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에 내가 태어난 고향집과 정든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잔뼈가 굵어진 산골과 들판과 옹달샘이그곳에 들어설 고층건물을 위해 자리를 내놓아야했다. 행정기관 김해군과 부산광역시 사이의 김해평야에 국제공황이 생기자 군이 시로 승진되는 발전과정에서 도시개혁이 대대적으로 일러났다. 산골짜기 우리 동네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맞추어 신식으로 모습을 바꾸어 그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주위의 모든 동네들이 다 같이 농촌에서 대도시의모습으로 변신하여 세시대로 출발 했다
벼가 자라던 논바닥위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자로 잰 듯한 일직선의 차도위에 아스팔트를 깔았고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가로수 묘목들이 선 옆으로 자전거 길과 산책길이 만들어졌다.
내가 그곳을 떠난 50년 사이에 그곳에 존재한 500년의 동네역사의 자취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늘을 찌르듯 높이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숲속에서 내가 태어나 자란 우리 집이 서있던 위치가 어느 쪽이었던가 방향을 찾아보지만 알 길이 없었다.
나이 들어 먼 외국으로 떠나는 날 어머니가 대문 앞에 서서 나에게 손을 흔드신 곳이다. 그 집 만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면 고향집이 눈앞에 나타난다. 내 아래로 동생이 셋이어서 기억에 남은 어머님의 모습은 아이를 등에 업고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이다.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었음에도 기억나는 일은 방앗간에 가서 부탁한 쌀과 밀가루를 가지려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기어 다니는 동생의 허리에 띠를 매어 방문 고리에 연결시켜 마루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발걸음은 나르듯이 빨랐고 “야야 어서 오너라. 니 동생 집에 혼자 있다 !” 하셨는데 그 목소리에 담겼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지금도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루에 누워 이리저리 배를 밀고 다니던 동생은 어머니를 보자말자 울기 시작하여 나도 따라 울었던 기억은 유난히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급히 머리에이고온 함지를 축담에 내려놓고 동생의 허리에 맨 띠를 풀고 끌어안아 젖을 먹였다. 안도의 숨을 쉬며 젖을 먹는 동생의 손을 잡아 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그날따라 유난히도 부드러워 보였다
어머니 손은 일손으로 거칠었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그 손으로 쓰다듬어주셨는데 지금도 꺼끌꺼끌 하던 손바닥이 배위를 몇 번 스쳐간 후에는 복통이 사라졌다. 등이 가려워 윗옷을 올리고 어머니 앞에 앉으면 손바닥으로 슬슬 긁어 주셨고 나는 눈을 감고 즐기다가 곧 잠이 들었다.
축담위에 놓였던 어머니의 고무신 큰 검은 노쇠 밥솥에 올려 찐 된장찌개가 담겼던 툭사리, 청량고추를 다져 넣고 만든 조선간장이 담긴 작은 종지가 어울려 같이한 우리 집인데 자취를 감추었다.
내 뇌리에 깊이 새겨져있는 잊을 수 없이 더 많은 기억들은 이집에서 이루어져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인생의 첫 단계인 유년기부터 쌓여진 많은 기억들을 담아 지켜준 내정감이 담긴 집이었는데 잔인하게 파괴되었다.
옹기종기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동네 한복판에 자리하여 내가 아침저녁으로 대청 집 마루에 서서 바라보던 우람스럽던 500년 묵은 고목마저 빽빽하게 세워진 아파트 숲속에 잠겨 보이지를 않는다. 고목은 국보로 인정되어 불도저에 뿌리를 다치지 않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증거가 되었다. 옛날처럼 그 자리에 서서 육중했던 몸통을 가늠하고 동네를 갈아엎는 불도저를 보며 늙은 가지를 움츠리며 살아남았다 .
뒷산에서 흘러내린 질 좋은 지하수로 뿌리를 적시고 튼튼한 가지를 거쳐 마지막 잎사귀까지 빨아올려 사계절의 옷을 갈아입었다. 가을이면 백만이 넘는 단풍든 황금빛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온 동네 위를 나르다가 골목마다 가득하게 쌓였다.
동네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고목아래 모여 온갖 관혼상제의 새 소식을 교환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한여름이면 일꾼들이 쉴참을 먹은 후 드러누워 낮잠을 잤던 곳이다. 이런 역할로 자랑스러웠던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 예상했을 것이다.
신도시로 몰려든 새로운 인간들이 박은 배간으로 생명수를 빼돌렸고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방향을 바꾸어 물량이 줄어들자 고목은 정기를 잃어갔다. 서울에서 나무의사가 와서 말라가는 둥우리에 구멍을 내거 링거를 꽂아 살렸다. 나무외과 의사들이 달라붙어 몸통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며 많은 가지들을 잘라 결국 초라한 모습으로 고층건물의 발치에 서게 되었다. 고목의 그늘아래서 이웃의 정을 나누며 같이 살은 나의 부모님과 동네어른들의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다.
같이 자란 친구들은 모두 다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져 가버려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볼 수 없다. 그곳으로 모여든 건축회사들이 보상금으로 돈뭉치를 내놓았을 순간에 고향의 혼을 빼앗긴 것이다. 그 집에서 돌아가신 선조들의 기일이면 상을 차리고 영혼을 불러드려 제사를 지낸 집들이 섰던 선조의집 땅값을 받았다.
평생 한 번도 쥐어보지 않은 거액을 받아들고 고향을 내놓은 것이다. 그곳에 살다간 선조의 영혼과 하늘과 땅 사이의 평화롭던 세상을 돈과 바꾼다는 의식 없이 돈뭉치를 주머니에 넣고 그곳을 떠났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귀한 것을 돈과 교환한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멈출 수 없고 취소라는 것을 모르는 체 시간은 흘렀다. 유년기의 오만가지 정서가 배여 있는 골목길과 돌담이 사라지기도 전에 돈의 힘만 믿고 떠나갔다. 그보다 더 먼저 더 멀리 떠난 나 역시 노동이민자로 그곳을 떠났다. 세상을 떠돌다가 다시 그곳으로 가면 어린 날의 온갖 것들이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곳을 찾았다.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면서도 내마음속에 간직하고 떠난 그곳은 변하지 않았기를 바랐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심신의 일부를 버린다는 것을 모르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은 너무나 거대하고 웅장하여 그전의 모든 것들을 배제했고 기억 속에 남은 초가집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사라져 갔다. 시간에 담은 어린 날의 온갖 것을 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 불도저는 집과 돌담들을 밀어 치웠다. 집집마다 갖추어 두고 온 식구들의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살려준 생활의 중심지인 장독대와 집 뒤에 섰던 감나무를 뿌리째로 갈아 없앴다. 거리와 건물이설 곳을 측량기로 표시하여 그곳에 고향집이 서있었다는 흔적을 없앴다.
대도시에서 새살림을 시작한 어른이 된 친구들이 벼루고 벼르다가 시간을 내어 그곳에 갔을 때는 500년의 시계 침을 0점으로 돌린 신도시의 시계가 이미 똑딱거리고 있었다. 흰머리가 자리를 잡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라보지만 방향을 잡을 길이 없다. 새것을 위해서는 없어져야 하는 헌 것 속에 담겨져 사라진 영혼들은 하늘위로 날아가 지금도 방황하며 영원히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희생을 요구한 새것들은 마치 채찍 같은 시계의 나침이 재촉하는 대로 목적 없이 출발한 것이다. 결국은 헌 것이 되기 위해 내달린다. 새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헌 것이 되어 언젠가는 또 새것에 밀려나가게 될 날을 향해 질주한다.
사람들은 잃는 것 없이는 새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위로한다. 얼마간은 새것을 만지며 손때가 묻힐 때까지 헌 것을 아쉬워할 것이다. 동네의 이야기는 조금은 어디에다 기록해두고 사진으로 남기고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동안 이미 빛이 바래기 시작한 새 것들에 싫증을 느끼고 최신 새 것이 있다는 앞만 보고 내달릴 것이다. 이 최신식의 도시에 초가집 산골이 있었다는 것은 전설이 될 것이다.
1220호 14면, 2021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