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79회: “노치원을 아시나요?”

한국에는 경로당이나 노인정과 같은 노인들을 위한 돌봄 시설이 많다. 어느 80세의 어르신이 경로당에 등록하고 나가시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경로당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 이유를 물으니 경로당의 형들이 자꾸 심부름시켜서 나가기 싫다고 했다고 한다. 80세의 어르신도 경로당에 가면 동생 취급을 받을 정도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 모든 나라가 경제발전과 함께 기대수명과 평균수명이 늘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경제 수준만큼, “기대수명”도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늘었다. 파독이 시작될 때쯤인 1960년 당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52세에 불과했다. 10년 뒤 1970년에는 62세로 크게 늘었고, 1980년에는 65세, 1990년에는 72세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83.6세를 기록해 일본, 호주에 이어 OECD 38개국 회원국에서 세 번째 장수국가가 되었다.

“기대수명”이 느는 것은 인류의 희망이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 잘 먹고, 잘 누리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최근 주목받는 또 하나의 지표가 “건강수명”이다. “건강수명”이란 “기대수명”과 달리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말한다.

이는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처음 제안한 지표인데, 2020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83.6세였지만, 건강수명은 73.1세였다. 즉 한국인의 평균은 생애 마지막 10.5년 동안 건강 문제로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산다는 의미다. 기대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이 10.1년, 독일은 10.8년, 프랑스는 10.4년, 이탈리아인은 11.1년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다. 결국 모든 사람이 기대수명의 길이와 관계없이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질병 등으로 제약받는 가운데 산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경우는 빠른 인구 감소, 노령화,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어 가족 단위의 노약자 돌봄이 점점 어려워졌고, 기존의 의료체계로는 충분한 돌봄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워 개인과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점점 커져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손잡아 드릴께요

지난 4월 말 필자는 장모님의 임종을 집에서 맞는 경험을 하였다. 마지막 시간에 심신이 쇠약해지자 장모님은 계속 집에 가자고 하셨다. 모든 노인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장모님은 집에서 자녀들이 섬기는 가운데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다고 하시며 임종을 맞으셨다.

2017년 실시된 한국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약자의 58%가 거동이 불편해도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성향은 서구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서, 네덜란드인은 83%가, 프랑스인은 85%가 병원보다는 자기 집에서 늙어가고 또 생을 마치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섬기는 모든 어르신이 이구동성으로 하임(요양원)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그곳에 가면 한국 음식은 물론 한국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결국에는 그곳에서 고독사하게 될 것을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로는 계속해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름대로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는 동네마다 정부의 운영비 보조를 받아 어르신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경로당(노인정)이 있고, 요양보호를 받는 분들의 경우에는 정부가 85% 이상의 비용을 지원하는 “노치원”(老稚園, 어르신 유치원)이라고 부르는 노인주간보호센터가 있다.

저출산, 노령화 시대를 맞아서 한국에서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폐업하고 노치원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노치원’에서는 차량 등원과 하루 세끼의 식사를 포함하여, 재활치료, 이발과 목욕, 각종 프로그램 운영으로 요양보호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과 가족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연세가 들수록 모국어가 더 편하고, 독일어는 어눌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독일의 “게마인샤프트”보다는 동포들의 공동체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동포사회도 주간보호센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경로당”이나 “노치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로에서도 한국의 ‘경로당’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재정도 많이 필요하지만, 먼저는 적당한 장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한인회관이나 동포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잘 활용된다면 파독 근로자로 독일에 오셔서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1세대 어르신들을 잘 돌볼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조심스레 가져 본다.

최근에는 독일 사회에서 자라 독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동포 2세대들이 부모님 세대의 사랑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다음 세대들이 힘을 모아 1세대를 섬기며,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한 동포사회를 꿈꾸어 본다.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노후와 생의 마지막 시간에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어르신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도시마다 생겨나기를 기도해 본다. 함께 기도하고 소망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그날이 빨리 오리라 믿는다.

“그때에는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 대신 기쁨을 주겠다” (예레미야 31:13)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20호 16면, 2023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