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민 아동을 소개 합니다.

여러분, “두 다리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가요? 그뿐이 아니에요, 거기에 한쪽 손마저 없다면, 아마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한쪽 손과 두 다리가 없는 선천성 무형성 장애를 딛고, 2009년 런던 19세 미만 세계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접영 50m와 자유형 150m, 개인 혼영 200m 등에서 금메달을 따 3관왕에 오른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군, 그의 뒤에는 세진군을 입양해서 훌륭하게 키워주신 엄마 양정숙씨가 있었습니다.

엄마의 헌신으로 김 세진군은 9 살 때 5km 마라톤 완주와 미국 로키산맥 등반에 성공했고, 12살에 10km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 했습니다. 선수생활 7년만에 150개의 메달을 받았고, 그 중 120개가 금메달 이었습니다. 세진군은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에 최연소로 실력으로 당당히 입학한 경력이 있습니다.

1998년 2월 대전 ‘늘 사랑 아기집’ 후문 앞 길가에 두 다리와 한쪽 손이 없는 장애가 아주 심한 한 아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세진이를 처음 본 순간, 저는 너무 좋아서, 이 자식을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주신 아들이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오해와 만류를 이기고, 기어코 아들로 입적할 수 있었습니다.

친정아버님은 세진이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는 꼭 명심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여자가 되려고 하지 말아라. 오직, 세진이의 엄마로 살아라. 세상과 맞서지 말아라. 참아라. 복수하기 보다는 용서해라. 세진이의 엄마로 살 수 있다면 너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 좋아도 참고, 힘 들어도 참을 수 있다면, 너는 세진이를 키울 수 있다.>

세진이를 걷게 하기 위하여 독해져야만 했던 정숙씨는 간신히 일어서는 세진군을 이불 위에 세워놓고, 수없이 넘어뜨렸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또 일어나라! 죽을 각오로 일어나라! 네가 걸을 줄 안다고 해도 넘어 졌을 때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걸을 수 없다.> 6개월간의 노력 끝에 세진이는 마침내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엄마가 된 정숙씨는 아들 세진에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스키를 타고 싶다고 하면 스키장에서 한 달을 살았고, 라틴 댄스를 배우고 싶다는 세진이를 위해 아픈 몸에 링거를 맞아가며 서울 강남구 역삼동까지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재활치료 때문이었습니다. 수영 덕분에 아들 세진이는 누구보다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엄마인 정숙씨가 일을 나가게 될 때면, 누나인 은아가 세진이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정숙씨가 몸이 불편해서 세진이를 등교 시켜주지 못 할 떄면, 은아가 세진이를 업고,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담임선생님조차 듣기조차 거북한 잔인한 말들을 하며, 은아와 세진이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세진이를 입양하기 전에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든 엄마가 건물청소나 대리 운전을 하는 것을 보면서 딸 은아는 슬픈 마음이 되었습니다.

증학교 1학년이 된 은아는 동생 세진이를 돌보기 위해 중학생인 것을 스스로 포기 했습니다. 은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모든 정성을 동생 세진이를 위해 쏟아 부었습니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을 떄면, 숨어서 동생 세진이를 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은아는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대 기업에 좋은 성적으로 입사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과 성품을 가진 은아는 드디어 지난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인 정숙씨에게는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지난 해 3월 그녀는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5시간 수술을 받았습니다. 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상살이에 대해서 주춤할 수도 있을텐데, 엄마 정숙씨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아들 세진이의 생모를 찾아주는 일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세진이를 통해 나는 어렵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진이가 결혼할 때, 생모를 앞에 모시고 큰 절을 올리게 하는 것이 저의 꿈 입니다.

엄마 양정숙 씨는 위대한 어머니로 선정되어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대한민국의 위대하신 어머님들을 기록하는 국가 기록 등재원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의 어머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지휘자 정명훈등 3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이원숙 어머님에 이어, 세진 군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양정숙 어머님이 위대한 대한민국의 어머님으로 국가 기록원에 등재 된 것입니다.

양정숙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루 24시간, 우리 가족들에게 끊임없는 보호와 용기를 주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었다고 고백 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지금 세진군은 횃숀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힘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 하십시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목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돌격하면, 당신도 세진군처럼 150개의 인생의 메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꼐서 당신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믿음의 확증만 있다면, 당신은 독수리처럼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르게 될 것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승리를 항상 응원합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김유민 아동은 제주도에 위치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의 친부는 어업에 종사하며 일용직으로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어업을 나가면 며칠 동안 집을 비웠고, 아동 양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친모가 주로 아동들을 양육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주거지가 불안정해졌고, 친부마저 수감되었습니다. 아동 부모에게 양육 의지가 부족하여 결국 아동은 형, 누나와 함께 2020년 6월, 시설로 입소하였습니다.

아동은 2026년 현재 초등학교 4학년으로 열살 된 남자 아동입니다. 입소 초기에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알아듣지 못한 채 싫다는 표현만 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걷기,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었고,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자주 다쳤습니다. 영양 상태 또한 좋지 않아 나이에 비해 많이 왜소했습니다.

지금은 시설에서 지내며 언어 치료와 작업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도 잘 적응하여 친구들과 원만하게 어울립니다. 교민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은 유민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해철 선교사 드림.

1444호 34면, 2026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