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구시가지(Wittenberg Altstadt) ➁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 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았다.
2024년에는 구 동독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크라나하 하우스(Cranach-Haus)
마르크트 광장에서 시청사 맞은편에는 중세의 주택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이 중 유독 붉은 색으로 눈에 잘 띄는 건물이 크라나하 하우스(Cranach-Haus)이다.
독일의 유명한 르네상스 화가이자 마르틴 루터의 절친한 친구로서 루터의 유명한 초상화를 그려준 주인공이며, 몇 년 동안 비텐베르크의 시장까지 역임했던 루카스 크리나하(Lucas Cranach)가 살던 집이다.
내부는 크라나흐의 작품이나 소품 등을 전시 중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립 교회(Stadtkirche St.Marien)
마르크트 광장에서 건물들 뒤편으로 높은 탑이 솟아있는 시립 교회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이며, 도시의 중심이 된 교회이다. 슐로스교회(Schlosskirche)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이름이 알려져 비텐베르크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지만, 마르틴 루터가 시립 교회에서 결혼을 했고 자녀들까지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주기적으로 설교를 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는 교회 전면의 제단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제단에 그려진 성화가 일품. 이 성화를 그린 이가 루카스 크라나하(Lucas Cranach)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멜란히톤 하우스(Melanchthon-Haus)
비텐베르크의 유명한 종교개혁자는 마르틴 루터뿐이 아니다.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이듬해인 1518년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였다가 루터와 인연을 맺고 그와 평생을 함께 한 종교개혁의 동지 필리프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 역시루터만큼이나 유명하다.
멜란히톤은 종교개혁의 이론을 완성한 이로 꼽힌다.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깨우고 이를 설파하였다면,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정리하고 이를 집대성한 이는 멜란히톤이었다. 두 사람은 평생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로서 뜻을 함께 하였으며, 루터는 여러 도시를 떠돌았으나 멜란히톤은 비텐베르크에 계속 머물며 이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텐베르크 구 시가지에서 위치한 멜란히톤 하우스는 바로 필리프 멜란히톤이 거주하다가 숨을 거둔 곳이다. 내부는 멜란히톤의 일생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지에 포함되어 있다.
루터 하우스(Lutherhaus)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에 머물 때 거주했던 집은 현재 루터 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관련 유적 중 한 곳이다.
원래 이 건물은 수도원 건물이었고, 마르틴 루터는 이 곳의 수도사로서 건물 일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이 문을 닫자 건물은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루터는 그들을 가르치고 어울리며 이 건물에서 계속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루터가 살던 공간은 그 시절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루터의 유품과 그의 일생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박물관도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비텐베르크의 명성에 걸맞게 매우 충실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어와 독일어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관람에 도움이 된다. 루터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루카스 크라나하의 그림도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루터의 나무(Luthereiche)
95개조 반박문이 내걸린 3년 후인 1520년, 결국 마르틴 루터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면 당하게 된다. 이에 격분한 루터는 자신이 머물던 곳, 그러니까 지금의 루터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서 교황의 파면 교서와 로마 교회 법전을 불태웠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비록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에 반하는 의견을 내어 종교개혁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교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교황이 성서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정을 촉구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의도였다. 하지만 끝내 교황청이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루터를 파면하자 루터의 마음도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형식이 있던 자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나무가 심겼는데, 이를 루터의 나무(Luthereiche)라고 부른다.
루터–멜란히톤 김나지움
비텐베르크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두 명의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란히톤의 이름을 딴 김나지움이 각각 있었는데, 이 두 곳의 김나지움이 2006년에 하나로 통합되면서 루터-멜란히톤 김나지움(Luther-Melanchthon Gymnasium)이 되었다.
학교에 불과한 곳이 관광지로 꼽히는 이유는, 이 곳을 유명한 건축가 Hundertwasser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건축을 남긴 그가, 이 소도시까지 와서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이쉽게도 신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어 비텐베르크 시내에서 도보로는 방문이 어렵고, 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1350호 31면, 2024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