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38회: 함께 가는 삶

<일대기 작업> 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재의 나에 투영하여 ‚나’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로> 자원봉사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은 ‘삶의 방패’를 각자 그려 보는 시간을 가지겠어요. 예전에 방패나 깃발에 문장을 그려서 자기 가문을 표시했듯이 나를 표시할 방패를 그려보세요.“

자원봉사자 교육을 담당하는 사단법인 <해로>의 봉지은 대표는 그림을 통한 일대기 작업을 설명 중이다.

“저는 음악 치료사가 되는 과정에서, 또 그 후에 강사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여러 번 이 작업을 하였는데 할 때마다 다른 모양의 방패가 나왔어요. ‘일대기’란 것이 단지 과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누어 준 9장의 종이에 각기 다른 모습의 방패가 그려졌다. 해로 교육실에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였다. 직업군도 다양한 만큼 완성된 방패의 모습도 천양지차다. 그러나 모두 자원봉사의 문을 두드렸다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방패를 크게 두 부분을 나누어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표현해 보세요. 색을 칠해도 되고 그림 또는 글씨를 써도 돼요”

그리기를 마친 교육생들은 자신의 방패를 통해 독일에서의 나를 이야기한다.

“저는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우연히 독일에 사는 남편을 만나게 되어 결혼하고 베를린에 살게 되었는데 독일에 연세가 드신 한인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예전엔 몰랐어요.”

“저는 독일에 심리학 공부를 하러 왔는데 공부를 마친 후의 미래 때문에 불안하거든요. 현재를 희망 있고 즐겁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껴서 방패 안에 표현해 봤어요.”

“저는 유학하는 아이들을 따라 독일로 건너왔어요. 지금 독일어를 익히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 독일어로 생활하셨던 한인 어르신들이 중병이나 치매로 독일어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요.”

“저는 한국에서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너무 아팠고 수술 후에는 한 발자국도 걷지를 못해서 재활 치료에 꼬박 3년이 걸렸어요. 그때가 제 인생의 부정적인 부분이에요. 현재는 보시다시피 혼자서 걸어 다녀요. 무거운 것은 못 들지만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 행복해요. 고통을 통하여 현재의 행복을 얻은 것 같아요.”

각자의 트랙 위를 열심히 달려온 타인의 삶을 엿보며 행복에는 정해진 답이 없음을 알게 된다. 내 맘대로,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나뿐 아니라 타인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며 살짝 위안을 받기도 한다.

3개월의 교육을 마친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열어 수료식을 자축했다. 교육을 마친 수료생은 일상생활 도우미로서 요양등급을 가진 환우에게 파견될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사단법인 <해로>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이들이야말로 드러내지 않고 현장에서 고된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가장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원봉사 이외의 방법으로도 <해로> 단체를 도와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 많다. 한인 어르신을 위해 써달라며 자선음악회를 열어 수익금을 몽땅 기부하는 제7안식교 청년들, 병자를 위한 선교비로 책정된 교회 예산을 보내주는 반석교회와 영광 교회, 일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행사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김치 민박 사장님, 소액 기부를 정기적으로 하는 후원자, 길을 같이 걷겠다며 회원 가입을 하시는 분, 매주 꾸준히 기도를 모아주는 당케 모임… 이렇게 모인 마음들이 큰 단체의 지원이 없이 자생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해로>에게 큰 응원이고 원동력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몸이 불편하신 한인 어르신을 만나고 돌아올 때 따끔거리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위안이다.

1238호 16면, 2021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