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90

그리스신화 유럽 미술 작품: 제우스신의 변신이야기 ③

제우스(Z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신들의 제왕이다.

‘아버지 신’ 제우스의 능력과 권위는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맘에 둔 여인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취하고 만다. 특히 자주 쓰는 방법은 ‘변신술’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제우스 신의 흥미로운 모험담이 그려져 있다. <변신이야기>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문학과 미술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일화를 미술작품들과 함께 짚어보도록 한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제우스가 하루는 꽃을 따러 나온 페이키아의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제우스는 하얗고 멋진 황소로 변해서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를 등에 업고 바다로 들어가 크레타로 납치해서 그녀와 정을 통한다. 한편 아게노르는 딸이 행방불명이 되자 아들들을 불러 여동생을 찾아오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에 카드모스와 킬릭스는 동생을 찾아 사방을 헤매게 되는데 카드모스는 아폴론의 도움으로 테베에 정착하여 도시를 세우고, 그리스에 문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킬릭스는 소아시아의 킬리키아의 왕이 되어 그의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 포이닉스는 세 번째 형제로 기록되기도 한다.

크레타에 도달한 후에 제우스는 에우로페에게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선물했고, 에우로페는 크레타에서 여왕이 되었고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의 이름은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이다.

이후 에우로페는 유럽 대륙 이름의 어원이 되었고, 에우로페를 유혹했던 모습의 황소는 황소자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하늘을 지키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거장인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에우로페가 황소로 변한 제우스의 등에 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티치아노는 1554년부터 1562년까지 약 8년 동안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 (Philip Ⅱ, 1527-1598) 를 위한 여섯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는 이 연작을 스스로 ‘포에지’(poesie, 시적인 해석)라고 명명하였다. ‘포에지’ 연작은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유래된 신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다. 주제는 비극과 희극으로 나뉘며, 모두 티치아노가 선정하였다. 이전에 그렸던 <다나에>를 새롭게 재구성한 <다나에>(1549-50)를 시작으로 각기 쌍으로 제작된 <다이아나와 악타이온>와 <다이아나와 칼리스토>, <이아손과 메디아>와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가 제작되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그려진 것이 <에우로페의 납치>라고 전해진다.

<에우로페의 납치>는 제우스 신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에게 반해 황소로 변신해 그녀를 납치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에우로페와 황소’의 이미지는 이미 15세기 후반~ 16세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널리 그려진 것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티치아노가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뒤러(Albrecht Dürer, 1472-1528)의 드로잉과 1497년 베니스에서 출간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의 삽화를 참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티치아노의 후기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손꼽히는 <에우로페의 납치>에서는 화가의 필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황소에 실린 채 완전히 넋이 나간 에우로페의 모습은 전면에 부각되어 등장한다.

이들은 물감을 두텁게 바른 임파스토 기법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구사하는 붓질로 율동감 마저 느껴진다. 또한 형상은 사라지고 빛과 색채로만 표현된 인물들 사이에서 바람에 날리는 듯한 붉은 천은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른손을 치켜 든 에우로페의 자세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비극의 순간을 암시하는 고대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와는 대조 적으로 배경은 캔버스 면이 보일 정도로 물감을 얇게 펴발라 자연스러운 원근법이 표현되었다. 바다와 공중에 떠다니는 큐피드는 르네상스 회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장식 요소의 하나이다. 이들은 그림에서 화면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루벤스, 렘브란트, 부셰, 마티스 등 르네상스 이후 대가들이 즐겨 그리는 작품 소재가 되었다.

1265호 23면, 2022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