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꽃 이름으로 유명하다. 영어로는 “forget-me-not”인데, 이는 독일어 “Vergissmeinnicht”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물망초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루돌프라는 기사와 벨타라는 처녀가 서로 사랑하였는데, 이들이 강가를 걷다가 처음 보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보았다. 루돌프는 벨타에게 그 꽃을 선물하려고 강을 건너서 꽃을 가져오다가 그만 거센 강물에 휩쓸렸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꽃을 그녀에게 던지며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물망초는 “진실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고 또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다. 슬프고 아픈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면 개인이나 나라는 발전이 없다. 비록 수치스러운 과거일지라도 기억하고 진정으로 반성할 때 더 나은 미래가 있다.
전쟁을 일으켜 주변 국가에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준 독일과 일본은 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서로 달랐다. 독일은 ‘상대방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사과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변명 없는 사과와 그에 상응하는 실천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동안 형식적인 사과와 계속되는 역사 지우기 행태를 보이며 독일과는 대비되는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독일은 세계의 리더 국가로 발전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은 계속해서 과거에 발목이 잡혀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매우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었고, 엄청난 피해를 준 전쟁도 겪었지만,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것을 잊지 않는 교육과 노력으로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할 때, 그 선두에 서서 나라를 일으켜 세운 분들은 단연코 파독 근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멀리 독일에 와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며 외화를 벌어서 가정과 나라를 잘 살게 한 분들이다. 그러나 60년의 세월이 흘러서 그때의 젊은이들이 80의 백발이 되었다. 옛날의 수고하고 희생한 일들을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알기나 할까 생각하며 우울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그런 때에 파독근로자를 비롯한 어르신들을 잊지 않고 섬기기 위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서울나눔 클라리넷 앙상블”이 바로 그들이다. 김문길 대표는 파독근로자 가정의 후원으로 독일에서 음악을 전공하여 파독 근로자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기에,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음악회를 준비해왔다.
서울나눔 클라리넷 앙상블은 4월 15일에 베를리너돔에서 파독 60주년, 한독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파독 근로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음악회만이 아니라, 파독근로자와 그분들의 가족들을 위해 “기억 사진”을 찍어드리는 행사와 어르신들을 위로하는 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 7~8일에는 서울나눔 클라리넷 앙상블의 부단장인 박길홍 촬영 감독과 단원으로 구성된 사진 봉사팀 12명이 “리멤버 픽쳐” 행사를 사단법인 해로와 함께 진행하였다. 이틀 동안 진행된 행사에 120여명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오셨고, 가족들을 포함하여 총 200명 가까운 분들이 사진 촬영을 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소망(영정)사진, 부부 사진과 함께 부활절 연휴를 맞아 함께 모인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분들도 있었고, 함께 사는 개도 데려와서 가족사진을 찍는 분들도 계셨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자 분들이 메이컵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시고, 남자 어르신들도 얼굴화장을 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여러분 계셨고, 또 결혼사진을 찍은 이후 처음으로 메이컵을 받아보신다는 이모님들도 꽤 많으셨다. 또 몸이 편찮으신 어른들도 보행기와 지팡이를 의지하고 나오셨다.
이번 사진이 마지막일 거라고 하시는 모습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비장함을 읽을 수 있었다. 촬영 감독의 웃어보라는 말에 얼굴은 웃으면서도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는 분들도 있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참여한 어르신들 모두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런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하시고 가셨다. 이런 행사가 다른 도시로도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여해주셔서 봉사자들의 손과 발은 더욱 분주했지만, 어르신들을 맞는 얼굴마다 기쁨이 가득하였다. 촬영 전날 밤늦게 도착하여 밤에 촬영 현장을 답사하였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모든 스텝들이 촬영장소에 나와 촬영장 세팅을 하였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자연스럽고 멋진 표정을 얻기 위해 박길홍 촬영 감독이 어르신들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하며 한 사람당 수십 번의 셔터를 눌렀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사진을 골라 한국으로 보내서 보정을 거쳐 인화하고 코팅하여 액자에 넣어 음악회 이전까지 공수해야 하는 007작전 같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기억은 남이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오늘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나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오늘이라는 선물(present)을 마음껏 즐기며 누리시기를 바란다.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엡 5:16)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10호 18면, 2023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