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박사의 “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7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아이의 생활에서 한국어의 중요성이 뒤로 밀릴 때

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은 독일어로 읽고 쓰기를 배우기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독일어와 함께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기 시작되는 것이 영어이고, 중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독일어와 영어 외에 제3, 혹은 제 4의 외국어까지 선택하여 배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 습득에 대한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들의 습득에 비해 뒤로 밀릴 수밖에 없게 된다.

먼저 초등학생들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초등학생은 4년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수 개념을 익히고 독일어 읽고 쓰기를 배우는데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는 일상생활에서 부모와 소통하는 데만 사용하게 되거나 한글학교에 가는 경우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받는데 그친다. 이렇게 되면 벌써 입력되는 언어의 양과 질에서 (부모가 집에서 따로 독한 마음을 품고 한국어 교육을 챙기지 않는 한) 독일어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뿐이랴. 아이들은 곧 사회적으로 독일어가 (독일 내에서) 한국어보다 훨씬 중요한 언어라는 것을 깨우친다. 독일어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우게 되는 언어일 뿐 아니라 친구들과 신나게 놀 때 사용하는 언어이고, 다른 친구들은 이 언어로 가정에서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즐겨보는 어린이 티브이 프로그램도, 광고에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독일어를 사용하고, 가끔 보게 되는 뉴스나 어른 프로그램에 나오는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일인 (혹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며 이 사회에서 독일어의 중요성을 명백하게 깨닫게 된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이와 같이 독일어가 한국어보다 많이 쓰이고 중요한 언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 아이들에게 자의든 타의든 언어습득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생기게 된다. 일단 학교에서 매일 배우는 언어인 독일어가 가장 중요한 언어이고, 초등학교부터 조금씩 배워가는, 세계인이 되기 위한 영어가 두 번째로 중요하며, 집에서 사용하는 한국어는 그다음으로 중요한 언어라고 위계가 세워진다.

가정에서 부모, 형제자매들과 한국어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은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또한 자주 한국을 드나들거나 한국 친인척들과의 교류가 활발하면서 한국 문화, 한국 대가족과의 유대가 끈끈한 아이들은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아이들에게는 독일어보다 한국어가 더 중요하다 간주되기에 가족과 사용하는 한국어를 제1모국어라 생각한다.

한국인 부모의 입장에서 이런 아이들은 고맙고 신통방통하며, 자녀와 내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끈끈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사는 부모나 독일에 사는 부모들에게는 당연한 감정을 해외에 사는 부모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한국어는 아이들의 중요 순번에서 더 뒤로 밀린다. 대부분의 독일 중고등학교는 주변 강대국 언어인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혹은 라틴어 중 제3외국어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고 이 중 한 개를 선택해서 배우는 것은 대부분의 김나지움 교육과정에서 필수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독일어, 영어, 제3 외국어를 배워가면서 한국어 습득을 우선순위에 놓기에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부모와 친구와 소통하고 한국 티브이를 보는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학년의 수준에 맞는 읽기 쓰기까지 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아이들이게 얼마만큼의 한국어 능력을 기대해야 할까, 아이들이 한국어 배우기를 지치고 힘들어할 때 어떻게 보조해 줘야 할까, 한국어는 여러 개의 언어 습득에 치여 살게 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계속 시켜야 할까, 시켜야 한다면 어떻게, 얼마나 시킬 것인가 등 부모와 한국어 선생님들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들이 원하지 않거나 힘들어할 때는 쉬어가야 한다. 한국어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식을 달리하여 아이가 편안하게 한국어를 접할 수 있도록 방향을 대폭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그동안 한국어를 책과 문제집으로 읽고 쓰기 위주로 배우게 하였다면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과 넷플릭스를 보고 이야기하면서 쉬는 시간을 한국어로 채워야 하겠다.

외국어는 사용하지 않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순간부터 잊어버리게 된다. 심지어 독일에서 수년 살다가도 한국에 잠시 나가 여름 방학이나 겨울방학을 보내고 오면 그저 그렇게 구사하던 독일어마저 머릿속에서 홀라당 날아가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신나게 한국어만 사용하다가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독일어가 웅성 웅성 들리기 시작하면 아, 또다시 독어와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 하며 우울해지고 한동안 쓰지 않은 독일어에 재시동을 거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외국어 습득의 이러한 성향 때문에 아이들이 한국어에 흥미를 잃거나 배우기를 거부할 때 선뜻 쉬어가라고 말하기 조심스럽고 계속해서 강제로 아이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아이들의 한국어 사용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 조바심이 났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나와의 소통이 부쩍 줄었고 늘 쓰는 말만 쳇바퀴 돌듯 사용해가며 한국어 사용의 양과 질이 평행선만 그려도 좋으련만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한국어 사용 빈도가 확 줄게 되자 잔뜩 긴장한 나는 아이들에게 한글로 핸드폰 메시지를 하루에도 수차례씩 보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짧게 써서 이메일을 보내거나,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을 같이 보자고 조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써 보았는데 모두 실패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는 한국어 아빠는 독일어라고 정해놓은 가정의 언어 규칙에 반기를 들었다. 어느 날 온 식구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늘 그랬듯이 나는 아이들과 한국어 대화를 하면서 남편을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말이 길어져서 내가 아이들에게 “잠깐만, 엄마가 먼저 아빠한테 말해주고”라고 말하며 아이들 말을 끊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자주 있던 일인데 아이들은 이러한 대화 형식에 적극 협조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큰 아들이 신나게 말하는데 내가 똑 끊어먹은 것이 기분 상했던지 나의 통역 후에 다음 할 말을 짧게 줄여서 황급히 끝내버렸다. 결국 내가 통역하자고 아이의 말을 잘라 아이가 김새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다 포기하고 소중한 가족소통의 시간에 입을 꾹 다물게 된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한국어로 식사 시간에 나에게 질문을 했는데 밥을 먹기에 바빴던 나는 대답을 해 준 후, 남편을 위해 영어로 통역하기가 귀찮아서 “아빠도 알아듣게 독일어로도 말해봐”라고 아이들에게 통역을 역할을 떠넘겼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독일어와 한국어를 바꾸어 가며 엄마와 아빠에게 같은 말을 두번씩 하는데 큰 거부감이 없었던 아들이 그날은 마지못해 독일어로 아빠한테 전달하더니 식사시간 내내 다시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독일어만 사용하였다. 엄마는 독일어를 알아듣기는 하니, 수고롭게 독일어 한국어 두번씩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이렇게 청소년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발화가 길어지고 생각이 자라면서, 그동안 집에서 사용하던 엄마와는 한국어, 아빠와는 독일어를 사용하던 인위적인 의사소통에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역이 바로바로 되지 않다 보니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할 때 남편이 대화에서 소외되는 빈도가 높아졌다.

청소년기에 부모와의 소통이 줄거나 소통 방식이 바뀌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들이 하는 말을 일일이 영어로 아빠에게 번역해 주고 아빠가 종종 대화에서 소외되는 것을 식사시간마다 보는 것은 부모와의 대화가 더 이상 신나지만은 않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묵직한 불편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큰아들은 저녁식사 중에 한국말 쓰기를 전면 중단하고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엄마도 통역 없이 식사할 수 있고 아빠도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모두가 이상한 방식으로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판단한 모양이다.

반면 수줍음 많은 작은 딸아이는 사춘기와 더불어 급격히 대화 수가 줄어들면서 식탁에서 거의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엄마와 한국어 하고 아빠와 독일어 하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어 살았는데 갑자기 영어로 말을 하자니 불편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색한 변화를 여러 번 거치며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식탁에서 함께 모이면 영어와 독일어를 가장 많이 쓰게 되었다.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고, 불편한 통번역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활발한 큰아들은 그 후에도 쭉 불편 없이 저녁식사 대화를 영어 독어로 이어 나갔고 조용한 딸은 가족 대화에서 스스로를 소외 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딸과의 대화를 위해 딸의 방으로 쫓아가 적극적으로 한국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는데 사춘기라 방에 엄마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게 된 딸은 아직도 아주 간단한 대화만을 한국어로 나눈 후 방에서 나를 내쫓기 바쁘다.

이렇게 가족의 언어 습관은 아이들이 자라며 변화되기 마련이고 이 변화는 내가 섭섭하든 말든 받아들여야 했다. 게다가 코로나 판데미 상황에 남편이 홈 오피스로,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한동안 모두 집에 있게 되자 내가 아이들과 일대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모든 가족이 다 함께 2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니 예전과 같이 따로 할 수 있었던 엄마와의 대화, 아빠와의 대화는 확연하게 줄게 되었다. 한 공간에 모든 가족이 엉켜살다 보니 한국어만 쓸 일이 점점 더 줄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아이들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서 짧게라도 이야기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물론 아이들은 싫어한다. 특히 한창 예민한 딸은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에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계속해서 나를 구박하고 야단친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한국어로 야단친다.

“이렇게 아무 때나 들어오면 안 되지, 엄마” “오늘은 내방에 너무 오래 있잖아, 엄마” 등등… 야단맞더라도 일단 아이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장은 연명해 놓아야 하겠기에….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한국어를, 그들과 나와의 소통 채널을 한국어로 살려두길 바라는 내 모습이 처량하지만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나를 야단치기도 하고 나에게 훈수를 두면서 제법 어른처럼 한국어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아이들의 한국어 자아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모든 언어 습득이 그러하듯이 계승어의 습득 역시 평생 작업이다. 한순간 뒤로 밀리는 것은 인생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힘들 때에 잠시 쉬어 가거나 배움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오히려 더 커다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요새 넷플릭스,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의 칭찬을 받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마음껏 한국어로 볼 수 있고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문화 발달과 더불어 한국어의 위상이 얼마나 치솟고 있는지 어른들 보다 더 잘 안다. 이런 세상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니 한국어 공부가 아이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준비되었을 때 다시 자기 자리로 찾아갈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과 함께 나도 함께 거친 파도타기를 하는 중이지만 굳건한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 잘 해낼 것이라고. 부모의 믿음이 굳건하면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고 한국어 사용과 습득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49호 20면, 2022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