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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
19세기말까지 유럽의 무용을 주도했던 것은 로맨틱 발레였다. 19세기초 문학․음악․회화 등이 주류를 이룬 낭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로맨틱 발레는 파리를 중심으로 19세기 전반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환상의 세계를 그린 점과 이국적 정서를 강조한 점 등을 특징으로 들 수가 있다.
그 표현에는 182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포앙토(en pointe 발 끝으로 서는 것) 기법이 많이 쓰였는데, 포앙토 기법은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알맞는 기술로, 이 시기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현재의 발레가 지닌 고전무용의 체계는 거의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로맨틱 발레는 19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매너리즘에 빠져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를 대신하여 러시아가 주도권을 넘겨받아 고전 발레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고전 발레가 고도화되고 동시에 기교의 편중을 초래하면서 무용의 참된 예술성은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발레의 낡은 형태로부터 탈피하여 그것과는 전혀 새로운 입장에서 참된 무용정신을 회복하고 독자적인 무용 예술을 확립하려는 운동이 20세기에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현대 무용이다. 더구나 20세기는 사상적으로는 인간해방, 예술적으로는 창조의 시대로 돌입했던 때다. 이렇게 되자 인간성을 억압했던 기교의 편중, 일정한 형식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게 된 발레에 대해 욕구불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현대 무용은 미국 여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 발레의 형태를 새로운 형태, 즉 무용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동원하여 새로운 미를 창조하는 예술이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일으킨 하나의 이념적․형태적 혁명이었다.
현대 무용은 고전 발레에 반발하여 발전한 것이기에, 고전발레의 모든 기법을 부정하고 있다. 즉 기법이란 원래가 ‘표현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 발레는 그 기법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정형적인 패턴이 생겨나게 되어, 정해진 기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현대 무용에서도 개성의 존중과 그 표현자체에 독창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름의 기법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전 발레처럼 모든 무용가에게 통용되는 공통된 기법이 아니기에, 현대무용에 있어 무용가들은 각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법을 스스로가 창안하고, 나름으로 기법의 독자성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 무용은 토우 슈즈를 버리고 장식적․구속적인 의상을 벗어버리고 환상의 세계로부터 대지로 내려섰다. 현대 무용의 움직임은 토우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신체를 구사하고, 특히 균형을 무시한 굴곡적인 움직임을 개척했다. 그럼으로써 발레가 지니는 밝은 면만이 아니라 죽음․비참․고뇌와 같은 인생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도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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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 무용
이웃나라인 프랑스와 러시아 등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독일은 20세기를 맞이할 때까지 무용에서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활동이 없었다. 그러나 독일에 19세기 이후 프리드리히 얀(1778-1852)이라든가 루츠 무츠(1759-1839)가 제창한 육체문화운동이 국민 전반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그 운동에 영향을 주고 목표를 암시한 것이 앞서 말한 덩컨이었다.
이후 독일의 각 도시에서는 노동자나 학생, 그 밖의 근로계급을 포함한 수많은 일반인이 육체문화운동에 참가하고 덩컨식의 신무용을 향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것을 라이엔탄츠(Laientanz 일반인 무용)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현대무용이라 할 수는 없다. 발레의 기교적인 부자연스러움은 없다 해도, 그 자연운동은 통제가 없고 이른바 무용의 법칙조차 갖지 못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 무용적인 보건운동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질서한 시대가 계속 되는 동안에 제네바의 음악 교사였던 에밀 달크로즈(Emile Dalcroze, 1865-1950)가 리듬 교육을 창안, 주도하기 시작했다. 제네바의 음악학교에서 작곡법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에 종래의 음악교육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느끼고, 그는 음악적 감각은 리듬적인 것이며, 그 리듬은 단순히 청각으로 지각되는 것 뿐만 아니라 전유기적(全有機的)으로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육이나 신경감각을 완전히 무시하고 귀에만 의존하려는 종래의 음악교육은 극히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새로운 리듬교육인 ‘유리드믹스(Eurhythmics)’를 창안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달크로즈가 독일의 헬레라우(Hellerau) 교외에 리드믹 학교를 설립하고 독특한 리듬교육을 시작한 것은 1911년이었다.
달크로즈의 이 리드믹 이론과 그 교육법은 순식간에 호평을 받아, 음악상으로는 물론 무용교육상으로도 대단히 효과가 있음이 알려져, 세계 각지에서부터 입학하러 오는 무용가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각지에서 발레나 모던 댄스로 활약, 한층 더 리드믹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무용의 발전 향상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리드믹은, 달크로즈 자신이 말했듯이 그 자체는 음악적인 교육법이지 무용은 아니다. 즉 새로운 음악교육법이며, 동시에 무용교육법이기도 했다. 따라서 기초적인 예술 표현의 수단인 것으로서, 그는 리듬의 감득(感得)과 리듬적 감각의 세련은 무엇보다도 기초적인 조건이므로 단순히 귀에 호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육체 전체에 리드미컬한 운동을 하게 함으로써 올바른리듬감각을 지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사도라 던컨이나 에밀 달크로즈의 영향을 받아 독일이 독자적인 새로운 무용을 창조하고자 그 실천에 착수할 무렵, 독일 신무용의 창조적 개척자로 등장한 사람이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이었다. 그리고 이 라반의 출현으로 독일의 현대무용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계속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