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56)

한국의 불교미술(3)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는 삼국시대 탑의 특징을 각 각 살펴보기로 한다.

고구려 탑의 특징

현재 고구려의 불탑은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기록과 조사된 자료에 의하여 몇 가지 형식적인 특징을 추정할 수가 있다. 우선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요동성을 돌아보던 중 아육왕탑이라 불리는 세 겹의 토탑 가마솥을 엎은 형태로 세워진 것을 보고 그곳에 다시 칠층의 목탑을 세우게 하였는데 나중에 탑을 줄여 다시 세우려다 탑이 썩어 무너져 버렸다는 기사가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1953년 함경남도 순천의 요동성총에서 발견된 요동성도 벽화에는 실제로 성곽내부에 대칭의 목조건물이 그려져 있고, 또 삼국유사에는 평양의 대보산에 영탑사 팔각 칠층 석탑을 세우게 된 내력도 적혀있어 팔각다층석탑의 존재를 일러주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평양의 청암리절터. 정릉사터, 대동군의 상오리 절터등지의 조사에서 제법 규모가 큰 팔각의 목탑이 세워졌던 자취가 확인되었는데, 이탑들은 한결같이 절 안의 한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주변의 동․서․북편에는 법당이 하나씩 배치되는 이른바 1탑 3당식의 배치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검토해 보면 고구려의 불탑으로 기록상으로는 토탑이나 석탑이 일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거대한 8각 다층의 목탑이 주류를 이루면서 조탑술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추정된다.

백제탑의 특징

백제의 조탑기술은 실로 뛰어났음이 국내외의 자료와 유적으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상의 불탑으로 기록되는 신라 황룡사 구층탑도 사실은 백제의 공장 아비지가 신라의 초청으로 백여 명의 기술자를 이끌고 가서 완성한 것이며, 일본최고의 탑으로 알려진 호류지의 목탑도 백제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목탑은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오직 국립부여박물관에 청동으로 제작된 탑신 일부가 전하고 있어 당시의 목탑의 형태를 추정할 뿐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목탑의 자취 또한 부여와 익산지역에 편중되어 있을 뿐이며 그중에서 대표적인 목탑의 자취는 부여의 군수리절터와 익산의 미륵사터, 제석사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탑에서 현저한 특징으로 주목 되는 것은 7세기이후에 목탑을 석탑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은 낮은 2층 기단위에 석재를 목재와 같이 잘게 나누어 짠 목조건물 모양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이 탑은 비록 석탑이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목탑을 충실이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서 더욱 정제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나라 석탑의 기원은 백제에서 시작되었고 석탑의 원형은 목탑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목탑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석탑양식을 이룩한 창의성이 고도로 축적되면서, 백제의 석탑은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석탑이 완성되기까지 기본적인 구성형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어 통일신라 석탑형식의 정립에 공헌한 바가 크다.

신라탑의 특징

신라의 불탑은 불교 공인이 늦어진 관계로 불탑의 조영도 6세기 중엽이후에야 이루어지게 된다. 초창기의 불탑은 고구려나 백제와 마찬가지로 목탑이 먼저 세워졌는데 그 자취가 홍륜사나 천주사 등지에 남아있다.

신라에서도 불탑의 주류를 이루었던 목탑의 전통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신라에서도 7세기에 들어 석탑이 선보이게 된다. 현재 경주에 일부가 남아있는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은 선덕여왕 3년에 조성된 것으로, 이 탑은 목탑을 모델로 한 백제의 석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중국의 전탑을 모방하여 일일이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이를 포개고 짜 맞추어 세운 것이다.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5층탑으로 여겨지며 규모가 제법 큰 탑에 속하고 있다.

탑의 기단 위에는 네모충이에 돌사자를 배치하고 1층탑신의 네 벽에는 돌로 문틀을 짜고 널찍한 돌로 출입문도 달아 내부로 통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벽돌모양의 석재로 탑을 만들다보니 탑에는 전혀 기둥이 없고 처마 밑과 지붕 위의 경사면은 자연히 층이 지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이 신라에서 처음석탑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1226호 23면, 2021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