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의 뜻은 평생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버킷리스트”라는 외국어 대신 “소망 목록”이라는 순화된 단어를 대신 사용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처음 시작된 어원을 찾아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소망’과는 거리가 멀고, 아주 절망적인 단어였다. 원래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은 중세 유럽에서 자살이나 교수형을 할 때 목에 줄을 건 다음, 딛고 서 있던 양동이(Bucket)를 발로 찼던 것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Kick the Bucket (양동이를 차라)”는 말이 “죽다”라는 말의 속어가 되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버킷리스트는, 암과 같은 위중한 병으로 투병하다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여행이나 일을 목표로 정하고 그 소원을 성취한다는 의미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절박한 의미는 많이 줄어들었고,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기회에 혹은 큰맘 먹고 해보고 싶은 ‘소망 목록“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꼭 가보고 싶은 유명한 장소를 여행하기, 매우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 먹어보기, 매우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어보기, 귀족들이 살던 궁궐 같은 집에서 잠시 살아보기, 매우 비싼 고급 차를 운전해보기, 스카이다이빙 해보기 등을 “버킷리스트”로 적어 놓고 한 번쯤 실행해 보려는 경향이 있다.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과 같아서 삶에 굉장한 에너지가 된다. 특별히 아무런 소망을 품을 수 없어 절망할 수밖에 없는 분들에게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이는 고통의 진통제가 되고 고난의 치료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한 세계적인 동기부여 작가인 ‘앤드류 메튜스’의 말처럼, 우리가 바라는 소원도 중요하지만, 그 소원을 이뤄가는 과정이 의미가 있으면 삶에 커다란 활력을 주게 될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는 그 목록을 잘 살펴서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계획해야 한다. 너무 이루기 쉬운 것이나 의미 없이 즉흥적인 것,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은 가급적 적지 말아야 한다. 나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것보다는, 모두가 함께 행복한 결과를 얻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즐거워하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별히 죽음을 앞둔 분들이 이루기가 전혀 불가능한 것을 목록에 올려서 금방 실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은 먼저 버킷리스트를 적고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불필요한 것은 지우고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도 좋다. 또 버킷리스트의 주인은 늘 자신임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목록을 바꿀 수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의 소원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들의 소원에 귀 기울여 잘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독교는 삶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매우 깊이 있게 말하고 있는 종교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에도 관심을 가진다. 거의 대부분의 호스피스 기관이 기독교 단체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말기 암 환자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말기 질환으로 죽음을 앞둔 분들의 소원은 그 시간이 얼마 없다는 면에서 더욱 소중하다. 또 파독 근로자와 같이, 독일에 와서 세월이 많이 흘러, 자신이 바라는 것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의 버킷리스트도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해로의 관심사는 모든 세대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지만, 일차적인 관심은 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파독 근로자 1세대 어르신들이다 보니, 그분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많이 듣게 되고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
독일에 살고 계신 파독 1세대 어르신 중에는 혼자서 한국에 다녀오실 정도로 아직은 건강과 여유가 있는 분들도 꽤 계신다. 그러나 죽기 전에 한 번은 나고 자란 고향에 다녀오고 싶어 하지만, 한국에는 연고가 없어서 가 있을 곳도 없고, 그러니 비용은 많이 들고, 또 나이가 들고 몸은 아파서 혼자서 가는 것은 도저히 엄두조차 못 내는 우리 어르신들도 많다.
우리 어르신들의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될지도 모를 “고향 방문”을 위해 해로에서는 기도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이 일은 해로가 시작해야 하지만,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재정과 봉사자, 그 밖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기에, 독일과 한국의 뜻 있는 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분들이 한국을 위해 수고한 것을 기억하고, 또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이분들의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될지도 모를 소원을 이루어 드린다면, 일생의 삶에서 아주 소중한 추억을 선물로 드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는 이분들에게 큰 위로가 될 뿐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분들에게도 큰 소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어르신들이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날마다 힘있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 해로는 기꺼이 그분들을 돕는 짐을 지려고 한다. 1세대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위해 함께 마음 모아 응원해주시기를 바란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아침마다 주님을 뵙는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시편 27:4)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28호 16면, 2023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