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보석, 로텐부르크 (Rotenburg ob der Taube)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누군가 철벽을 둘러 일부러 보호해 놓은 것처럼 완벽히 보존돼 있는 로텐부르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동화속 나라 같은 도시이다. 성벽, 돌로 만들어진 길, 다리, 중세시대의 가옥에서는 지금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만틱 가도 여행 중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성 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930년 첫번째 성을 건설했다고 전해지며 종교전쟁 당시의 일화로 유명하다. 1631년 신교와 구교가 서로 싸운 30년 전쟁 당시 신교측이었던 로텐부르크는 구교측의 틸리 장군에게 점령당했다. 장군은 로텐부르크를 불태우고 시의원들을 사형시킬 것을 명령했는데 의원들이 연회를 베풀면서 큰 잔으로 장군을 대접하여 명령을 철회할 것을 설득했다.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진 장군은 3.25리터짜리 큰 잔에 와인을 가득 담고 이 잔을 단숨에 마시면 명령을 철회한다고 약속했고 이 때 시장이 일어나 와인을 단숨에 들이마심으로써 시를 참사에서 구해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시청 앞에 시계탑을 세웠고 11시부터 15시까지 매시 울리는 시계를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로텐부르크는 도시보다는 ‘마을’ 이라는 단어가 더욱 잘 어울리는 매우 작은 도시 이다. 중세 시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 보다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하다, 미로 같은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면 어느덧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갈겐 성문(Galgento)
도시의 방어탑이자 7개 성문 중 하나이다. 양쪽으로 높은 성벽과 연결된 이 탑은 마치 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듯 위풍당당하다. 탑의 이름이 ‘교수대로 가는 문’이라 조금 살벌한데, 시 외곽에 있는 교수대로 죄수들을 이동시키는 데 사용된 데서 유래한다.
뢰더 탑(Röderturm)
갈겐 성문에서 성벽길을 따라 약 400m 가량 걷다 보니 성벽과 연결된 또 다른 탑이 나타났다. 로텐부르크 성벽의 탑 중에서 유일하게 전망대 위로 올라가 도시를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뢰더 탑(Röderturm)이다.
12세기에 건설된 이 탑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새롭게 방어 라인으로 건설된 탑이며 2차 대전 때 상단의 지붕 부위가 파괴되어 복구되었다고 한다.
인형, 완구 박물관
15세기에 지어진 매력적인 건물로, 안에 들어가면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만든 800여 개의 인형과 장난감이 전시되어 있다. 인형들이 사는 주택, 방, 부엌, 상점 등과 극장, 농장, 기차 등…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이 만들어 놓은 인형의 공간은 마치 동화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장난감들 중, 나무로 만든 것은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며,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들도 있다.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은 신랑, 각시 인형도 볼 수 있어 반갑다.
크리스마스 박물관
독일 최초의 상설 크리스마스 박물관으로, 2000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과거 독일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전통과 현재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으며, 1820년부터 1945년까지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등, 크리스마스 관련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맛있는 눈 뭉치, 슈네발렌(Schneeballen)
우리나라로 따지면 ‘특산품’ 이라 할 수 있는 로텐부르크만의 명물, ‘슈네발렌’ 독일어로 슈네(Schnee) 는 ‘눈’, 발렌(Ballen) 은 ‘공’ 의 복수를 뜻하니 눈공, 즉 눈 뭉치라는 뜻인데 실제 그 모양을 보면 정말 눈을 굴려 놓은 모양 같아 깜짝 놀라게 된다. 달콤한 밀가루 반죽 과자에 초콜릿 등의 여러 달콤한 소스를 덧입힌 과자로, 정말 눈 같은 흰색부터 핑크색, 커피색…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특별히 판매하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로텐부르크를 둘러 보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빵집에는 모두 있다.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진 로텐부르크의 중심부도 아름답지만 외곽을 둘러싼 옛 성벽 위의 길을 따라 걸으며 도시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뷔르츠부르크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90%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던 데 비해 거기서 불과 60km 떨어진 로텐부르크는 동북쪽 일부를 제외하고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2차 대전 때 미국의 전쟁부 차관은 존 맥클로이(John McCloy)였다. 로텐부르크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했던 맥클로이는 당시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던 미군에게 포격을 피하라고 지시했다. 미군은 병사들을 뽑아 적진으로 보내 항복을 권유했고, 히틀러로부터 끝까지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은 독일군도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미군에 투항함으로써 로텐부르크는 전쟁의 포화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다.
어차피 승패가 결론난 전쟁에서 양쪽의 현명한 선택으로 인류의 유산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도 살렸으니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맥클로이는 전쟁 후에 로텐부르크의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고 한다.
1317호 31면, 2023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