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보입니까 ?

류현옥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해 2024년의 첫 달이 끝나가고 있다. 지인들이 안부를 물어 왔다. “세상이 어떻게 보입니까? “

나는 그동안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아온지라 준비한 대답이 있어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칼로 잘라놓은 듯 매끈하게 보입니다. ”

새해 아침에는 한집에 사는 얀이 나의 근황을 묻는 친척들에게 헌 눈과 새눈을 가진 나의 손 를 잡고 지난해의 고개를 넘어 이해로 들어왔다며 능청을 떨었다. 이제 곧 헌 눈도 새 눈으로 바꿔 넣게 되어 이해를 새눈으로 단장한 여자와 살게 된다고 윗트를 했다.

나는 작년 12월 6일 왼쪽 눈의 린즈를 갈아 넣었고 올해 1월 2일 날 오른쪽 눈 린즈를 갈아 채우는 수술을 받았다. 70여 년 동안 세상의 모든 사물을 찍어 담아 뇌신경으로 전달하여준 안구의 중요한 린즈를 새것으로 갈아 넣고 새 해를 맞았다.

이렇게 나의 한해는 새눈 과 함께 시작되었기에 더욱 의미 깊게 시작되었다. 시시 각으로 변하는 세계의 변화를 호기심과 기대로 더 정확하게 보게 되었기에 일 년을 보람 있게 지내겠다는 작심을 다졌다

당분간 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아껴야한다는 것과 무리하여 신경이 날카롭게 않게 조심해야 한다기에 눈을 감고 누워서 드보르작의 심포니 <신세계>를 경청했다. 유대인 작곡가 드보르작이 나치 유럽을 피해 연락선을 타고 미국으로 떠나 평화의 여신상이 서서 반기는 신세계 인 천국에 도착하여 이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금지된 운동과 독서의 대치로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재삼 이해에는 새눈으로 새 정신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앞을 바라보며 지나간 해의 모든 것들을 잊자고 명심했다.

이십여 년 전 일이다. 내가 독일 시민권을 획득하자 많은 친지와 나를 아끼는 친구들이 축하인사를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베를린 유명 인사 한 분이 독일 시민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일이라며 베를린 반재 호변에 자리한 반재 컨프렌즈를 방문하자고 했다. 반재 컨프랜즈 (Wannsee Konfrenz )는 대학살의 동의어로 유대인 몰살 계획이 이루어진 장소라는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빌라구경을 하려간다는 가벼운 생각을 했다.

역사적인 것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독일정부는 나치 건물을 수리하여 역사의 증거물 기억문화제로 아름다운 호숫가에 서있기에 보려가자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 없이 승용차에 탔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정신수준을 과대평가한 것이 분명하다

건물 내에 걸린 사진들과 프로토콜 글들을 보며 독일 역사는 물론 전무후무의 인간 대학살에 대한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세계 역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지만, 인간 사살을 위해 살인 공장을 지어 조직적으로 몰살을 시도 한 예는 없었다. 당시의 일천일백만 의 독일 거주 유대 중 6백만 명이 사살되었다 .

나는 내 고국의 국적을 버리고 이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여 어디서나 독일 국적자라고 해야 하기에 의식구조를 조금 씩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역사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

건물 밖을 나와 밝은 햇살아래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입속으로 신물이 고이고 뱃속에서 꾸물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것을 의식했다. 길가에 엎드려 토하기 시작했다. 더 나올 것이 없는데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피하고 있는 것도 알았지만 내 스스로 제지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의 기억과 함께 다른 눈으로 독일사회를 보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여 사는 독일은 내가 아는 좋은 독일 친구들만이 사는 독일이 아니라고.

작년 11월에 반재 컨프렌즈에서 7 km 떨어진<아들론 빌라>에서 극우당 당원과 인간차별주의자들과 우익 단체와 네오 나치 단원들이 비밀회의를 한 것이 뒤늦게 폭로 되었다. 독일에 들어와 독일국적을 신청하는 외국인과 이민자들은 물론 독일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을 모두 추방하자는 내용의 마스터플랜을 주제로 한 비밀 모임이었다. 히틀러 나치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본보기로 한 Reimgration(재이주)을 계획하는 비밀 모임이었다.

전독일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티나전쟁으로 만신창이 된 독일인들은 물난리까지 당하면서 새해를 맞았다. 장소는 물론 나치의 상징적인 언어로 바이오 독일인이 아닌 사람들은 독일 땅에서 쫒아내겠다는 이 비밀회의는 플래카드를 든 독일 국민을 거리로 불러내었다

2023년의 베를린 거리는 데모의 거리였다.

비행 조종사들의 데모와 연방철도국 전 직원의 데모. 농부들이 수도 베를린에 트랙을 몰고 와서 데모를 하고, 환경보호자들이 길에 앉아 손바닥을 붙이고 앉아 데모를 했고 비행장 활주로에 앉아 비행 방해를 했다 .

하마스 팔레스티나테러단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자 유대인 보호데모를 했고, 이스라엘이 가자 (Gaza) 지구에 폭탄을 터트려 민간인들이 사살되고 가자로 들어가는 모든 물품의 통로를 폐쇄하자 팔레스티나 국민 보호데모를 했다. 모슬램인들의 반유대인 데모가 한몫 끼었다.

이 와중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극우 측의 비밀모임이 폭로되자 그동안 집안에서 TV 화면을 지켜보던 독일인들이 거리로 몰려나가 대도시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두 눈의 인공린즈가 성공적으로 잘 접착되었다는 안과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구석구석에 걸려있는 거미줄을 걷어 내었다. 새해가 되기 전에 했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방 구석구석을 닦았다.

잘 보이는 눈으로 거실의 대형유리창을 딱은 후 눈 덮인 정원을 바라보며 반복되는 뉴스를 들었다. 새 린즈를 갈아 끼운 나의 새눈과 상관없이 작년한해를 지배해온 세상의 재앙은 계속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두전쟁의 사망자가 오만 명을 넘어 섰고 부상자는 더 많다고 한다. 곳곳에서 물난리로 집을 떠내려 보낸 사람과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로 파국적인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연속되고 있었다.

햇살이 흰 눈 위를 비추고 있었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눈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었다. 흰 눈을 제치고 크로코스의 새싹이 뾰족하게 올라와있는 것이 보였다.

새 렌즈로 갈아 채운 나의 두 눈이 본 세세상이다

나의 새 두 눈이 새 세상을 보았다

나는 일요일 독일 국회의사당 앞의 대광장에서 열리는 데모에 참석했다. 이제는 길가에 앉아 토할 수 없는 독일국민으로 민주주의 체재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 나라에 다시는 나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목소리를 맞추었다. (끝)

1348호 14면, 2024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