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의 언어와 정체성 이야기(3)

유행어와 신조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연재를 시작하며

정체성의 문제는 타언어, 타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쓰는) 타인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새로운 기고는 언어와 정체성에 관련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독일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매일 느끼고 생각하고 억울해하고 감사해하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가면서 읽는 이도 쓰는 나도 함께 위안과 치유를 누리고자 한다.

지치고 힘든 타국 살이에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키고 타인과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은 의미 있을 것이라 감히 믿는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어떤)언어로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그의 머리로 전달되지만, 당신이 그의 모국어로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직접) 그의 가슴으로 간다 .

If you talk to a man in a language he understands, that goes to his head. If you talk to him in his language, that goes to his heart. – 넬슨 만델라 –


말에는 힘이 있다.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을 경험했던 민족으로 우리는 말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창씨개명에 대한 직접 경험은 없다 할지라도 자신의 이름을 다른 나라 말, 특히 우리를 침략한 나라의 말로 바꾸라고 하면 얼마나 공포스럽고 충격적일지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름이 더 이상 내 이름이 아닌 상황. 또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의 정체성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나라의 말만 사용해야 하는 상황, 즉 내가 부정 당하는 상황… 창씨개명같이 무시무시한 예를 들먹이지 않아도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말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너무 흥분하였다. 사실 새로 생긴 말과 유행하는 말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인데 선을 넘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유행어라는 말에는 조금 쓰이다 잊힐 것이기에 약간의 경박함이 느껴진다. 또한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향이 커서 기성세대들은 유행어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망치는 사회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유행어는 기성세대들을 긴장시키고 기성세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신조어, 특히 인터넷 줄임말들은 우리말을 위협을 하기에 감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조어와 유행어의 옳고 그르고를 감히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말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데 또 다른 길로 셀 뻔 했다.

신조어와 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 변화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힘이 있다. 유행어와 신조어는 사실 조금 다른데 유행어란 반드시 작금의 시대에 생긴 말이 아닐지라도, 즉 예전부터 쓰던 말이라도 갑자기 사용이 증가한 말을 의미하고, 신조어는 말 그대로 새로 생긴 말을 뜻한다. 새로 만들어져 널리 사용되었던 말들은 그 말들을 쓰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다.

2020년 한해 독일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무려 1,200개가량의 신조어가 생겼다. (라이프니츠 독일어 연구소(Leibniz-Institut für Deutsche Sprache, IDS)에서 그 신조어를 알파벳 순서로 정리해 인터넷 사이트에 고이 올렸으니 궁금한 분들은 찾아보시면 된다 https://www.owid.de/docs/neo/listen/corona.jsp#).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Maskenmuffel, Maskentrottel, Maskenverweigerer로 부르고, 코로나를 전면 부인하거나 정부의 코로나 규제를 전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코로나 바보 (Covid + Idiot = Covidiot)라고 부르거나 비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Querdenk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전염될까 두려워 손으로 하는 악수나 볼 키스의 대책으로 나온 팔꿈치 인사 (Ellenbogengruß), 손 대신 발을 사용하여 인사하는CoronaFußgruß 등 새로운 말이 나오면서 인사법이나 그에 관련된 신조어도 쏟아져 나왔다. 계속해서 볼 뽀뽀 (비쥬)를 하는 것에 대한 조롱의 뜻으로 Todesküsschen (죽음의 키스)라는 무서운 단어도 유행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뜻하는 Sicherheitsabstand, 코로나 바이러스 초창기 휴지 사재기 현상을 나타내는 Klopapierhysterie, 코로나 여파로 하객을 많이 초대하지 못하는 결혼식을 Micro-Wedding (매우 작은 결혼)이라 칭했고, 잦은 화상회의에 지쳐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영어에서 파생된 Zoom-Fatique (줌 화상회의 피로현상)까지 1200개가 넘는 단어들이 어디에서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든 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신조어와 유행어는 사회 현상의 변화와 더불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고 번져나가기에 신조어와 유행어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이해를 가중시켜준다.

먼저 요즘 독일 구세대들과 신세대들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말 중에 영어, 베이비 부머(baby boomer)에서 온 부머(Boomer)에 대해 살펴보자.

이번 달 열일곱 살이 된 나의 아들은 나를 놀릴 때, 특히 내가 새로 산 컴퓨터나 핸드폰 작동이 어설퍼 쩔쩔맬 때마다 나를 부머라고 부른다. (놀리면서 제법 잘 가르쳐 준다. 늘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지적질 해대며 잘난 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부머는 원래 출생률 급상승기에 태어난 사람들로 보통 전쟁 후 세대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독일에서 젊은 사람들이 쓰는 은어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을 깔아뭉갤 때 사용한다.

그것과 더불어 요즘 인터넷에서 잘 쓰이는 오케이, 부머 (OK, Boomer)라는 표현도 있다. 2009년에 처음 쓰이게 된 표현인데 2019년에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뉴질랜드 의회 녹색당 소속의 젊은 여성 의원인 클로에 스와브릭(25)이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을 하고 있는 중에 그 자리에 함께 하던 나이 든 의원들이 스와브릭 의원에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OK, Boomer (됐네요, 부머들)“이라고 당차게 응수했다.

이후로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 플랫폼인 틱톡 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에서 밈으로 사용되면서 “입 닥쳐라, 기성세대!”의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와브릭 의원은 그 후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커져가는 사회 문제를 만들어 낸 기성세대로부터 그 사회를 그대로 물려받아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집단 탈진을 상징한 표현이 바로 OK 부머”라고 설명했다.

서구권이야 그렇다 치고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을까? 물론이다. 모든 세대들은 새로운 세대를 버릇없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이 갈등이 요즘 들어 더 커졌을 수 있겠지만… 버릇없는 (?) 요즘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들을 향한 분노와 불만을 삭히기 위해 어른들을 나쁘게 부르는 말들 중 하나로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꼰대”가 있다. 과거에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구태의연한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그 쓰임이 더 광범위해졌다.

또한 기성세대를 낮춰 부르는 단어로 “틀딱”이라는 충격적인 말도 있다. 틀딱은 틀니와 딱, 틀니가 부딪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틀니를 착용하는 노인으로부터 나온 혐오성 단어로 자기중심적이고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변한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과거를 들먹이는 어른들을 비하할 때 쓰이는 말로 인터넷상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어느 세대든 간에 세대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이유 중 하나로 인터넷 사용의 폭발적 증가를 들 수 있겠다.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인터넷에 접근하기 힘든 중 장년층을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을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에 더해 서평가 금정연은 전쟁이나 재앙이 없는 한 보통 그 다음 세대들이 전 세대들 보다 더 발전된 환경에서 살기 마련이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전망이고, 그러기에 기후변화와 같이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함몰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완전히 실패한 기성세대, 어린 것들이 뭘 아냐 하며 귀를 닫고 자신들의 이익에 집중해 세상을 망쳐버린 기성세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말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 한다.

세대 간 갈등은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해당 신조어로 본, 특히 한국 사회에서의 표현의 양상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을 작금의 끔찍스러운 교육시스템과 노동시장에서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얼마나 힘들게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젊은이들의 기괴하고 망조 서린 표현을 딱히 이해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삽화 : 노민선 작가

이렇게 세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문화 공통적인 신조어들도 있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유행어도 있다. “맘충”이란 말이 그중 하나다. 독일뿐 아니라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던 소설 82년 생 김지영 (민음사)에 등장한 단어, 맘충. 영국 BBC 방송에서 엄마 (Mum)라는 단어와 바퀴벌레 (cockroach)를 합쳐 Mum-Roach라고 번역하여 내보냈다.

영화와 원작 소설 모두에 맘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김지영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남성으로부터 “맘충 팔자가 상팔자”라는 빈정거림을 듣게 되는 장면이 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닌다며 ….

한국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의 정도는 다른 어떤 OECD 국가에서 찾을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해 심지어 모성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집약하고 있는 표현이 맘충이다. 남녀 적대감의 정도는 우리처럼 심각하지는 않기에 맘충이라는 표현 자체는 서구 사람들에게 새로울지 모르지만 그들 역시 남성 선호 및 여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기에 82년 김지영이 큰 인기몰이를 했고 맘충에 대해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노키즈존 (No kids zone)”이라는 말도 2014년부터 한국에서 자주 쓰이게 된 용어인데 영유아 및 어린이의 입장을 금지하는 업소를 뜻한다. 경기 연구원은 한국 내 노키즈존의 확산의 원인을 아이의 소란스러운 행동과 부모의 방관, 레스토랑이나 카페 내 안전사고의 책임을 업주에게 지우는 법원 판결이라고 지목했다.

유럽 숙박업소 중에도 어른 전용(Adult only, Kinder verboten)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곳이 있다. 독일의 경우 2022년 4월 디에르하겐 (Dierhagen) 의 한 레스토랑에서 12세 이상의 어린이가 있는 가족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공개 광고하여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어른 전용 레스토랑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독박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텐데도 아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방치하는 부모의 수가 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부모에 대한 사회적 참을성이 말라버린 것인지 어찌 되었든 그 혐오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일까. 식사 중에 어린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다른 손님들과 업소에 피해를 끼치는 부모들이 넘치고, 또한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텐데 그러한 아이들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주변인들이 되어 가고 있는가…

맘충과 노키즈존도 틀딱 못지않게 슬픈 단어다. 신조어와 유행어는 이렇게 우리의 변화하는 모습들을 여과 없이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한 사회, 한 세대 정체성의 단면을 표현한다. 슬프지만 “유행”이라는 말 자체에서 희망을 가져보자. 갈등 없는 사회는 없을 테니 불쾌한 표현과 동시에 이러한 갈등들도 유행하다 끝나지 않을까. 이 갈등들을 슬기롭게 넘기면 이 불편한 유행어 들도 사라지고 새로운 신조어, 유행어와 함께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않을까. (아닐 줄 알지만) 새로운 바람은 좋은 바람이길 어린아이같이 바라본다.

1281호 14면, 2022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