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승한의사의 건강칼럼(136)

혈액질환 ②

혈액은 인체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다른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포 성분과 혈장이라 부르는 액체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적혈구 등 세포성분이 혈장에 떠 있는 형태가 바로 피다.

피가 붉은 이유는 혈액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적혈구 성분 때문이며, 백혈구와 혈소판은 혈액의 4~5%에 불과하다. 혈액의 나머지 55% 정도는 혈장이며, 혈장의 90%는 물이다.

이런 혈액의 구성원들이 많아지거나 적어지고 또 이상이 생겼을 때 우리는 혈액질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서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찌그러져 빈혈이 유발되는 겸상적혈구 빈혈은 사망률이 높은 편이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의 생산 장애를 일으키는 지중해성 빈혈은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특별한 치료 없이 정상 생활이 가능하나, 병이 심한 경우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도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 같은 유전성 빈혈은 한국 사람에게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재생불량성빈혈은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류머티즘처럼 자가면 역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심한 바이러스 감염이나 항암-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생길 수도 있다. 역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용혈성 빈혈은 인체의 비정상적 면역반응에 의한 경우가 가장 흔하며, 항생제나 고혈압치료제 등 약물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말라리아 등 감염질환의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의 후유증으로 생기기도 한다. 원인이 다양하므로 원인을 다스리는 치료가 우선돼야 하며, 병이 진행돼 비장에서 적혈구 파괴현상이 심해진 경우엔 비장제거수술을 받기도 한다. 허지만 비장수술역시 보증되는 방법은 아니다.

다음은 백혈구의 이상에 관해 살펴보자. 백혈구와 관련해선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는 것과 감소하는 것 두 가지 모두 문제가 되는데, 이 중 백혈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게 백혈병이다. 백혈병을 혈액암이라 부르는 이유는 백혈구가 암세포로 변하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는 암 세포로 변한 비정상 백혈구가 증가함에 따라 정상적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생산이 줄어들고 그 때문에 결국 사망하게 된다.

백혈병의 원인과 관련해선, 방사선 피폭만이 백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을 뿐 그 밖의 발병원인은 아직껏 분명하지 않다. 벤젠 등 유기용제의 사용, 중금속 노출, 일부 약 부작용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 않다. 유전 가능성은 일부 소아 백혈병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백혈병은 크게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나누며, 각각 급성과 만성이 있다. 따라서 백혈병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등 4가지 종류가 있다. 골수성 백혈병은 과립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며, 림프구성 백혈병은 림프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 세포로 바뀌는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어린이에게 발병하며, 전체 소아암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소아에게 발생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만으로 70% 이상 완치된다. 그러나 성인에게 나타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 완치율이 20%에 불과하므로, 나머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야 한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60대 이상에 나타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20대와 30대 빈발하지만, 소아든 성인이든 항암제 완치율이 15~20%에 불과하므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사망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40대와 50대에 빈발하며, 최근 화제의 항암제 글리벡의 개발로 치료효과가 크게 좋아졌다. 과거엔 5년 생존율이 60% 안팎이었으나 글리벡의 사용으로 9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한편 급성 백혈병은 출혈이나 발열 등의 증상이 순식간에 나타난다. 특정 유형의 급성 백혈병은 증상이 나타난 지 하루 이틀 만에 온 몸에서 피를 쏟기 때문에 손 쓸 시간조차 없이 사망한다. 그러나 만성 백혈병은 발병해도 증상이 없어 1~2년씩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피 검사를 해도 웬만큼 꼼꼼히 조사하지 않으면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로, 체중감소, 식은 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자주 피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급성 백혈병과 만성 백혈병의 발생 비율은 약 8대2 정도다. 백혈병과 반대로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병이 있는데 골수이형성증후군과 재생불량성빈혈 등이 대표적이다.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과거엔 재생불량성빈혈과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 빈도는 10만 명에 1명꼴로 비슷했으나 최근엔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빈도가 10만 명에 2명꼴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공해, 환경오염, 염색약의 과도한 사용, 장기간의 흡연과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는 혈소판의 문제다. 혈소판도 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문제가 생기는데, 혈소판 수가 감소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게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TP)’이다. 혈소판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만 자가 면역 작용으로 혈소판이 대부분 비장에서 파괴되는 병으로,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빈도는 백혈병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 있는 사람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혈소판 수가 증가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은 ‘특발성혈소판증다증’이다. 혈소판이 증가하면 혈전이 쉽게 생기므로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 순환기 질환을 유발한다.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이 병은 100만 명에 1~3명꼴로 발병할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이상과 같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 내 3가지 세포에 생기는 병을 살펴봤다. 그러나 세포가 아닌 혈액 내 다른 성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게 혈우병이다.

이는 혈장 내에 존재하는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피가 멎지 않는 유전병으로, 해당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므로 남성에게만 나타난다. 여성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후대로 유전돼 아들의 1/2이 혈우병에 걸린다. 그러나 전체 혈우병 환자의 1/3 정도는 부모로부터 유전인자를 물려받지 않았는데도 후천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사람들이다. 후천적인 유전자 변이의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1262호 25면, 2022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