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근로자 6차 고국방문”을 다녀와서 (4)

정귀남(전 하이델베르크한인회장)

대한 노인회 독일지회장 하영순 회장님의 인도로 <파독근로자 고국 방문 6차> 여행이 6박 7일 (10월 17- 10월 23일)양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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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기슭에 있는 사찰 백담사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부부가 약 2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곳으로 더 유명해 진 것 같다. 가는 도중 이 대표는 백담사에 대한 얘기를 전해 주었다. 백담사의 전설에는 본래 남천(지금 의 화천)에 있던 비금사였는데, 절 근처에서 사냥꾼들이 자주 와서 사냥을 하여 불도에 어긋난 짓을 하므로, 이곳 한계리에 옮겨 지었다고 한다. 옮긴 후에 9차례의 화재를 보아 이곳저곳에 옮겨 새로 지었으며 지금의 자리에 새 절을 짓고 이름을 붙이려 하는데 주지의 꿈에 백발 노인(산신령)이 나타나서 청봉에서 이곳까지 담(연못)을 세어보라 선몽하여 그 말대로 못을 헤아리니 백 개 째가 되어서 백담사 (百潭寺)라 했다고 한다. 백담사 는 6.25사변 때 모두 불탄 것을 1957년에 다시 세운 사찰이다. 아무튼 이 유명한 백담사를 못 보고 다음의 장소로 옮겼다.

속초로 이동 한 후, 일행은 속초 강변을 한 시간 정도 산책 한 후에 해변가에서 모여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후 속초 시립 박물관의 <실향민 문화촌>에 도착. 이곳 은 실향민 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형성된 곳이다. 실향민들의 생활상과 향수를 경험 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의 장이었다.

이곳에서는 6.25전쟁으로 갈라진 북한 문화와 피난살이 문화의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이곳은 실향민들의 정착촌으로,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 상태로 살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북한 지역의 특색 있는 전통가옥 을 재현해 놓았다. 피난민 가옥에서는 이들의 생활 도구 와 유물을 통해서 당시의 삶을 유추 할 수 있었다. 특히 김태주 선생님께서 두고 온 북쪽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는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쓴 글로, 암흑사회 에도 서광이 있는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며 참고 지내자 는 내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속초 시립 박물관을 16:15에 출발한 후, 속초 중앙시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황금동씨의 도움으로 건어물/젓갈 등을 살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고궁회관에서 가오리 찜을 먹었다. 매일 매끼니 마다 진수성찬으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식사 후 양구 힐링 하우스로 향했다.

마지막 일곱째 날

짐들을 챙기고, 방정리를 한 후, 7시 50분에 힐링 하우스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

조식메뉴는 떡 만두국 이었다. 매일 맛있게 정성껏 조식을 준비 해 주셨던 사장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식당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8:20 식당 앞에서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동안 말없이 조용한 자세로 자신의 위치를 훌륭하게 마스터 하신 기사님께서 처음으로 휴계소에서 출발 전 감사 하게도 노래를 불러 주시는 것이었다.

20년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셨다. ‘이 밤도 너를 찾는’ 그리고 ‘번지 없는 주막’ 노래를 너무나 간절하게 잘 부르셔서 그동안 우리들의 서툰 노래자랑을 듣고 어떻게 생각 하셨을까 하면서 하회장님은 “누에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격이 되어 버렸다”고 우리들의 모습을 설명해 동감했던 모두가 한바탕 웃을 수 밖에 없었다.

10시 15분에 가평 ‘잣’으로 유명한 곳에서 이 대표 님은 호두과자를 사서 모두에게 제공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여행사를 하게 되었는지 설명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4성 장군에 대사를 지내신 분이어서 많은 외국생활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7년간 IT 회사 IBM에 근무를 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여행사를 시작하신 분이다. 손님을 돈으로 보지 않고 오직 마음과 성의로 대하려는 진심 어린 자세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대표의 어머니와 하 회장님의 동생께서 우리와 동행 하시면서 모두를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해 주셨고 하나같이 서로를 돕고 도우는 자세는 아름답고 감사하기만 했다.

시간상 점심 식사로 각자 김밥을 받은 다음, 청와대에 도착하니 <청와대, 국민 품으로 > 라는 커다란 글이 눈에 띄었다. 13시가 되어서 입구에 들어서니 주일이어서인지 웬 관람객이 그리 많은지 인파 틈에 몰려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청와대 관저, 본관, 영빈관에 들어섰으나, 자세한 관람이 아니고 인파 속에서 그저 지나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토록 크고 전통과 함께 고풍이 깃들어 있는 청와대를 두고 국방부로 장소를 옮긴 대통령의 의도에 들려온 말 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물음표 을 남겨 주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닥치자 모두가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 내내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 에 특별한 사고 없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신 주님께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겸하여 수고해 주신 하영순 회장님 그리고 기사님과 이정민 대표께 모두가 감사의뜻 을 전하면서 미리 내린 분들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잠실 운동장 앞에서 아쉬움과 함께 다시 만남을 기대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끝)

1293호 20면, 2022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