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카페 이야기 (1)

유럽인들에게 카페는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호식품이다. 카페는 인간이 찾아 낸 것 중 가장 향기가 많은 식품이라 한다. 그들은 카페의 진한 아로마 향기와 독특한 맛으로 정신을 맑게 해주는 한잔의 카페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재독화가 황수잔

유럽 카페 이야기, 비인

1683년 8월12일 당시 막강한 터키군대가 오스트리아 수도 비인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침공 해왔다. 이슬람 터키와 기독교 비인의 이질적인 종교전쟁 이였다. 비인은 일차적으로 방위가 되었지만 터키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침략해왔다.

게오그 프란츠 골시츠키. (Georg Franz Kolschitzky) 기병이 즉시 우방국가인 프랑스 로트링겐(Karl von Lothringen) 영주에게 도움을 청했고 영주는 폴란드왕 얀 솝제스키(Jan Sobjesky) 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즉시 힘을 모아 터키군대들과 전쟁에서 완전승리를 거두었다.

골시츠키 기병은 그들이 남기고 간 짙은 브라운색 원두와 기구들을 보고 무엇인가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보았다. 우선 짙은 밤색 원두를 가루로 간다음 찬물에 넣었는데 녹지 않아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가루가 분해되면서 그윽한 아로마향이 났지만 쓰고 맛이 없었다.

설탕을 넣어 봤다. 맛이 좋았다. 그들은 점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유를 넣어서 마셔보았다. 설탕과 우유가 첨가된 카페 맛이 일품이였다. 최초의 비엔나카페(Wiener Kaffee)가 탄생 한 것이다. 카페가 이슬람권에서 유럽으로 도입되면서 프랑스어인 카페라는 이름이 되었다.

18세기부터 비인에서 비엔나 카페를 주문하면 한 컵의 냉수도 갖다 주었다. 18세기말 유럽 전성기 시대 중심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화려하고 고급스런 카페가 줄줄이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품격이 있고 분위기 있는 카페는 그라벤(Graben)에 있는 ‘타로니 (Taroni)’이다.

‘밀라니(Milani)’ 카페에서는 남자들의 전용 이였던 카페를 최초로 부인들이 이용 할 수 있도록 했다. ‘후겔만쉐’ (Hugelmannsche) 카페는 내부에 당구장을 설치했다. 네델란드 출신 후기인상파 고흐 화가가 남프랑스의 알(Arles)에서 그린 당구장이 있는 ‘밤 카페’ 그림으로 유명하다.

1809년 나폴레옹이 비인(Wien)을 정복하자 커피는 더 이상 구입할 수 없게 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하고 후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 카이저는 1814년 전 유럽대표들과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빈 국제회의를 열었다. 전 유럽을 통치했던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 황제, 오스트리아 메타닉 영주, 프랑스 탈레랑 외상을 비롯해서 많은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비엔나 카페 홀에서 나폴레옹의 혁명전쟁으로 붕괴된 유럽의 구체제를 살리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를 위한 회의를 가졌다. 전 유럽에서 온 대표들과 일행들은 회의에서 처음으로 맛본 우아하고 품격있는 비엔나 카페의 은은한 아로마향과 독특한 카페 맛에 완전 매료 되었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비엔나 카페’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전 유럽 곳곳에서 비엔나 카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회의를 성공적으로 끝낸 책임자였던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Fuerst Metternich) 재상에게 황제는 비인을 그의 영도하에 다스리게 하였고 Rheingau에 있는 요한니스베르그 성(Schloss Johannisberg)을 선물로 주었다.

비엔나 카페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곳곳에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1839년에는 88개의 카페가 들어섰다. 이탈리아 카페 모카, 카페 오레, 에스프레소등 여러 종류의 카페를 마실 수 있었고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으며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는 카페는 대단히 낯설었다. 주로 차를 마시는 다방이라고 했는데 카페 붐이 일어나면서 지금 한국은 어디를 가든 카페를 만날 수 있는 카페 왕국이 되었다. 지금도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다방 커피로 인스턴트 커피 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홍대 도자기과를 전공한 필자 남동생도 다방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즐겨 마신다.

체코 프라하 여행 중 카페에서, 필자

예술의 도시 비인에서는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음악 카페가 있었다. 음악 카페에서는 음악회를 자주 열었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연주했다.

문학애호가들이 모이는 문학 카페도 있었다. 문학애호가들을 위한 카페에서는 Anton Kuh, Alfred Polgar, Egon Fridell 등 유명한 작가들이 이곳에서 작품들을 집필했다. 비엔나 카페는 예술가, 정치가, 문학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교장이며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때는 비인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을 때이다. 세계각처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아름다운 도나우강을 끼고 있는 곳곳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로 둘러싸인 낭만의 도시, 빈을 방문하면서 예술과 낭만을 겸비한 비엔나 카페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예술의 도시 빈은 귀족, 유명인사, 부유층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면서 부와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비엔나 카페에서 페르시아 왕이 즐기는 서양장기(Schach) 게임도 할 수 있었다. 그 옛날 프라타 하우프트(Prater Haupt)공원에서 가로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카페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했다.

부와 지성을 겸비한 귀공자들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산책하다가 노을이 지고 울창한 숲이 어둠에 잠길 무렵 마음에 든 아가씨를 만나면 부와 귀공자들은 예의를 갖추고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데이트를 신청한다. 늘씬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수줍게 미소 지으면서 데이트에 응하면 귀공자도 만족한듯 함께 카페를 간다. 그들은 아로마 향이 은은히 풍기는 따스한 카페를 천천히 마시고 감미롭게 적시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사랑을 속삭였다.

지금은 당시 있었던 많은 카페가 없어졌지만 아직도 100년 전의 자취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품격있는 옛 카페를 볼 수 있다.

1293호 21면, 2022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