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15)

북극곰의 털이 하얀 이유는?

동물들의 보호색

군인들이 야외에서 훈련을 할 때면 풀이나 나뭇잎으로 옷을 위장한다. 밤에는 얼굴을 검게 칠한다. 이것은 자신의 모습을 주변 환경과 조화시켜 적에게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자신의 모습이나 색깔이 주위 환경과 쉽게 구별된다면 적에게 발견되어 곧바로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동물들의 겉 색깔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주위 환경과 비슷하게 위장할 수 있어야만 생존해 나가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육식동물은 그러한 위장을 통하여 먹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상대방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한다.

이로 볼 때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강한 동물의 몸에 있는 줄무늬나 반점은 멋을 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먹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다. 또 사슴과 같이 약한 동물에게 보호색은 그들이 쉽게 발견되지 않게끔 해 주는 장치이다. 실제로 산토끼나 여우의 색깔은 겨울에 눈처럼 하얗게 변하고 여름에는 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극에 사는 곰은 왜 하얀 색을 하고 있을까? 열대지방이나 온대지방에 있는 곰은 검은 색이나 갈색인데 반해 북극에 사는 곰은 흰 색깔이다. 얼음이나 눈과 같은 하얀 주위 환경에 자신을 위장하기 위하여 하얀 털을 갖게 된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북극곰의 털이 하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햇빛과 피부색

적도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은 반면 러시아나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하얗다. 인간들이 맹수로부터 위험에서 자신을 위장하려는 목적이라면 검은 색 피부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또한 별로 눈이 없는 유럽 사람들의 피부가 하얀 것을 보면 인간의 피부색은 위장 색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인간의 피부색은 다른 이유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같은 인간임에도 이렇게 피부색이 검은색, 노란색, 흰색으로 다른 것은 바로 태양 빛과 관계가 깊다. 인간의 피부는 햇볕이라는 자연에 가장 잘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비타민D가 필요하다. 비타민D는 뼈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비타민D는 육류나 계란과 같은 음식을 통해서 혹은 몸에서 자외선을 받아 생성된다. 하지만 비타민D가 너무 많아도 안 된다. 따라서 인간이나 동물들은 몸에 받아들이는 자외선의 양을 조절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여름철 해변에서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으면 우리들의 피부는 검게 그을린다. 이것은 햇볕이 몸속에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이를 피부에서 흡수하기 위해 멜라닌이라는 검은 색소가 피부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검은 색은 그 자체가 햇빛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피부에서 햇빛을 대부분 흡수하고 따라서 피부 속까지 들어가는 자외선의 양은 적게 된다. 검게 그을린 피부가 햇볕을 많이 받으면 허물이 벗겨지는 데 이는 자외선을 너무 받아 겉피부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흰색은 햇빛을 흡수하지 않으므로 살갗에 닿는 자외선은 피부 겉에서 흡수되지 않고 피부 속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극지방처럼 해가 잘 비추지 않는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있는 햇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하얀 피부가 필요한 것이다.

하얀 털은 몸속으로 자외선을 흡수하기 위한 장치

동물들의 털 색깔을 보면 등 쪽이 배 쪽보다 보다 짙은 색임을 알 수 있다. 배 부분은 흰색에 가까운 반면 등 쪽은 짙은 색을 띠고 있다. 소나 말을 보더라도 배 부분은 털 색깔이 등 쪽보다 훨씬 밝다. 물론 주로 등 쪽만을 노출하고 생활하는 동물로서는 바깥으로 노출된 부분을 보다 잘 위장해야 하기 때문에 배와 등의 털 색깔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등 쪽을 위장하려는 이유뿐만 아니라 등 쪽이 햇빛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항상 기어 다니는 동물은 등 쪽에 빛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하여 등 부분은 짙은 색을 갖게 된 것이다. 자외선을 많이 받더라도 검은 색 털이 이를 흡수하게 되면 피부 속으로 들어가는 자외선의 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빛을 적게 받는 배 부분은 털이 자외선을 흡수하지 않도록 옅은 색을 갖게 됨으로서 등 쪽과 배 쪽 부분 간에 받는 빛의 양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러면 왜 곰은 등이나 배 부분이 거의 비슷한 털 색깔을 갖는 것일까? 곰은 사람이나 원숭이처럼 서서도 다니고 나무에도 올라간다. 따라서 주로 땅을 짚고 생활하는 다른 짐승처럼 등에만 빛을 더 많이 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나 원숭이처럼 몸의 모든 부분의 털 색깔이 비슷한 것이다.

열대지방이나 인도, 아시아에 사는 곰들은 몸의 대부분이 검은 색이다. 그리고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 있는 곰은 황갈색이고 제일 북쪽에 사는 북극곰만이 흰 색깔이다. 인간들이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곰들도 비슷하게 구분할 수 있다.

북극에서는 여름이라 하더라도 태양 빛은 매우 약하고 따라서 자외선의 양도 매우 적다. 만약 북극에 있는 곰이 그렇게 하얗지 않다면 귀중한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자외선은 모두 털에 흡수되어 버려 피부 속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햇빛이 적은 극지방에서는 몸이 하얗다는 것이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북극곰의 하얀 털은 눈과 조화를 이루기 위함도 있지만 또한 피부 속으로 자외선을 보다 많이 흡수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설령 얼음이나 눈이 없다 하더라도 햇빛이 적은 환경이라면 그곳에 사는 곰은 하얀 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197호 22면, 2020년 1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