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해로 – 77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기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기억이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반대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상상”이 더 나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피조물 중에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다. 미래는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 갈 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우리는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 인천대교를 자주 지나게 된다. 인천대교는 바다 위 12.4km를 건너가는 긴 다리로 만들어진 고속도로다. 한국에서는 가장 긴 다리이고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긴 다리라고 한다. 대형버스 수만 대가 동시에 올라가도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한다. 바닷속 암반에 대형파일을 650개나 박아서 기초를 견고하게 하였고, 다리 모양도 바람의 저항을 견디기 위해 곡선으로 만들었다. 어떤 지진도 견디도록 최고의 내진설계를 했고, 다리 중앙에 있는 238m 높이의 주탑을 중심으로 각각의 교각을 긴 철근으로 이어서 더욱 튼튼하게 건설했다고 한다.

인천대교가 이렇게 튼튼히 지어진 것은, 단지 한국의 토목기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라는 대형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배웠기에 안전진단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고, 감리도 철저히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발전을 가져다준 좋은 예이다. 과거와 미래, 기억과 상상을 하나로 연결 지을 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제3회 세대공감 파독 사진전시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몸은 점점 굳어지고 유연성도 떨어지게 된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굳어져서 고정관념과 고집이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지난 일들을 붙들고 과거에 머무르려는 마음을 버려야 생각도 유연해지고 부드러운 마음이 될 수 있다. 과거를 현재와 접목하여 미래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가져야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픈 역사를 많이 가진 나라이다. 근현대사만 돌아보아도 일본의 강제 합병에 의한 식민 통치를 겪었고, 6.25라는 동족상잔의 한국전쟁도 겪었다. 전쟁 후에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암울한 과거를 탓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발전적 전진을 선택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서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존경받고 환영받는 국민이 되었다. 이는 우리 모두 과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은 일등의 공로는 누가 뭐래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노고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분들의 발걸음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의 첫걸음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분들에 대한 공로에 대한 예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분들이 누구의 인정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로의 존탁스카페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주일마다 점심 식사를 무료로 대접하는데, 처음 오시는 분들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드셔도 되는지 물어보신다. 이 식사 비용은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한국의 몇몇 작은 교회들이 어르신들을 섬기라고 후원하여 주는 것이기에 무료라고 하면 놀라신다.

사실 한국의 60세 이상의 어른 세대들은 파독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들의 노고 덕분에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고 하며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잘살게 되었는지 다음 세대가 역사를 알아야 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과거를 교훈 삼아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가정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삶은 작은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그분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드릴 때, 그분들은 우리와 우리나라 역사에 자랑스런 “꽃”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분들이 독일에서 빚어낸 빛깔과 향기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 준다면, 국민 모두의 가슴에 한 송이 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분들은 커다란 물질과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다만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어서 우리 국민들이 기억하는 감사의 “꽃”이 되고 싶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해로에서는 베를린의 Rathaus Charlottenburg-Wilmersdorf에서 6월 5일부터 7월14일까지 제3회 “세대공감 파독 사진전”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파독 근로자들의 노고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우리 모두에게 잊혀 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감사의 꽃이 되기를 바란다.

베를린의 중심에 있는 유서 깊은 구청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우리 동포들뿐만이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에게 한독 수교 140주년과 파독 60주년을 맞는 두 나라 사이의 깊은 수교 역사와 우의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관심 있는 분들의 방문을 기대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중에서)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16호 16면, 2023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