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용의 해’ 갑진년에 살펴보는 우리나라 3대 용문사(龍門寺) (3)

나라의 영원한 흥성을 빌기 위한 ‘왕의 절’

거대하고 신령한 용(龍)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는 3대 용문사가 있는데 양평·예천·남해의 용문사다. 왕실의 후원으로 지어졌거나 보수된 호국도량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각 사찰들의 위치는 남북으로 늘어져 있는데 한국의 오랜 불문율인 풍수지리학적 배치다. 양평은 용의 머리, 예천은 허리, 남해는 꼬리에 해당한다. 곧 3대 용문사는 조선팔도가 용과 부처님의 기운을 받아 영원히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작명이다.

남해 용문사

남해 용문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남해 금산에 보광사(현 보리암)를 창건하고 이곳 호구산에 첨성각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802년(애장왕3)에 사세를 확장하여 사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군의 주둔지여서 왜적에 의해 소실되었다. 이후 1660년(조선 현종1) 백월당(白月堂) 학섬(學暹)대사가 현재의 호구산 용연(龍淵) 위쪽에 보광사를 옮겨 중창하였고 이름을 용문사라 했다.

1666년(현종7) 일향화상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이어 봉서루, 나한전, 명부전, 첨성각, 천왕각, 동서방장, 극락전 등이 차례로 건립되어 사동중정(四棟中庭) 형태의 15여 개의 전각으로 가람을 이루었다.

“봉서루는 성암스님과 태익스님, 나한전은 보휘스님, 명부전은 설웅스님, 향적전은 인묵스님, 첨성각은 설잠스님, 천왕각은 유탁스님 등등 어려운 시기 많은 스님들의 땀방울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용문사 창건기>에는 전각을 건립한 스님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어 요즘 말로 하면 책임건축 실명제로 소임을 다하였다.

또한 조선 숙종은 용문사를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해 남해 앞바다를 지키는 호국도량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왕실의 축원당으로 삼았다.

여섯 마리 용이 수호하는 대웅전

용문사 금당인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겹처마에 덧서까래를 얹어 화려하다. 지붕은 건물에 비해 크고 웅장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네 귀퉁이에는 활주로 추녀를 받치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건물 처마와 어간 앞에는 남해 세존도에서 부처님을 따라온 6마리 용이 세존이 계시는 불전을 지키고 있어 놀랍다.

내부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목조 설법인의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 등 삼존불을 모셨다. 후불화는 1897년에 조성된 것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여의(如意)를 든 보현보살, 증장천왕과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중단에는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아라한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사슴,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들거나 학, 푸른 사자를 안고 있다. 그 위에는 광목천왕, 다문천왕, 금강역사들이 꽉 차게 배치되어 있다.

지붕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하게 구성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난 건물로 현존하는 남해안 해안지역의 사찰건축 중에서 흔치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유산(보물)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대웅전 들어서면 파도소리 들리는 듯

이뿐만 아니라 남해 용문사 대웅전 천장에는 남해바다를 법당에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하다. 특히 남해 앞바다에는 ‘세존도(世尊島)’란 섬이 있는데 설화에 따르면 “옛날 부처님께서 이 섬에 계셨는데 중창불사를 위한 용문사 스님들의 간절한 기도에 감응하여 남해 앞바다 세존도에서 용문사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바다에 솟구친 바위를 뚫고 용문사로 오신 까닭에 지금도 세존도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다”고 한다. 그때 부처님을 따라온 남해의 용들은 대웅전 안팎을 지키고, 물고기들은 대웅전 안까지 들어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대웅전 천장에 많은 물고기가 있는 것은 경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불정삼매다라니경>에는 “갖가지로 장엄하여 부처님의 자리 밑에는 큰 바다를 그리고, 그 바다 속에는 연꽃과 물고기와 짐승들을 아주 많이 그려야 한다”고 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 천장 속에는 별의별 물고기가 살고 있어 과연 부처님의 품은 넓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 속에 숨어 있는 물고기 찾아보는 것 또한 남해 용문사를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대웅전을 참배하면 파도소리가 그냥 들릴 것 같다.

고려 초기 호분 바른 미륵보살

용화전에는 용문사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려 초기 호분(胡粉)을 바른 석조 보살상이 있다. 약 350년 전 용문사를 중창할 때 땅속에서 솟아올랐다는 미륵보살님이다. 머리에는 견숙가(甄叔迦) 보석으로 만든 하늘 관(天冠)을 쓰고 결가부좌하여 자삼매(慈三昧)에 든 조용한 모습이다.

<미륵상생경>에서 “도솔천관을 닦는 사람은 필경 한 하늘 사람이나 한 송이 연꽃을 보게 되리라” 하였으니 당연히 미륵보살님은 도솔천관을 닦는 불자들이 볼 수 있도록 왼손에 한 송이 연꽃을 보여주고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에 보면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법은 물과 같아서 능히 더러운 때를 씻나니, 우물과 못과 강과 냇물과 개울과 큰 바다가 모두 더러운 때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 법의 물도 그와 같아서 능히 중생의 모든 번뇌의 때를 씻느니라.”

또한 남해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그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표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이다.

1348호 23면, 2024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