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문화재 구출 부대 ‘모뉴먼츠 맨’ ➀
■ 문화재 보호에 참전한 미술사학자들
나치 독일군은 연합군의 대공세에 밀려 점령지에서 후퇴하면서도 문화재와 예술품을 훔쳐 달아났다. 연합군은 전쟁 이전부터 나치의 퇴폐 예술 전시와 대규모 소각은 알고 있었지만,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예술품 절도 만행을 파악한 것은 1943년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진격이 급했던 연합군은 1944년 2월 15일 나치가 방어 진지로 삼았던 이탈리아 중남부 몬테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공습을 가했다. 독일군은 몬테카시노 산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연합군에 맞서던 터였다.
공방의 와중에 이탈리아가 1866년에 지정한 국보이자 서기 529년 성 베네딕투스(St. Benedictus, 487~547)가 세운 유럽 최초의 수도원이 크게 파괴되었다. 수도원 폭격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연합군 미군정 부서 아래에 ‘기념물, 예술품, 기록물 지원부대(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 MFAA)’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MFAA의 주요 임무는 전쟁 기간 약탈된 문화 예술품을 되찾아 돌려주고,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MFAA의 활약상은 2014년 조지 클루니가 프랭크 스톡스 역을 맡았던 영화 ‘모뉴먼츠 맨 (The Monuments Men)’에 소개되기도 했다. 역사가, 건축가, 미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당시 미국 정부와 민간 미술계의 건의에 따라 1943년 창설되었다.
그리고 전쟁 사상 유례없는 약탈에 맞서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장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D-데이’ 9일 전인 1944년 5월 26일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조만간 문명을 보전하고자 전투를 수행하면서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진군할 것이다. 우리는 진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역사적 기념물과 문화 중심지를 맞닥뜨릴 텐데, 그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지휘관은 이러한 상징물들을 되도록 보호하고 존중할 책임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대상물 파괴를 피하려는 우리의 생각 때문에 작전에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만약 카시노에서처럼 적이 우리의 애착을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이때는 무엇보다 우리 병사들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군사적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지휘관이 유적지의 일부 파괴를 명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훼손과 파괴가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상황이 많을 것이다. 이 경우 지휘관은 자제하고 규율을 지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대상물을 보존해야 한다. 상급 부대의 민사 담당관들은 최전방과 점령지에서 지휘관들에게 역사적 기념물의 위치를 자유롭게 조언할 것이다. 이 정보는 지휘 계통을 통해 모든 부대에 하달하도록 한다.”
MFAA가 유물과 문화재를 보호하는 활동이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장에서 전투에 방해가 된다는 일부 현장 지휘관의 경고에도 나치의 심각한 문화재와 예술품 약탈과 파괴 행위 때문에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은 이들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전쟁사상 유례없는 문화재 보호 명령을 내린 아이젠하워
모든 지휘관에게 보낸 서신 명령에서 아이젠하워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구조물에 대한 약탈, 파괴, 모독을 금지함으로써 MFAA, 즉 ‘모뉴먼츠 맨’의 활동을 지원했다. 또 아이젠하워는 될 수 있는 한 MFAA를 돕도록 반복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런 명령과 활동은 군대가 전쟁을 치르는 동시에 문화재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훼손을 줄이도록 한 것으로, 전쟁 역사상 처음이라고 MFAA 활동을 기리는 미국 ‘모뉴먼츠 맨 재단(Monuments Men Foundation)’은 밝히고 있다.
이 전쟁 이전에 어떤 군대도 전쟁하는 국가의 기념물을 보호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참고할 전례도 없었다. 아이젠하워의 이런 명령과 MFAA 활동 덕분에 점령군으로 유럽에 들어선 미군의 대규모 약탈을 예방할 수 있었다. 또 미군이나 연합군 병사들이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작은 조각상이나 예술품 등을 마구 가져가는 것도 적잖이 막을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동맹군이 유럽으로 진격하여 나치 점령지를 차례로 해방함에 따라 MFAA는 전선의 최전방에 섰다. 안내서나 참고 자료 등이 부족해 장교들은 이들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고, 모뉴먼츠 맨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이들은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유럽 최고사령부(Supreme Headquarters Allied Expeditionary Forces, SHAEF)의 작전부대 지침에 따라 근무했고, 전투 준비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예컨대 연합군이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나치가 보급품 센터로 활용한 피렌체 공격을 준비할 때, MFAA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기념물을 표시한 항공 사진을 제공했다. 이를 본 조종사들은 이런 기념물을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공습했다.
연합군이 이탈리아로 진격하자 독일군은 북쪽으로 퇴각하면서 회화와 조각 등을 훔쳐 달아났다. 쫓기던 독일군이 오스트리아 국경 남티롤 지방의 남쪽 캄포 투레스 성과 산 레오나르도에 있는 교도소 천장에 약탈 예술품을 숨기기도 했다. 반대로 미술관 관계자들이 예술품 안전을 위해 피렌체 컬렉션처럼 자신들의 소장품을 토스카나 시골과 산간 지역에 숨겼지만, 숨긴 이들이 전쟁 통에 사망하는 바람에 그 비장위치를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1945년 3월 말부터 연합군이 시골과 산간에 있는 이러한 비밀 창고들을 발견하면서 역사상 최대의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독일에서만 무려 1500곳의 보물 창고를 찾아냈다. 그곳들에서는 나치가 유럽 전역의 기관과 개인에게서 약탈한 것뿐만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 미술관이 안전을 위해 대피시켰던 문화재와 예술품들이 발견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우피치와 피티 미술관에서 분산시켜 숨겼던 티치아노와 보티첼리 작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연합군의 또 다른 축인 소련도 다른 이유에서 문화재와 예술품을 찾는 데 골몰했다.
1292호 30면, 2022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