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섭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지고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독일이야 전쟁을 일으킨 패전국이니까 그 죄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우리민족을 둘로 갈라지게 만든 원인제공자인 일본이 북일본, 남일본 갈라져야 하는데, 35년 동안 일제의 억압과 착취를 당한 피해국인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왜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야 했나. 절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후로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서 다시 부자가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1945년 2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휴양지 얄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만약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1945년 2월이면, 프랑스는 아직 2차 대전에 참여할 것을 망설이면서 눈치만 보고 있었고, 소련 역시 전쟁참여를 꺼리면서 상태를 관망하고 있을 때였다.
소련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한 5일 뒤에야 전쟁참여를 선포하였으니, 소련은 전쟁에는 잠깐 참여하고 엉겁결에 승전국이 된 셈이다. 이들의 꿍꿍이 속셈은 만약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어떻게 챙겨 갈 것인가가 그들의 최대관심사였다.
영국의 처칠은 소련의 견제가 심할 것을 예측하고 폴란드를 포기하는 대신에 그리스를 욕심내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전쟁에 참여시키는 것이 영국의 계산이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유엔을 창설해 미국 내에다가 유엔본부를 두는 것과 소련을 연합군으로 끌어드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스탈린은 동유럽지배와 소련을 강대국으로 인정을 해달라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이들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장군 멍군 주고받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루스벨트가 불쑥 “그런데 말일세, 한반도는 그들 스스로가 자치를 할 능력이 없는 수준이 낮은 나라 같은데, 우리(소련, 미국)가 신탁통치를 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스탈린에게 넌지시 물었고, 스탈린은 “사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뭐” 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이 한마디가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친자(루스벨트)의 말 한마디 때문에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일이였다.
난 파독광부로 독일에 와 광산일을 마치고, 식품점, 여행사 등의 자영업을 하면서 50년 가까이 독일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독일 땅에서 생겨난 일과 우리나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세계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곁들여 간단하고 쉽게 담 너머 가듯이 어설프게 풀어볼까 하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잘 진행될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나 자신도 모른다.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들은 개인들의 취미에 맞추어 각자 찾아보시기 바란다.
독일의 게르만족은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도, 이란 방면에서 독일 땅에 들어오게 되었고, 겔트족은 농사를 기본으로 해 살면서 문명이 발달한 종족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4천 년 전에 인류는 이미 4대문명,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는데, 게르만족은 인류의 4대문명이 생겨난 1~2천년 후에야 서서히 그 이름이 조금씩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게르만족은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인 서기 300년경에 로마 군인으로 채용되기 시작했고 1600여 년 전인 서기 375년, 지금의 볼가 강 근처에서 살던 훈족들이 쳐들어오면서 게르만족은 로마 쪽으로 쫓겨가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있었다. 요즘의 역사가들은 이 훈족이 한때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우리선조(단군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이제 모든 것이 넉넉한 로마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노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하라고 하였으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는 그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먹고 마시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들어 제공해야만 했다. 그들은 군인으로 남아 있기도 싫어해 부득이 게르만족을 군인으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그 군인들 중에서 영특한 ‘오토아케르’라는 게르만족 장군이 AD 476년 로마를 멸망시켰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르만족의 이야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로마가 망하자, 로마 제국 땅 위에는 우후죽순처럼 내로라하는 꼬마 영웅들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프랑켄 왕국이 가장 왕성하게 국토를 넓혀 순식간에 로마보다도 더 큰 나라를 만들게 된다. 서기 840년 프랑켄 왕국의 샤를마뉴 루이 1세가 죽자, 아들 셋이(로타르, 루이2세, 카를 2세) 베르딩 조약을 맺고 프랑코 왕국을 중프랑코, 서프랑코, 동프랑코로 3등분해 나누어 갖는다. 그때가 서기 843년이다.
그 뒤에 중프랑코를 차지했던 장남(형)이 죽자 두 동생이 그 땅마저 사이좋게 동프랑코, 서프랑코로 나누었는데, 그게 대체적으로 서프랑코는 프랑스가 되었고, 동프랑코는 독일이 된다.
동프랑코는 지방마다 호족들이 군사와 재산을 가지고 왕 못지않은 세력을 휘두르게 되는데 911년 동프랑코의 왕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자, 누가 왕위를 계승하느냐 하는 문제로 시끄러웠고, 8년 후에야 겨우 작센지방의 하인리히 공을 (919-936) 왕으로 선출하게 된다. 그 뒤로 총명하고 용맹스러운 하인리히 왕의 아들 오토 1세가 계속해서 왕으로(936-973) 뽑혔고, 그는 교회와 손을 잡기 위해 교회에 세금도 면제해주고 땅까지 봉토로 하사하면서 로마교황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교황 요한네스 12세가 오토에게 감동해 “내가 그대를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명하노라”하며 황제의 관을 오토에게 씌워주게 되는데(962), 그렇게 해서 군대도 없이 이름만 거창한 신성로마제국이 생겨난다. 신성로마황제는 군대가 없으니 목에 힘만 주고 있었다.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독일 제 1제국이라고 부른다. 독일 왕국의 왕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로마 교황과 더불어 유럽을 지배하는 가장 높은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거창했을 뿐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약소국가들을 묶어놓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고 이름만 거창한 제국이었지 실제로 막강한 제국이 있었던 것이 아닌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은 844년 동안 이어지다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망하게 된다. 동프랑코는 오토 대제까지는 권력을 잘 이용하여 나라 안팎의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갔으나, 그 뒤에 뽑힌 황제들은 신성로마제국리라는 황홀한 이름에 빠져 있어 국내 일은 소홀히 하고 로마 쪽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각 지방의 영주들이 강한 군대를 키우면서 여러 나라로 갈라져서 목소리만 컸다.
그러다 보니 1300년경에는 독일 땅에 우후죽순처럼 300여 개의 나라들이 생겨나 웅성거리게 되었고 프랑스는 일찍이 힘 있는 중앙정부가 자리 잡고 있어 주위의 작은 나라들을 괴롭혔다.
1196호 22면, 202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