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준
(이글은 우리 주변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부활절 동안 비바람이 불고 때 아닌 눈발까지 뿌리며 변덕을 부리던 날씨가 부활절 마지막 날 아침, 눈이 부실만큼 밝은 햇살이 카텐 사이로 온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나는 부활절 기간 한인교회에서 주최한 통일 음악회에 관한 기사를 정리하여 인터넷신문 월드코리안에 송고할 기사 끝마무리를 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에 깜작 놀랐다.
이른 아침 시간 나를 찾아 올 방문객이 없을텐데 누굴까,
어쩌면 어제 밤 늦게 차를 몰고 귀가하여 주차 할 공간을 찾지 못해 주차장 입구 좁은 공간에 겨우 주차하고 연락처 명함을 꽂아 놓았는데 그 때문일까 하고, 현관문을 열자 옆집 낯익은 택시기사 슈나이더가 “굳덴 모르겐, 당신 한국 기자이니 혹시 이 동양인 아는 사람인지 살펴 봐요…”하면서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조간신문을 친절하게도 주고 갔다.
신문기사는 부활절 기간 4월12일 중부지역 라인강 하류 관광지 보파드 강변에 표류한 성명미상의 동양인 남자, 신장 1미터75정도에 70세 전후로 보이는 남자 익사체를 발견했는데 소지품에는 하얀 간호사 까운을 입은 젊은 미모의 동양인 여성의 흑백 사진 한 장이 전부라고 했다. 변색한 흑백 사진 뒤에 희미하니 <내 사랑 최순애>라는 한글이 써진 것으로 보아 한인으로 추정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과 본 영사관에 신원을 확인 중에 있으며 사망자를 아는 분은 코프렌츠 수상 경찰서에 신고를 바란다는 기사였다.
순간, 내 뒤통수를 누군가 후려치는 심한 충격을 느끼며 뇌리에 스쳐 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설00!!! 아뿔사… 오호! mein Gott…”
제1막 1장
무대가 서서히 밝아 오면서 편곡된 로렐라이 언덕 멜로디가 은은히 들려 오며 실루엣으로 늙은이 모습이 무대 중앙에 나타나 보이더니 이어 텁수룩한 머리와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수 없는 힘들고 지친 추레한 몰골의 70 중반쯤 되어 보이는 늙은이가 무대에 등장한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조명이 무대에 등장한 늙은이 모습을 비추다 얼굴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리고 늙은이의 애통하고 가련한 목소리의 독백이 흘러 나왔다.
“나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입니다.
카지노에 미쳐 사랑하는 아내의 목을 무참하게 졸라 살해한 살인자입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다고 대낮에 여러분들 앞에 고개를 처 들고 나타 다니.. 이 가슴에 심장이 멈추지 않고 살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마저 아까운 살인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왜 흉악한 살인자가 되었는지 이 세상에 알리고 내가 저지른 살인행위가 이 세상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10년이란 긴 세월 수감 생활을 하면서 파랗게 멍들은 이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며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어느 때이던 이 죄인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살인자의 족쇄가 풀릴 리 만무하고 내 죄가 용서 되지 않겠지만 내 마지막 간절한 소원입니다.”
잠시 흐느끼며 침묵하다 다시 독백이 시작 되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나라 망신에 파독 광부의 위상까지 손상 시킨 파렴치한 살인자라고 나를 욕하고 나를 저주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이 많지만 나도 한때는 아름다운 꿈을 지닌 행복한 가정의 남편이며 아버지이며 조국을 위해 내가 막장에서 목숨을 걸고 받은 외화를 기꺼이 송금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처 들고 저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살인범…
카지노 도박에 미쳐 전 재산을 날린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의 목을 졸라 무참히 살해한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살인자…
이 살인범의 이름은 설 동일, 1948년생이며 1977년 파독 광부로 막장에서 일을 했던 광부. 바로 이 사람입니다. 하나님!! 이 살인자에게 천벌을 내려 주소서…”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흘러 나왔다.
-(Recitativo 말하듯 노래하는 대사)
“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들처럼 자유가 그립고, 마음껏 소리쳐 불러 보고 싶은 노래가 있었으나 다 부질 없는 생각일 뿐. 살아 숨쉬는 것마저 아까운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살인자..
카지노 도박에 미쳐 사랑하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짐승만도 못한 이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 이 살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409장의 전주곡이 잠간 흘러나오면서 다시 독백이 시작한다.
그리고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바뀌며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Recitativo)
흉악한 살인자에게도 한때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네.
전라도 어느 시골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인 내 반에 노래를 가르치던 정희 선생이 불러 주던 로렐라이 언덕, 독일 민요에 이끌려 독일 광부로 왔다네…
제2장
로렐라이 언덕 노래가 잔잔히 흐른다.
전라도 어느 시골 초등학교 음악 교실 풍금 앞에 단정한 차림의 음악 선생 정희가 앉아 있고 그 옆에 젊은 시절 설 동일이 정희선생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Recitativo) “어린이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는 독일 민요 로렐라이 언덕을 배워 보도록 합시다. 그럼 어린이 여러분 따라 하세요.”
어린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네에! 선생님!! 독일이 어디에 있는 나라에요. 선생님은 그 나라에 다녀왔어요?”
“아직 선생님도 못가 본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 반대편 지구에 있으면 우리나라 보담 일곱시간이 늦은 나라입니다. 선생님도 언젠가 꼭 한번 가고픈 나라입니다.”
풍금 소리에 따라 로렐라이 언덕 노래가 불러졌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두 사람이 같이 부른다.
“구름 걷힌 하늘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노래 중간 중간에 정희 선생은 심한 기침을 하며 잠시 멈추곤 했다.
(Recitativo) “ 브라보! 브라보! 우와 정희 선생님! <로렐라이 언덕> 다시 한 번 불러 주었으면 해요.”
나는 정희 선생님이 불렀던 그 노래에 반해 허구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 왔답니다. 나 정녕 정희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상사병에 걸린 것 같아요.
“하아아…”
“아이! 선생님. 선생님이 원하시면 그럼 불러드리지요. 그런데 제가 감기 기운이 심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네요. ”
1377호 16면, 2024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