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mstadt: Ludwig 가의 영광과 비극이 한자리에 ②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과 Ernst Ludwig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의 탄생
1806년은 다름슈타트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600여 년간 백작령의 Hessen 제후국이 왕국에 버금가는 Hessen-Darmstadt 대공국(Großherzogtum)으로 발돋움하게 된 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자체적인 확장과 발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당시 격변하는 유럽의 정세에 산물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이러한 혁명의 열기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전체로 확산되었고, 이는 기존 봉건 제후들에게는 불안감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혁명의 열기가 커져가, 유럽의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한편 프랑스 국내는 1789년 혁명이후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혁명정부는 몰락하였고, 5년뒤인, 1799년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 다시 5년 뒤, 1804년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의 중앙부를 제압, 자신의 형 조제프는 나폴리 국왕으로, 동생 루이는 네덜란드 국왕에 임명한다. 그리고 1806년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그 휘하 300여 지역 영주들을 30여개의 제후국으로 재편하였다. 특히 라인강변의 제후국들은 통폐합을 통해 라인 동맹을 발족시켜 프로이센 및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의 완충 지대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이러한 라인연맹의 탄생과정에서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도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1806년 7월 12일, 헤센 백작령의 마지막 영주인 루드비히(Ludwig) 10세는 자신을 루드비히 1세로 개칭하고, 헤센-다름슈타트대공국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1806년 7월 12일은 이웃인 비스바덴을 수도로 하는 나사우공국뿐만 이나라, 바덴 대공국, 바이에른 왕국, 작센왕국, 나사우공국, 뷔르템베르크왕국 등 12개의 왕국, 또는 공,후국들도 출범한 날로서, 그 탄생이 자연발생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격동의 19세기 유럽 정세에 의해 탄생한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은 루드비히 1세와 그의 직계후손인 루드비히 2세(1830-1848), 3세(1848-1877), 4세(1877-1892) 그리고 에른스트 루드비히(1892-1918)로 이어진다.
Luisenplatz
이번 다름슈타트 역사산책은 루이젠광장(Luisenplatz)에서 시작한다.
루이젠광장은 대공으로 변신한 헤센-다름슈타트대공국의 정치적인 중심지로서 Alten Palais(대공이 거주하는 궁전)와 Kollegiengebäude(정부 관청)그리고 Ständehaus(의회)가 위치했던 광장이다. 대공국의 대소사는 물론, 시민들의 모인 등 대공국의 정치, 경제적 중심지로서 대공국의 역사와 함께한 광장이었다.
그러나 2차세계 대전의 피해는 다름슈타트도 피해갈 수가 없었고, 루이젠광장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현재 Alten Palais 위치에는 Luisencenter가, Ständehaus 자리에는 Sparkasse Darmstadt가 세워져 있다. 그나마 다행이도 Kollegiengebäude는 다름슈타트 시청사로 쓰이고 있어, 그 역사적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젠광장은 오늘날에도 다름슈타트시의 상징적인 자리이고, 광장 한가운데 루드비히 기념탑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어, 대공국시대의 위엄을 보존하고 있다.
Ludwigsmonument
다름슈타트에서 “Langer Ludwig”라고 불리는 루드비히기념탑(Ludwigsmonument)은 1820 년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에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 루드비히 1세를 기념하여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기념탑이다.
다름슈타트 시민들은 루드비히 1세의 생일인 6월 14일(1841년) 초석을 세웠고 11주기인 1844년 8월 25일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사암 기둥은 Georg Moller가 디자인했으며 루드비히 1세 동상은 뮌헨 조각가 Ludwig Schwanthaler가 디자인했다. 루드비히 동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손에는 두루마리 형태의 헌법이 쥐어져있다.
전망대의 높이는 30.04 m, 동상의 높이는 5.45m이며 5400kg의 청동으로 주조된 루드비히기념탑은 총 높이는 39.15m로 다름슈타트를 상징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대공국의 중심지인 루이젠광장을 떠나 중세 다름슈타트를 살펴보기 위해, Rheinstrasse를 따라 Marktplatz로 떠난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한 방문객이라면 루이젠광장에서 Wilhelminenstrasse를 따라 올라가 마지막 대공인 에른스트 루드비히 어머니인 Alice 왕비를 기리는 탑과, 그 뒤 Wilhelminenplatz에 있는 St. Ludwig교회도 방문해 보는 것을 권한다.
St. Ludwig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다름슈타트에 지어진 최초의 가톨릭 교회로 대공국 초기시대 다름슈타트의 상징적인 건물 대부분을 건축한 Moller에 의해 1822년 착공, 루드비히 1세 결혼 50주년 기념일인 1827년 2월 19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내부 건축이 매우 인상적으로 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삼았으며, 판테온의 1/5규모로 지어졌다. 다름슈타트에서 꼭 보아야할 명소이다.
이곳으로 온 방문객들은 Luswigplatz와 Ludwigstrasse를 거쳐 Marktplatz로 올 수 있다.
각 도시 역사산책은 통상 3시간 정도 도보로 진행되기에, 우리는 루이젠광장에서 지름길인 Rheinstrasse를 따라 중세시대 다름슈타트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Marktplatz로 떠난다.
1198호 28면, 2020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