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를리너입니다(Ich bin ein Berliner)”

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3년 6월 26일. 군사적 긴장감이 한창이던 냉전 시대의 독일 베를린에 드물게 시민들의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넘쳤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가 독일 분단 이후 최초로 베를린을 방문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쉐네베르크(Schöneberg) 시청 앞에서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연설을 하며 베를린과 독일에 대한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베를린은 현재 독일의 수도이자 정치·외교적인 허브 역할을 하지만, 과거에는 미국·영국·프랑스령을 중심으로 한 서베를린과 소련의 동베를린 진영을 가르는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다.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로 둘러싸여 이른바 ‘육지의 섬’으로 불리곤 하였다.

반면 최근의 베를린은 유럽, 나아가 글로벌 스타트업의 허브 역할을 하며 산업적으로 규모가 왕성하게 커지고 있다.

스타트업 연구 기관 스타트업블링크(StartupBlink)가 발표한 2022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지표에 따르면 독일은 스웨덴에 이어 유럽연합(EU) 내 국가 중에서 스타트업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EU 내 도시를 기준으로 하면 베를린은 프랑스 파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또, 독일 정부는 2020년 기준으로 약 41만 명이 독일 전체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약 97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 원) 예산을 투입하여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독일에서도 특히, 베를린을 중심으로 밴처캐피털 등의 풍부한 투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의 스타트업이 포진해 있다. 에른스트앤영(Ernst&Young)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약 49억 유로(약 7조 원)의 자금이 베를린 스타트업에 투자금으로 유입됐고, 현재 5,600개에 달하는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고 있다. 또, 독일 전역의 핀테크 스타트업 중 35%가 베를린에 있는 것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친외국인 문화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과 글로벌 인력이 풍부하다. 독일에서 창업을 했지만 회사에서 주로 쓰는 언어가 독일어가 아닌 영어인 곳도 많다.

다국적 인력이 모여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만큼 탄소 중립을 포함한 ESG 실천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최근 산업 트렌드를 가장 민첩하게 받아들이고 서비스에 적용하는 스타트업의 메카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다.

이렇게 베를린의 스타트업 산업이 활발해진 건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책에 힘입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은 인구의 평균 연령이 42.6세(2022년 기준)로 독일 함부르크(42.2세)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도시다. 전체 외국인 숫자는 약 90만 명으로 베를린 전체 인구의 24.3%(22년 기준)나 차지한다. 또 외국인들의 출신도 무려 190개 국가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보다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현재는 구동독 지역에 대한 개발이 많이 이뤄졌고, 외부자금 투자도 많이 이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인 곳이 많았다.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케밥 가격을 기준으로 함부르크가 평균 6.03유로로 가장 비싼 반면, 베를린은 5.41유로로 전체 도시 중 6위에 그쳤다.

이처럼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보다 특히 더 ‘젊고 국제적이며 힙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여, 돈이 많지 않은 초기 창업가들을 도시로 모으는 유인책을 썼다. 애초에 바이오, 자동차, 금융 등 전통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별개 노선을 취한 것이다.

또 2016년 당시 경제기술에너지부 장관이었던 지그마 가브리엘(Sigmar Gabriel)은 디지털 허브를 도입했는데, 이 정책의 덕을 보기도 했다. 디지털 허브는 스타트업, 투자가, 전문가들이 쉽게 네트워킹 할 수 있도록 도시별로 특화 산업을 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이 위치한 독일의 대표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와 기술공과대학교가 유명한 다름슈타트에는 핀테크와 사이버 보안이, 항구 도시 함부르크는 물류가 특화된 도시로 선정됐다.

마찬가지로 베를린은 사물인터넷(IoT)과 핀테크 허브로 선정돼 독일에서 가장 많은 IoT와 핀테크 스타트업이 있는 도시가 되었다. 독일 전체 핀테크 기업의 약 3분의 1 이상의 스타트업이 현재 베를린에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진출해 세계 금융시장을 놀라게 한 스타트업 N26이 대표 사례다. N26은 현재 24개국에서 약 8백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기업 세무, 회계 등 기업 자산운용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 업체 스맥(Smacc)도 베를린에서 설립됐다. 국내 음식 주문 앱인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 히어로 본사도 베를린에 있다.

이처럼 각 지역을 산업별 허브로 지정함으로써 허브를 통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네트워킹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독일은 2021년 새롭게 구성된 연방 내각에서 이전 경제에너지부를 ‘경제기후보호부(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Klimaschutz)’로 변경하면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부서명에 아예 친환경을 위한 기후 보호를 명시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맞춰 2022년 독일 스타트업 투자액 TOP10 중 3곳이 ESG 경영 관련 기업이다. 대부분의 VC 및 액셀러레이터들도 투자 기업 선정 시 사업 과정에서 친환경적 요소가 얼마나 포함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베를린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폐허가 되었고 분단과 냉전의 상징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젊고 프레쉬하며 국제적이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를린은 미래 먹거리 사업이 될 트렌드와 신성장 동력이 나오는 곳이 될 것이다. 이에, 국내 스타트업 종사자나 예비 창업자, 혹은 혁신적인 기업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베를린을 관심 리스트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1321호 17면, 2023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