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독일출생의 미국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세밀한 관찰력과 정확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과 신비를 파헤친 생물학자다. ‘동물들이 집을 어떻게 찾아내고 그곳으로 돌아가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 하인리히의 지적 호기심은 ‘왜 많은 생물은 생명의 시작점인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찾아 연구하였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1만여 킬로미터를 날아가면서 먹이는커녕 물도 마시지 않고 잠도 안 자면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귀소하는 큰뒷부리도요 새가 비행 후에는 출발 전보다 체중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놀라운 이야기부터, 냄새를 이용해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연어 등, 대자연의 서사를 소개하며 인간과 자연의 귀소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해왔다.
술 취한 사람이 본능적으로 집을 찾아가는 ‘귀소 본능’은 인간만이 아니다. ‘집’을 기억하는 능력은 모든 동물에게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집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없는 특정한 감각으로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고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
하인리히는 인간과 수많은 동물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집(home)으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이를 통해 행복과 치유를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집’에 이끌리는 감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생명 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 5월 어느 날, 한국의 택시 기사에게서 독일로 카톡 전화가 왔다. 독일에서 한국에 온 할머니께서 인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서산으로 가자고 해서 왔는데, 어디에서 내려주어야 하는지 주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H 이모님은 인지능력 장애가 있고, 작년 말에 뇌출혈로 쓰러져 보행기에 의지해서 다니시는 분으로 해로 하우스에 나오시면서 돌봄을 받던 어르신이었다.
수소문하여 서산의 친척을 찾아가기는 했지만, 평상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여 건강이 회복된 후 가시라고 했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는데, 어떻게 항공권을 사서 환승까지 해서 한국에 갔는지 모두 깜짝 놀랐다.
‘귀소 본능’의 일종인 ‘배회’는 치매 환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기억력의 상실로 자기의 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해석한다. 치매 요양원에 입원 중인 L 어르신은 매일 가방을 챙겨 집을 찾아 탈출하기를 수없이 반복하셨다. 이런 치매 어르신들을 위해 ‘위치 감지기’를 미리 준비하여 환자의 목걸이나 팔찌, 신발 등에 부착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 환자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아련히 가지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고,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많은 어르신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마음인 듯하다. 지금 고향의 모습은 어릴 적에 살던 때의 모습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님은 물론, 형제와 친척, 친구들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고향을 한번 가보고 싶어 하신다. 고향이라는 말이 주는 행복과 치유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지난 6월 17일부터 2박 3일간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수련회가 베를린 외곽에 있는 Schloss Ziethen Hotel에서 있었다. 서울의 조이어스교회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여 주관하였고, 베를린 주찬양교회와 해로 존탁스카페의 어르신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번 수련회는 지난달에 있었던 서울 나눔클라리넷 앙상블의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는 음악회에 이어 연속으로 기획된 프로젝트 2탄이었다. 고향을 떠나 수고하며 살아오신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노고를 한국의 교회가 잊지 않고 있다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클라리넷앙상블 지휘자인 김문길 장로님께서 오래전 베를린에서 유학할 당시 파독 1세대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고, 특별히 조이어스교회 박종렬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께서 파독 어르신들이 나라 발전에 헌신하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모든 준비를 해주셨다.
이번 수련회의 주제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었는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언제나 사랑과 위로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자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조이어스교회에서 목사님 3명을 포함하여 글로리선교팀 15명을 보내주셔서 수련회를 준비해주었다.
수련회 장소도 우리 어르신들이 평온한 쉼과 영적인 회복을 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좋은 곳에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도 우리 어르신들이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잘 준비된 내용으로 매시간 어르신들을 감동케 하였고, 우리가 이런 대접과 섬김을 받아도 되나 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최상의 수련회로 정성껏 섬겨 주셨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기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은 지난 시간의 힘든 일들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만나 포옹하며 지나온 모든 수고를 위로하는, AI 기술로 만든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고, 스스로 ‘그동안 수고 많았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이 땅의 고향만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하늘에 있는 더 좋은 고향을 소망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한 것은 수련회의 큰 소득이었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한 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브리서 11:16)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64호 16면, 2026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