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4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부모의 언어정책 3: 아이가 대화중에 한국어 독일어를 혼용할 때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 부모들이 느끼는 신비함과 기쁨은 형언하기 힘들다. 이중/다중언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그 즐거움이 배가가 되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쁨도 두배가 될 수 있으니) 아이가 두 번째 세 번째 언어를 차례로 시작할 때마다 같은, 혹은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 따라 한국어 독일어 두 개의 언어를 거의 동시에 직면하여 옹알이부터 한국어 독일어로 시작하면서 균형 있게 한국어 독일어를 시작하기도 하고 (그렇다, 옹알이도 언어별로 다르다), 어떤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의 언어, 즉 대부분의 경우 한국어만을 사용하다가 엄마를 떠나 유아원이나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독일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가면서 이중 언어자의 대열에 오른다.

나의 큰 아이는 둘째 아이의 출산이 다가올 즈음부터 탁아모 (Tagesmutter)에게 매일 맡겨졌었는데, 탁아모와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배운 독일어 중에서 집에서 (거의 처음으로) 즐겨 사용한 표현 중의 하나가 „Tatü Tata die Feuerweher ist da (불자동차가 나가신다)‘‘였다.

삽화 : 노민선 작가

그 당시 독일을 방문 중이던 할아버지마저도 신나게 한국식 발음(따뛰 따따 포여 베여 이스 다)으로 그 노래를 힘차게 따라 하시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시한 온 가족이 아이가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기쁨에 불자동차 노래를 저마다의 엉성한 독일어 발음으로 열창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독일어가 점점 발달하고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이 기쁨의 상황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점점 더 많은 독일어 단어를 배워오고, 보드게임, 잡기 놀이, 역할 놀이 등 각각의 놀이 언어는 물론,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을 통해 듣고 배운 명령어들까지도 (당연히) 집에 와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현지어의 침투가 시작된 것이다.

부모들은 이 경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독일어를 잘 배워서 잘 쓰고 있으니 칭찬해야 하나? 아니면 아이에게 한국어만 쓰게 하던지 독일어만 쓰게 하던지 한국어 독일어를 마구 혼용하지 않도록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나?

아이들의 언어 혼용은 혼돈에서 오는가? 즉 아이들은 무엇이 한국말이고 무엇이 독일어인지 구별하지 못해서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언어 혼용을 막아야 하는가?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부모조차도 백 퍼센트 한 언어만 사용하는 것이 이중, 다중언어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떠한 지도를 하는 것이 균형 있고 건강한 이중 언어자로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어린이 이중언어 발달 분야에 저명한 학자인 오슬로 대학의 엘리자베스 란자 (Elizabeth Lanza) 교수는 아이가 말을 혼용하여 쓸 때, 아이의 모국어 발전을 위하여 통상 부모가 보이는 반응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란자의 연구 결과를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아이의 독일어 발화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뭐라고? 엄마 못 알아 들었어” 하며 아이가 스스로 한국어로 번역하도록 요청하는 것 (Minimal Grasp, 아이에게 번역 요청)이다. 둘째는 부모가 아이의 독일어 발화를 한국어로 바꾸어 주되 의문문의 형태로 바꾸어 아이에게 “네 ”, 혹은 “아니요”의 답변을 유도 해 내는 것 (Expressed Guess, 유추하여 물어보기)이다.

셋째는 부모가 아이의 독일어 발화를 한국어로 바꾸어 다시 말하여 주는 것 (Adult Repetition, 한국어 번역 제공), 네 번째는 아이의 독일어 발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모는 한국어로 계속 말을 진행하는 것 (Move On, 넘어가기),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부모 역시 독일어로 말을 바꾸어 아이와 함께 독일어로 대화를 진행하는 방법 (Code Switching 코드 변환)이다. 아래의 예문을 보면 아마 각각의 상황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전략 1: 아이의 독일어 발화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한국어 번역 유도 (아이에게 번역 요청)

아이: Die Straßenbahn kommt!

엄마: 뭐라고? 엄마 못 알아들었는데? (혹은) 엄마 나라 말로 다시 말해줘.

아이: 지하철이 오고 있어요.

엄마: 그렇구나!

전략 2: 한국어 의문문 형태로 바꾸어 아이에게 „네“, „아니요“의 답변을 받아내기

(유추하여 물어보기)

아이: Die Straßenbahn kommt!

엄마: 아, 지하철이 온다고?

아이: 네

전략 3: 부모가 한국어로 번역해줌 (번역어 제공)

아이: Die Straßenbahn kommt!

엄마: 그러네, 지하철이 오고 있네. 얼렁 타자!

전략 4: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되 부모는 한국어 계속 사용 (넘어가기)

아이: Die Straßenbahn kommt!

엄마:그래 조심하고, 탈 준비 하자.

전략 5 아이와 함께 독일어로 대화 지속 (독일어로 코드 변환)

아이: Die Straßenbahn kommt!

엄마: Pass auf! Warte bis sie steht. Jezt kanst du einsteigen.

란자 교수에 따르면 부모가 독일어를 이해 못하는 척하며 아이에게 번역을 요청하는 1번 전략이 아이의 한국어 습득에 가장 효과적이고, 부모가 이 전략을 자주 사용하면 아이는 점차적으로 더 많은 한국어 단어를 독일어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2, 3, 4번의 전략으로 넘어가면서 부모의 대응은 아이의 한국어 습득에 초점이 맞추어 지기보다, 아이와의 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마지막 전략 5번은 아이가 한국어를 써야 할 이유가 없으니 한국어를 점점 더 집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4,5번의 전략을 사용할 경우, 아이는 한국어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수동적 이중 언어자 (passive bilingual)가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위의 전략 중 통제와 교정의 개념이 들어간 1, 2, 3번을 자주 사용하면 아이들의 한국어 습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쁘게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 살림 및 일하는 부모들에게 아이가 독일어를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한국어로 바꾸어 말해 주고 한국어 사용을 유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2년간 내가 얼마나 아이에게 1번과 2번 전략, 즉 아이의 독일어를 매번 한국어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했는지 (나의 연구의 일환이었기에) 세어 보니 큰 아이에게는 한국어로 말하게 강요하는 1번 전략(뭐라고? 엄마 못 알아 들었어. 한국어로 말해줘)나 2번 전략 (너 방금 xxx 이렇게 말한 거지?)라며 아이가 발화한 독일어를 계속 바꾸는 전략을 자주 사용했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거의 4번에서 5번 전략, 즉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은 거의 백 프로 독일어로 받아 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큰 아이는 일단 부모의 관심을 받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하고, 말도 더 잘하기도 하지만 게다가 부모가 집중적으로 아이의 한국어를 갈고닦아 주기에 결국 둘째 아이보다 더 한국어를 잘 말하고 알아듣게 되었고 둘째 아이는 상대적으로 수동적 이중 언어자에 가까워졌다.

상기의 전략은 사실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한국 가정에서도 쓰이는 전략이다. 어린 자녀가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발화하거나 발음이 부정확할 때 부모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주격조사를 잘못 발화하는 것은 어린이 언어 습득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유치원 선생님가 오늘 노래했어”라고 “선생님께서” 또는 “선생님이” 를 “선생님가”로 잘못 발화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부모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아 그래? 무슨 노래를 하셨는데?”라고 아이의 문법 오류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의 발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답변할 것이고, 또 어떤 부모는 “어 그래? 선생님이 오늘 노래했어? 무슨 노래 하셨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의 오류를 고쳐 주면서 내용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아이가 항상 주격조사를 잘못 발화한다면 어떤 부모는 그것을 “선생님가”가 아니라 “선생님이” 또는 “선생님께서”라고 지적해 주고, 혹은 좀 더 분명하게 “엄마가 ‘선생님가’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고쳐주면서 대화를 이어 갈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린아이의 틀린 발화를 자주 고쳐주지 않는다. 왜냐 하면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위와 같은 문법적 오류는 자라면서 금세 고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부모가 자주 고쳐주지 않아도 아이는 지속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말을 배워가며 스스로 대부분의 경우 바른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 즉 독일에서 자라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즉 한국어 입력(input)이 매우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독일어와 한국어가 혼용된 발화를 할 때 부모님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아이의 한국어 습득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가정마다, 아이의 성격에 따라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수줍음이 많은지 아닌지 등) 또한 한가정에 자녀가 몇 명인지에 따라 아이의 혼용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에 대한 정답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부모님이 전략 1(통제와 수정을 가하는)에서 5번(고쳐주지 않고 아이의 발화 내용에 집중하는 전략)을 다양하게 써가면서 아이의 독일어 한국어 혼용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도, 때로는 고쳐주면서 한국어 사용을 유도하고 격려해 주면 아이들은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될 뿐 아니라 언어에 대한 메타인지능력(언어에 대하여 생각하는 능력)까지도 향상된다.

란자 교수의 연구는 유아 즉 1.5세에서 유치원 전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하였고, 장성한 자녀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통제는 별 소용이 없다. 독일어로 말하는 십 대 자녀에게 부모가 마치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척하며 “뭐라고? 한국말로 다시 말해줘”라고 답한다면 그 어떤 십 대 자녀가 곰곰이 생각하며 한국말로 친절하게 바꾸어서 말해 주겠나? 아마도 자녀들은 “엄마 오늘 왜 저래?” 하며 대화를 멈출 것이다. 말의 혼용은 세월이 가면 물론 해결된다. 장성한 자녀가 독일인 친구들을 만나 한국어 독일어 혼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말을 혼용해서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린 자녀가 독일어와 한국어를 혼용하여 사용할 때 그것을 “한국어 전수의 기회”로 삼고 끈기 있게 한국어 단어를 가르쳐주고 한국어 문장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면 결국 자녀는 독일어 한국어 두 개의 언어를 골고루 잘 습득하고 사용하게 된다.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수고스러운 노력 뒤에는 진정으로 커다란 선물이 뒤따르는데 부모에게는 향후에도 자녀와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선물이, 직계 가족을 넘어 친지들과도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지고, 자녀에게는 자랑스러운 이중, 삼중, 다중언어 사용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과정이 언어 교육 백년지대계의 단단한 초석을 만드는 중요한 작업임을 인지하면 그 수고스러움을 좀 더 기쁘게 감내할 수 있게 된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38호 20면, 2021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