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 독일의 대표적인 오페라 극장(4)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Bayerische Staatsoper)

문화사업단에서는 독일의 대표적인 오페라 극장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유럽 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오페라의 산실을 안내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독일의 긴 겨울동안 유럽 음악감상의 공간을 안내하고자 한다.

뮌헨(München)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수도로 독일 국민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가운데 하나로 밝고 명랑한 시민, 숲으로 뒤덮인 거리, 뛰어난 문화유산 등이 자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뮌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도시가 오페라의 도시라는 점이다.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의 탄생

1806년 즉위한 선제후 막스 요제프는 파리 여행 동안 오데옹 극장(Théâtre de l’Odéon)에 크게 감명 받았고, 뮌헨으로 돌아오자마자 파리 오데옹 극장을 모델로 새로운 오페라하우스 건축을 결정하였다. 건축가 칼 폰 휘셔는 오픈 발코니 스타일의 극장을 디자인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 혁명의 새로운 원칙인 ‘발코니와 박스석을 사회계급으로 나누지 않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818년 10월 12일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은 페르디난트 프란츨(Ferdinand Fränzl)의 징슈필 ‘Die Weihe’로 문을 열게 되었다. 1825년 루드비히 1세 즉위와 오페라 하우스의 리오프닝은 뮌헨 음악활동의 시작을 다시 알렸고, 이는 당시 비엔나와 라이벌 관계를 이루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국립 오페라극장으로서의 위용

8개의 코린트 스타일 기둥으로 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은 당시 도시 뮌헨을 외형적으로 압도하였다. 개관 당시의 이 화려함은 극장 전통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로비 벽면과 복도에는 호사스런 초상화와 조각들로 가득하다. 1층 좌석과 이탈리아 스타일의 수직으로 치솟은 5개의 서클석의 객석은 총 2100여 석의 좌석으로 되어 있는데, 객석의 웅장한 광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브루노 발터, 한스 크나퍼츠부쉬, 클레멘스 크라우스 등 시대의 거장들이 이 극장의 음악감독직을 거쳐 갔고, 1946년부터 52년까지 게오르그 솔티 등의 일류 지휘자가 바톤을 이어받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은 전통적인 주요 독일 레퍼토리와 새로운 작품들의 초연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1971년대부터 92년도 까지 계속된 볼프강 자발리쉬 시대는 극장의 전성기를 이루고 활발한 녹음 녹화나 해외 투어공연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 받았다. 이후, 주빈메타, 페터 슈나이더, 켄트 나가노 같은 거장들이 음암감독을 맡아 극장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뮌헨 시민의 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1823년 1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 첫 번째 시련이 닥치는데 화재로 극장 전체가 불타 버렸다. 사실 당시 가장 진화된 화재 진화 시스템을 극장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물을 공급하는 지붕 위 탱크가 추위로 꽁꽁 얼어버렸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건물은 2년 뒤 다시 건축되었는데, 맥주에 1페니히씩 세금을 부과하여 재정을 마련하였다.

이차대전 중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은 또 한번 파괴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1943년 10월 3일, 극장은 연합군의 융단폭격에 파괴되었는데, 철제 구조물이 화재 시 발생한 열로 인해 녹은 것만 보더라도 그 날의 참혹한 폭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전후 극장의 재건축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전후 복구 재정부족으로 인해 독일국회는 바이에른 국립 가극장의 재건축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에 반기를 든 뮌헨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1952년 극장 재건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했고, 이를 통하여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으며 재건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 우선적으로 오페라극장의 복원을 요청한 뮌헨 시민들의 높은 문화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그너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그너의 뛰어난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루드비히 2세가 즉위한 1864년, 극장은 그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그너는 루드비히 2세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자기 생애 최고 걸작들을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하게 된다. <로엔그린>이래로 새롭게 태어난 첫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가 1865년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1868년에는 본래 가벼운 희극으로 제작되었던 작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역시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또 1869년에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이루는 4개의 오페라 중 첫 번째 작품인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과 ‘발퀴레’(Die Walküre)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아닌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을 전 세계에 각인 시키는 축제가 매년 7월이면 개최 되는데, 바로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1858년 궁정 음악감독에 취임한 카를 폰 페르팔(Karl von Perfall)에 의해 1875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140년 이상의 역사의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가 되었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베로나 페스티벌보다도 사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프로그램 구성은 페스티벌을 위해 따로 무대에 올리는 공연 작품은 없고, 대신 전번 시즌 다시 말해 지난해 9월부터 그 해 봄까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와 발레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각 작품 별로 한 두 번씩, 매일 번갈아 가면서 공연하는 것이다.

1320호 23면, 2023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