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집 (1)

류 현옥

1 빈집

우리 동네 뒤를 둘러싸고 있는 방음벽을 돌아나가 국도를 건너면 아직도 옛 동독 티를 벗지 못한 곳이 나온다. 발코니 없이 밋밋하게 지어진 회색의 시멘트 아파트가 철조망 경계선 뒤에 서있다 고목의 숲속에 선 폐쇄된 병원건물 모 습이 지난날의 흔적을 보여준다.

을씨년스럽게 도 분만실이라는 간판을 건물입구에 붙인 체 지난 30년 동안 방치되어 유령처럼 서있다. 비바람에 파괴되어가는 건물 의 깨어진 창문 과 건물 지붕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소나무들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독일역사의 한부분이 냉동보관 되어있다. 불도저가 달려와 처분할 때 까지 버틸 것이다. 시계바늘이 잠시 멈춘 듯한데, 해마다 굵어지는 자작나무의 몸통이 세월은 계속 흐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은 나의 산책지로 잠시 동안 옛 날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작은 열쇠 주머니 하나만 바지주머니에 넣고 이곳을 향한 산책길은 잊혀가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퇴색된 파노라마를 되돌아보며 지난날에 심취하는 명상의시간이다. 나는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같은 길을 걷는다. 머릿속에서 엉켜있는 사고의 실마리를 정리하며 현실을 잠시 떠날 수 있기에 매일 새롭기 까지 한 길이다 .

사차선 차도 양쪽으로 고목들이 숲을 이룬 작은 공원으로 연결되어 동네 길을 뒤로하고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전세기에 가로수로 심겨져서 자란 노목아래 백년 묵은 두 채의 집이 서있다. 독일 통일 후 새로 생긴 동네와 지은 지 이십년밖에 인되는 우리 집과 방음벽에 둘러싸인 신식 계획도시와 대조적이다. 대형 흑백사진을 자연 속에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풍수에 벽돌의 색깔이 바래진 빈집의 벽이 통일 전 까지 이곳이 동독지역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시 으스스한 분위기가 방치해둔 건물전체를 감싸고 있다. 기와 장으로 덮어 내린 지붕 의 중간지점에 간격을 맞추어 만들어 붙인 네 개의 작은 창문이 건물의 고풍을 과시하고 있다. 내부를 볼 수 없으니 분명히 지붕 밑 다락방의 환기통 같은데 사람이 살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집 앞의 울타리에 집을 판다는 광고가 붙어있었다. 나는 이 두 집이 빈집이라는 것을 알고 는 있었지만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는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작되는 숲속은 파라다이스나무와 느티나무의 우람찬 몸통 사이로 싶은지 얼마 안 되는 벚꽃나무 몇 그루가 비집고서있다. 숲 속의 오솔길을 따라 자작나무들이 서있다. 숲 한복판에 200 년 묵은 게르만 민족의 상징인 도토리나무가 그 웅장함을 자랑하며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서서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고 섰다.

우리 동네 뒷길 방음벽아래서 시작된 산책이 한 시간 후면 끝나 그 자리에 돌아와 선다. 오직 자연이 지켜온 옛 세상으로 돌아가 뉴스에 담겨 전달되는 온갖 현대 인간의 불행을 멀리하고 피로를 푼 시간이다. 출발점인 그곳에 다시 서면 몸과 마음이 느슨하다. 방음벽 위로 솟아 나와 있는 우리 집 지붕 꼭대기를 보면 마음이 놓이고 푸근해진다. 사차선 도로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서 초록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다시 한 번 빈집이 서있는 주위를 돌아본다.

어느 날인가 길가 빈 집 울타리에 붙어있던 집을 판다는 광고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작은 움직임이 마음속에서 파동을 일으키며 알 수 없는 불안이 호기심을 동반했다. 광고종이가 붙었던 곳에 남은 종이의 흔적을 보며 이곳에 다가 올 작은 변화를 예상했다.

광고라야 집을 살 사람은 알려달라는 전화번호가 씌어있었을 뿐이었다. 아주 여유 있게 주인을 찾는 다는 광고였다. 그동안 기다린 빈집이기에 10년은 더 기다릴 여유를 보였다. 쉽게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는 태도로 생각했다.

주택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래 비워 두었던 헌집을 사서 살겠다는 사람은 운명적인 인연으로 이집주인이 될 것이다. 집을 찾는 사람들이 구태여 지나다닐 곳도 아니었다. 광고문은 집 앞의 사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차속에서 읽을 수도 없었다. 고목이 서있는 인도에서도 쑥 들어가 자리한 집의 울타리에 붙어있는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쪽지였다. 인터넷 세상에 새 주인을 찾는다는 집이라는 것을 알리는 종이를 울타리에 붙여 놓은 것부터가 그랬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집과 거리가 멀 것이다.

이날부터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새 주인이 집수리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나에게는 그 집이 주인이 바꿨을 뿐 계속 빈집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기를 은근히 바랬다. 산책길의 작은 나의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새 집주인이 온갖 서류 문제를 처리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 듯했다. 살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기위해 집을 내놓은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집을 팔아야 다른 곳에 가서 살 집을 구입하기 위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파는 사람도 여유 있게 넘겨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집의 세 배는 될 길이의 벽은 벽돌로 지어져 튼튼하게 보이는데 입구와 입구 오른쪽에 창문이 하나 달렸을 뿐 밋밋하다. 이집은 등을 거리 쪽으로 돌리고 돌아 앉아있다. 주택의 중요한 역할로 거주인의 활동장소인 거실과 테라스는 물론 부엌도 반대쪽으로 향한 것 것이다.

어느 날인가 같이 산책을 가던 남편이 나에게 설명했다. 백여 년이 훨씬 넘은 오래된 농가란다. 내부는 옛 농가가 다 그랬듯이 아래층은 벽돌로 칸을 지르고 중요한 부엌과 소외양간과 곡물창고가 있을 것이고, 이층에는 침실과 거실이 있을 거라고 했다. 이집은 독일 통일 후에 문화제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으니 가정집으로 마음대로 개조할 수 없을 것이란다. 농지와 함께 농부들이 다 사라진 곳에 그 역할을 상실한 농가는 이제 역사의 한 장으로 남아 보존되어 있단다.

이집에 와서 살겠다는 대도시의 현대인은 특별한 사람일 것이고 옛것을 아끼는 사람일 것이다 이곳이 시내와 가까워지자 묵은 농가로 들어와 살면서 두 세계를 왕래하며 살겠다는 사람일 것이다. 문화제 보호법은 집구 조를 고치지 못하게 하는데 엄두를 내어 입주해서 살 생각을 하는 새 주인이 나에게 더욱 호기심을 갖게 했다. 나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때마다 집안의 거동을 살폈다.

사람을 피해야 하는 때다

독감비루스 코로나가 사람들 속에 들어와 기아급속도로 번식을시작하여 인간세계가 판데미의 공포 속으로 빠져 들어간지도 일 년이 지났다. 늘어가는 세계적인 사망자 수가 백만 단위를 지나서 전 인류의 2.2% 까지 치달아 오백만 단계를 향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적으로는 전례 없이 고기온의 아프리카 지역까지 비루스가 점령을 했다. 한마디 로 전 세계가 코빅 19라는 이름을 가진 공동의 적과 투쟁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황폐를 부리는 비루스와의 전법은 사람을 피하라는 보건당국의 지시다. 적군 비루스의 방어 작전으로 아는 사람도 멀리서 손짓으로 아는 척을 하고 얼굴대고 만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규칙적인 모임들이 해체되어 갈 곳이 없어졌다.

육신의 움직임이 감소되고 정신적으로 둔탁 되어갔다. 이 빈집의 변화는 나의 관심을 집중 시켜 산책과 더불어 소일거리가 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 시간 을 걷는 산책에 집착하고 마치 소설속의 이야기를 추적하듯 빈집의 변화를 관찰했다. 밤잠을 설친 날이면 심신이 구겨져 억지로 일어나 내부 돼지를 극복하고 집을 나서야 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변모한 집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신체적인 움직임에 시동이 걸리면 모토에 열기가 생긴다. 산책이 조식만큼이나 중요하여 내 생활 프로그램으로 실천하는 나에게 이 빈집은 내 세계에 상상의 날개를 붙였다.

이제 들어와 짐을 풀 새 주인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집안부의 구조는 물론 그 집을 지어서 살다 뿔뿔이 헤어져 떠나간 농부 가족들을 생각했다. 일 많은 농가의 여주인은 몇 명의 아들을 낳아 키워서 일차대전에 보냈을 것이고, 전지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은 아들이 낳은 아들은 히틀러 유겐더에 가입하여 군인이 되었을 것이고 러시아의 빙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숲속의 이집을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이집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밤을 새워 이집의 역사를 들을 것이다.

빈집은 바람처럼 떠나간 사람들을 잊고 새 주인이 입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은 베를린시가 네 구역으로 나누어질 때 러시아 관할구역으로 공산주의 시스템 통치로 반세기를 버틴 곳이다. 집주인은 농지를 뺏기고 살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배를 타고 유럽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통일정부는 살아남은 후손을 찾아내어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연락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땀 냄새가 밴 집인데 새 주인이 들어와 침체된 집안의 공기를 휘저어 새 냄새로 채워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집수리를 위한 준비로 온갖 자제를 실은 짐차가 헌집 앞의 주차장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일꾼들이 집안으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집 앞의 거리와 정원이 공사장으로 변했다. 얼마 후면 빈집이 사람의 소리와 인간 생활에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일꾼들은 터키인들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며칠 후에 터키인 집주인의 이름이 우체통에 붙었다. 터키 일꾼들은 집주인의 지시 하에 비어있던 집을 수리하며 집의 모습을 바꾸어 갔다. 정년퇴직에 들어간 노부부가 딸 가족을 동반한 두세대의 터키 가족이 이 두 집에 제각기 집 주인으로 들어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들이 태권도 도장을 차려서 살고 있는 데 이 빈 집을 발견 한 것이다.

문화제보호로 여러 가지 건물보호를 위한 지켜야할 규칙이 많지만 집주인으로 살다보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살면서 수리하고 수리하다보면 손에서 떨어져 본의 아니게 파손될 것들이 많을 것이고, 새것으로 바꾸다보면 그들의 집이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온 가족을 보호하게 될 알라신이 함께 입주하여 거실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앉을 것이고 침실의 천정에서 집주인이 잠에 들면 온 가족을 지킬 것이다.

일꾼들ㅇl 긴 나무판을 들고 다니는 공사장을 피해 나의 산책코스가 당분간 바뀌게 되었다. 길을 건너지 않고 사선도로를 따라 걷다가 제육장 뒷골목을 통해 공원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올 때는 이십분 정도 더 걸어서 돌담교회 앞을 지나 집으로 왔다.

주인을 만난 빈집의 외모는 나날이 달라졌다. 집의 뒷모습과 기와로 덮인 지붕은 손을 대지 못한다고 했는데, 집 청소를 한 흔적이 지붕 끝까지 나타났고 퇴색되었던 벽돌의 색깔이 다시 원 색깔로 돌아갔다. 농가였지만 워낙 튼튼하게 지어 두 세기를 거쳐 30년 전쟁과 두 세계대전을 손색없이 극복한 잡이다. 60년 사회주의 동독을 거뜬하게 이겨 나왔다. 농가로써 지어졌지만 문화제로 보호를 받을 만도 한데 터키가족이 주인이 되어 독일문화제 보존을 하게 된 셈이다.

그 다음해 봄에는 집 앞의 텃밭이 곱게 정리되어 잔디 씨를 뿌리고 땅을 촉촉하게 물을 준 흔적이 있고 울타리 옆으로 상록수를 심어 사철 초록 담을 만들었다,

어느 날인가 산책에서 돌아 나오는데 그 집 앞 정원에 그때까지 보지 못한 나무가 심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나무 막대기를 꼽아 주위를 보호하고 가지를 쳐서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묘목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집을 지나갈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나무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물을 준 흔적이 있어 집주인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어디서 많이 본 내가 아는 나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1240호 14면, 2021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