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읽고 나서

촛불이 켜져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촛불이 꺼져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촛불 밑에는 왁스를 넣은 얇은 상자가 있는데 이 왁스 상자엔 죽은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촛불은 24시간 켜져 있다가 다 녹으면 이 상자에 쓰여 있는 이름이 왁스와 함께 녹는다. 이 이름들은 녹아 없어졌지만 녹은 왁스 속에는 지금까지 죽어 간 사람들의 이름이 남아 있게 된다. 그 이름들은 찾을 수는 없지만, 녹아있는 왁스 속에는 여기서 죽어 간 사람들의 이름이 남아있게 된다. 이 이름들은 방명록과 함께 영원히 간직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오랫 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으로 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다.
내용인 즉,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독일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데 이 책의 소재지가 내가 사는 함부르크여서 갑자기 내가 생각나 메일을 보내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책을 ‘독서회’에 소개하고 싶은데 혹시나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메일을 보낸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이 책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보내준 정보와 함께 인터넷을 열어 찾아보니 많은 정보가 독일어와 한국어로 쓰여 있어 대충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독일어 제목은 “Den Tagen mehr Leben geben” 이고 한국어로는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로 번역되었다. 무엇보다도 독일어 제목이 맘에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감동을 주는 제목이나 문장이 있을까?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인생의 전면, 즉 시작과 마무리, 너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죽음과 삶 등 온 일생”의 발자취가 들어 있다.
이 제목 하나 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주고자 하는 그 과제를 짐작할 수도 상상해 볼 수도 있었다. 번역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는 있지만, 이 두개의 제목만으로도 금방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뒷면에 숨어있는 문화, 정서 그리고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어 번역인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제목만으론 죽음 전에 먹는 마지막 저녁 식사로 해석되어 왠지 쓸쓸하고 외롭고 슬픔이 느껴지는데, 독일어 제목은 좀 다른 느낌을 준다.
“Den Tagen mehr Leben geben”제목을 직역해 보면 “삶을(생애, 생명) 더 길게 해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소중한 삶으로 하루를 채워 줄 수는 있다”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호스피스의 표어처럼 마지막 생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사랑으로 동행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과제를 은근히 던지고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되르테 쉬퍼(Dörte Schipper)가 쓴 책으로 “Leuchtfeuer Hospiz(등대불빛)의 주 요리사를 중심으로 쓴 책으로 ”Erich – Klabunde – Preis. 저널리스트 상“까지 받은 책이다.

이 상은 1957년에 제정되었는데 저널리스트였던 에리히 클라본데 (Erich Klabunde) 이름을 딴 상으로 저널리스트에게 주는 상이다.
이렇게 상까지 받고 또 한글 및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까지 한 책을 지척에 살고 있는 나는 겨우 지인으로부터 알게 되어 좀 쑥스럽고 머쓱하기도 하였지만, 당장 책 한권을 주문해 놓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여 차를 몰고 이 호스피스로 향했다.


몇 칠 뒤, 책이 도착하였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를 읽어 대강 그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 호스피스의 주 요리사, 주방장이다. 책 표지 아래 부분에도 “Der Starkoch vom Hospiz und seine Gäste( 호스피스의 유명 요리사와 그의 손님들)” 이라고 쓰여 있다.
책을 읽고 난 후, 꼭 이곳을 방문해 보고 싶고 또 요리사 루프렉 슈미트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연락을 하였으나 코로나로 인하여 방문 일정이 쉽지 않았다. 약 1달 간을 기다려 방문 일정이 7월 26일 13시로 잡혔다. 방문 전 내 소개 및 방문 목적, 인터뷰 내용 그리고 백신 접종 등 약간 복잡한 절차가 있었지만, 약 1시간 반에 걸쳐 방문하게 되었다.

약속 한 시간에 현관에 들어서니 벽 한 켠 모퉁이에 촛불이 켜져 있고 촛불 아래 죽은 사람의 이름을 새긴 촛불 상자 그리고 꽃과 방명록이 펼쳐 있다. 촛불이 켜진 것을 보니 누군가가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책 소개와 함께 방문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로이히트포이어 호스피스”는 함부르크의 상 파울리(ST. Pauli, Talstr. 64, 20359 HH)에 위치한 호스피스로 1998년에 에이즈 사람들을 위해 출발하였지만, 말기 암 환자들을 비롯하여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들, 즉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건물은 3층으로 가장 분주하고 밤낮으로 사람들이 많은 ‘홍등가’ 가까운 곳에 있다.
알다시피 홍등가는 대부분 항구 주변에 형성되는데 유럽에서는 암스테르담 및 함부르크 홍등가가 유명하지만 에이즈 확산으로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 홍등가는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왕성한 삶의 현장이요 또 현란한 밤이 펼쳐지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곳에 마지막 삶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호스피스가 있다고 하니 “삶과 죽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소여서 더욱더 특별한 호스피스다.
안으로 들어가면 병원같은 분위기가 아닌 조용하고 차분하게 정리된 방과 복도 그리고 11개의 방은 샤워 및 화장실이 딸린 방이 나온다. 시끄러운 바깥 소음을 차단할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작은 정원도 있어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이 호스피스는 “Wir Können dem Leben nicht mehr Tage geben, aber den Tagen mehr Leben(우리는 삶(생)에 날들(하루)을 더해 줄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날들에 더 소중한 삶은 줄 수 있다)“ 라는 내용을 모토로 하고 있다.
우리들 중에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두렵지 않게 생각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면서 산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치료 불가능이라는 선고를 받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 누가 태연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죽음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호스피스!
이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근무를 할까? 앞에서 소개한 호스피스 모토처럼 모든 근무자들은 ‘직업 의식’ 보다는 인간으로 가져야 할 ‘임무’라 생각하고 입주자들에게(이 책에서는 환자가 아니라 입주자로 명칭한다) 온 힘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사실 ‘죽음’을 선고받고 오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인간적인 위로 로 죽음을 회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사실에 입각하여 현 자신들의 병에 대하여 잘 알려주고 미래에 대하여 항상 열린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잘 정리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 제공,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꼭 해야 할 이야기 등등 모든 것을 해결한 후,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및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곳에 올 때는 ‘병’만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 기간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오지만 이는 삶 전체를 가지고 오는 것과 같아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까지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각별이 이 입주민들이 속마음을 다 털어 내 놓을 수 있도록 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또한 병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특별히 돌봐 주어 끝까지 개인 자신들의 정체성 및 성향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병’ 으로 인해 변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공포까지 느끼기 때문에 순간순간 함께 해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한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아늑하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을 감기 전에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꼭 해야 할 이야기 등 가슴에 맺힌 사연들을 다 털고 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은 사실 이곳에서 죽기 때문에 옮길 때 갖고 오는 것이 자신이 소유하는 전부요 또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다. 즉 이미 올 때 삶과 이별하는 것이다.
짧게는 몇 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살아있을 뿐, 모두다 이곳에서 눈을 감는다. 대부분 이곳에 옮겨 오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면서 생활을 한다.
이 호스피스에는 정기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건강 보험회사에서 나오는 경비로는 충당하기 어렵다면서 많은 사람들의 찬조금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제 이 호스피스의 특별하고 유명한 “요리사, 주방장”을 소개한다.
루프렉 슈미트(Ruprecht Schmidt) 씨는 제 1급 요리사다. 이 슈미트씨는 어려서 부터 요리 만드는데 매우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사로 늘 어려서 부터 신앙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아들이 신학을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부 보담 요리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슈미트씨는 신학자가 아닌 요리사가 되었다.
그후, 상류급 요리사로 화려한 데뷔를 하고 일류 식당에 취직하여 멋진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일류 요리사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추구했던 ‘일류 요리사’가 되었지만 이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직업과 관련하여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전환점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로이히트포이어 호스피스”에서 요리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내게 되었다. 좋은 이력을 가진 슈미트씨는 말할 것도 없이 호스피스 주방장으로 선임이 되었다. 주위에선 일류 요리사가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호스피스의 주방장으로 간다는 것이나, 또 호스피스에 요리사가 꼭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의 눈길로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슈미트씨는 이 호스피스에서 일하게 된 것을 “로토에 당선된 것 같다.” 라고 표현하며 매우 만족해 하고 있었다. 고급 음식을 만들고 고급 음식을 먹는 상류층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 보담, 자신이 만드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면서 일하고 싶었던 것이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이 호스피스에 왔을 때 처음엔 건강을 생각하여 신선한 야채나 과일 등으로 음식을 만들었으나 며칠이 지난 뒤 금방 알게 된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이 만든 음식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옛날에 먹었던 토박이 음식처럼 전형적인 독일 음식이나 아주 평범한 음식 등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슈미트씨는 아주 평범하고 옛 날을 생각할 수 있을 전형적인 독일 음식의 메뉴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다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 개인의 인생 스토리 및 현재 상황까지 들을 수 있다며 이 호스피스의 요리사가 된 것에 자부심도 생기고 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족하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122호 14면,  2021년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