼭 시간의 중간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긴 인생 여정의 경주에서는 단 한 번의 하프타임이 아니라, 여러 번의 하프타임을 가지는 것도 가능하다. 인생의 전반전 또는 지난 시간의 평가가 어땠건 간에 하프타임을 잘 활용하여 성공적인 후반전을 보내며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개 인생의 전반전에는 일을 통해 성공을 추구하며 달리게 된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게 되고, 인생 전체에서 만족한 결과를 얻으려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하프타임의 작전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삶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만들어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후반전 역시 전반전의 어떤 시간처럼 헛되게 흘러가 버릴 수 있다.
요즘은 100세 시대이다. 예전 같으면 전후반 경기를 모두 끝내고 연장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연장전에도 하프타임을 가져야 한다. 이미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기 때문에 연장전일수록 하프타임이 더 필요하다.
이때는 자신에게 남은 에너지가 많지 않기에 스스로 몇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할 때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더 명확하게 정해질 것이다. 때로는 운동선수가 감독의 도움을 받듯이, 전문가나 전문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의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해로에서 어르신들을 섬기다 보면 몸과 마음이 작년 다르고 올해가 다르다고 하시면서도 순간순간 잊어버리신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고 도움을 받으면 일상생활이 편할 수 있다. 해로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자신을 평가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해로에서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 심리상담사가 상담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찾도록 도와드리기도 하고, 인생의 하프타임을 함께 만들면서 발전적인 삶의 방향을 의논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어르신 중에는 파독의 힘든 세월을 살아오신 까닭에, 나이와 관계없이 인지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때로는 치매 초기 증세가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치매 검사를 권유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A어르신은 최근 가방과 핸드폰, 안경 같은 소지품을 잃어버리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상적인 대화도 단순해지고, 얼마 전에 나누었던 내용의 대화와 질문이 반복되고 있어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지만, 직접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 이런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단체 활동을 통해 모든 분에게 상담과 검사를 해드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 어르신들은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하듯이 문제가 느껴지면 바로 인지능력 검사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능력의 급격한 저하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혼자 계신 어르신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상에서 대화가 없고, 균형 잡힌 식사도 잘 못하시는 까닭에 상태가 점점 빠르게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해로에서는 이런 분들을 돕기 위해 상담실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래교실에서는 즐거운 노래만이 아니라, 서로의 만남을 통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기타 교실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찾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분들도 있다. 존탁스카페에서는 균형 잡힌 식사와 영혼의 양식으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또한 수시로 여러 행사와 모임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여 외롭지 않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해로의 여러 모임과 프로그램들이 우리 어르신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어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60호 18면, 2024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