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운명

류현옥

사십 여 년 전 어느 심리학 세미나에 참석하여 들은 사례이다 .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강사가 생각해낸 이야기인지 기억할 수 없다. 사건의 장소가 지구촌의 어느 곳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의 특성이 담겨있는 것 같지만 유럽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이웃사람들도 그렇고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모퉁이에 사는 사람도 그렇고 모두 아는 사람들로 안면이 있고 이름과 성은 물론 가족상황까지 환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의 옛말로 표현하자면 그 집의 밥숟가락이 몇 개라는 것까지 아는 이웃 간의 사이였다.


어느 날 이 동네의 한 대가족이 사는 큰집에 불이 났다. 온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화재진압을 하여 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 집은 완전히 소각되었다. 동네 아낙네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그날 밤 잘 자리를 내주었다.
다음날 동장은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집회를 열었다. 집을 잃은 이웃을 위해 대책을 강구하는 회의였다. 동장은 전 가족이 노숙자가 된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웃사랑을 발휘해야한다고 호소했다.
제일먼저 소각된 집이 서 있던 대지 위에 새로 집을 짓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힘을 합치면 빨리 집이 완성될 것이고 다시 한 가족이 같이 살게 될 것이다. 다음날로 대지위에 쌓여있는 잿더미를 제거하는 공사를 시작해야하는데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문제가 있다. 집이 완공될 때 까지 집 잃은 가족을 동네사람들이 나누어 숙소를 제공해야 된다고 공고 했다.
동장은 미리 준비한 종이 한 장을 바지주머니에 서 내어 읽어 내려갔다.
초등학교 에 다니는 세 아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두 집에서 나누어 맡고 아이들의 부모는 젊은 부부가 사는 집 거실에서 당분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할머니는 여유 있게 혼자 사는 동네의 유일한 독신자가 맡겠다는 승낙을 했단다. 이 기회를 통해 협조하신 여러분께 감사한다는 인사말로 동민회를 끝냈다 .

할머니를 모실게 된 독신자 남자는 항상 예의바르고 성실한 공무원으로 칭찬받는 동민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동네잔치나 사람들 모이는 장소를 피하여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사람들은 동장이 할머니를 홀아비 집에 맡긴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동장역시 부지런한 할머니는 혼자 사는 남자 살림살이 부엌일을 하여 도움을 주게 될 것일 고 더 외곬이 되지 않게 아침저녁으로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며 혼자서 자신의 결정에 은근히 만족했다. 이날 사람보이는 곳을 싫어하는 남자는 불참이었지만 미리 찾아가 언약을 받았다는 것을 발표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남자에게 동네사람들이 모르는 생활 습관이 있었다. 그는 출근하여 혼자 사는 집안에 들어서면 가방을 내려놓은 후 옷을 벗었다 . 양복과 와이셔츠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속옷을 벗었다. 팬티와 티셔츠를 벗고 양말 까지 벗어서 화장실에 있는 빨래 통에 갖다 넣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부엌에 들어가 혼자 먹을 저녁식사 준비를 하여 나체로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들어갔다.
일요일 오후 4시면 정장을 하고 집을 나가 두 시간 산책을 하는 것으로 한주일의 막을 내렸다.
동네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예의바른 남자였다.
안면이 전연 없지 않은 할머니지만 얼마간 한집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생활 변화로 스트레스라는 것을 감안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생활신조는 어려운 사람은 도와야하고 특히나 동네의 우두머리 동장이 찾아와서 부탁 하는 것은 거절해서는 안 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했다.
그는 종교적인 모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고 사회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이든 동네 사람들은 외롭게 혼자 사는 그를 걱정했고 이런 계기로 동네의 공동문제 에 간접적으로 나마 참여하다 보면 혹시라도 동네의 젊은 과부와 짝이 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꿍꿍이속으로 은근히 기대를 했다.
남자는 불편하지만 할머니와의 공동생활이 집이 지어지면 끝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비장한 각오로 할머니를 맞을 준비를 했다. 파자마와 집에서 입을 허드레 옷을 사고 냉장고도 가득 채웠다.


늦가을에 접어들어 찬비가 내리기시작하자 새집 공사는 얼마간 중지되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집이 완공되어야한다고 서둘던 사람들은 마음을 느슨하게 먹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손님으로 한집에 살게 된 집 잃은 사람들과도 조금 씩 적응이 되어갔다. 오직 홀아비 남자는 적응을 못하고 그의 심기는 날이 갈수록 불안 해져갔다. 밤잠을 설친 날은 허둥지둥 근무처에 도착하면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할머니는 부엌일은 물론 온 집안 닦는 일로 소일했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와 몇 번 승강이를 했지만 나이든 분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양보하고 상에 오르는 음식을 먹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그날만 무사히 근무를 하면 이틀을 쉬게 된다.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이틀 동안은 하루 종일 잠을 자겠다고 생각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며칠 전부터 속이 안 좋아 고생을 하던 중인데 배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간신히 도착한 근무처 화장실에 앉자마자 설사가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리며 장을 비웠다. 점심은 일부러 먹지 않았다.
피로와 허기로 휘청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뒷방에서 자고 있는 모양인지 기척이 없었다. 할머니가 한집에 살고부터는 집안에 들어와도 마음을 다 풀어놓을 수 없고 내 집같이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가 주인처럼 반갑게 그를 맞았다. 주객이 전도 된 것이다.
몸이 아픈 그날은 유독 더 남의 집에 온 느낌이었다. 그는 기운을 잃고 앉았다. 다시 화장실에 가서 끝나지 않은 설사 변을 보고 거실에 돌아오자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가 팬티를 벗어 양말과 함께 화장실 빨래 통에 넣고 거실로 나오는데 할머니가 뒷방에서 나왔다.
할머니는 남자를 보자말자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삿대질을 하면서 감히 어디 누구 앞에 알몸뚱이로 섰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놀란 남자는 상황판단을 할 여유도 없이 문을 열고 거리로 뛰어나갔다
자신이 나체라는 것도 잊고 아침마다 검은 가방을 들고 사무실로 가던 집 앞의 거리를 뛰었다. 뒤 따라 나온 할머니가 삿대 짓을 하면서 저놈 잡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집안에서 일을 하던 주부들이 고함소리를 듣고 나왔다. 누군가 부른 경찰차가 와서 남자를 담요로 덮어 씌어 차안으로 밀어 넣어 정신과 병원으로 옮겼다. 남자는 그날로 정신과병원 격리실환자가 되었다. 그가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의 보호를 받으며 병원 정원을 산책을 할 때면 그에게서 정상인의 자취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복용하는 약물효과가 이미 온몸을 지배하여 그는 완연하게 정신병 환자였다. 건강했던 공무직원이 정신과 환자가 된 것이다. 몇 달 후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은 정신과 환자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을 알아야 한다. 정신과병원의 치료를 통해 자기가 정신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행동을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베를린 근교에서 일어난 가족 집단 자살사건이 보도되었다.
위의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잔인한 사건이다. 사회적 동물 인간의 생활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우선 시시각각으로 변천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쓸데없이 신경조직에 부담이 될 일도 정보로써 알고 넘어가야한다. 더 복잡하고 더 쇼킹한 정보가 뒤따르기에 뉴스 면역성을 키워야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전해지는 뉴스를 미리미리 가려서 쓰레기로 쌓이지 않게 버려가며 살아야 하는가하면 소화해서 찌꺼기를 배설해야한다.
완고한 생각으로 고립되어 고지식하게 살면서 적응 안 되는 불편한 것은 거절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하며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다보면 사회와 멀어지고 사회를 거절하는 측면 사상가들 가까이에 서게 된다. 그리고 소수에 속하는 측면사상가들이라고 무조건 무시할 수가 없다. 이들은 똘똘 뭉쳐 저력이 있고 설득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현대 인간사회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나 의견존중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그들의 입을 막고 강제로 금지할 수 없는 일이다
베를린 동쪽에 자리한 3000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다. 크림닉 호수를 둘러싸고 자리한 전원 동네는 방치되었던 옛 동독 구역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잡목이 울창한 숲속에 띄엄띄엄 정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대도시를 피하여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든 자연주의자 들이다.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모여 사는 곳이다
W 가족 역시 3년 전 그곳으로 세 딸을 데리고 새 집을 지어 이주해 들어왔다. 부부는 둘 다 40살이었고 직업이 교사였다. 10살, 8살, 4살의 세 딸에게 행복한 유년기를 약속하고 오랫동안 갈구해온 이상적인 가정의 꿈을 성취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부풀었다. 직업학교 교사인 남자는 부업으로 이작은 동네 뿐 아니라 부근 의 여러 곳에서 부탁하는 이벤트 행사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물 전문가로 정원에 우물을 파서 자연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불려 다니며 쏠쏠하게 수입을 올렸다. W의 아내는 좀 떨어진 작은 도시의 단과대학에서 일했다.
12월 첫 주 토요일 날 오전 W 가족의 이웃사람에게 눈에 뜨이는 일이 있었다. 세 아이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가야할 시간인데 보이지 않았고 알 수 없는 조용함이 집을 감싸고 있어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에 누운 시체를 발견하고 곧 긴급전화를 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앰뷸런스가 도착되었다. 집안에서 온 집안 식구가 여러 방에 흩어져 시체로 발견되었다.
W 부부는 물론 세 아이모두가 총살로 죽은 것이 판명되었다. 며칠에 걸려 범죄 전문가의 검사로 판겸된 것은 외부인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이 나타났다. 발견된 유서에 의해 W 씨가 자고 있는 세 딸과 아내를 총살하고 자결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매일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 이드라마는 지난 2년 동안 지구 위를 휘저은 코로나 비루스가 주 원인이었다. 매스컴을 통한 보고로 시작한 코로나 판데미가 이곳 주민들에게 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 마스크를 써야하고 사람들이 만나는 잔치가 금지되자 이벤트 모임이 불가능 해지자 W 씨의 중요한 부수입이 끊어졌다. 2년이 지나면서 네 번째 코로나비루스 물결이 밀려왔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국가 방역대책을 반대하는 데모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 목가적인 동네에도 비루스의 파장으로 국가의 방역대책이 강조되었다.
W 씨의 불만이 커지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동기가 되었다. 정치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세상이 아니다. 동독 시회주의체제 아래서 오랫동안 참고 살아왔는데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서 비루스 예방책이 사회적 규율이 되어 개인의생활에 제한을 가할 수는 없다. 파티에 모이는 인명 숫자를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다.
남자는 측면 사상자 (Querdenker) 클럽에 가입하였다. 비루스 방역대책 반대데모에 참석하고 바지스(Partei Basis) 당원이 되어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섰다. 코로나 비루스 존재를 부인하고 예방주사를 거절했다. 우익 극단주의자가 되면서 예방접종 가짜 패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배포했다. 노동주는 출근하는 직원들을 입구에서 예방증명서를 검열해야한다는 결정을 국회에서 발표하였다. 그가 만든 가짜 예방접종 증명서를 내놓은 아내가 근무처에서 들통이 났다. 그날로 W 씨는 공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난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에 이르렀다.
예방접종 증명서를 위조한 죄는 단순한 국가 공문서를 위조한 것과 달리 다른 사람의 생사 문제가 집결 되어있어 중죄에 들어간다는 것을 그는 감안했다. 직장동료들의 생사에 영향을 주는 가짜 예방증명서를 노동 주에게 내놓은 아내 역시 공범자다. 직장에서 해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이웃 사람은 W 씨의 경제 사정역시 “물이 목에까지 차올라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W씨는 진태양난의 상황 속에서 점점 어둠속으로 빠져들면서 과격한 우익분자가 되었다.
화기애애하다고 자신을 가졌던 가족 위에 검은 먹구름이 덥혀오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고 생각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극단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가족공동 자살을 아내와 함께 결정한 일인지에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지역의 중요정치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절초풍할 사건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W 씨와 같은 자세를 취해온 측면 사상가 회원들은 정부의 방역대책이 한 가족을 몰살시켰다며 정부를 대상으로 법정에 고소문을 제출했다. 이 사건을 상세하게 발표한 중요 신문은 관례로 자살 사건은 이렇게 상세하게 보고하지 않는데 이번일은 중요한 사회정치적 배경을 포함하는 문제이기에 발표한다고 썼다.
세상이 변했다. 중국에서 세워둔 쌀자루가 넘어지면 그 파동이 온 세계에 퍼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2년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비루스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전 세계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자, 전문가들은 단순한 독감과 다른 판데미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경고 했다.
그동안 전례 없는 최고의 속도로 백신이 발명되어 정부는 접종을 강구하고 예방접종을 통한 면역력만이 전 세계에 확산 되는 판데미 균을 자멸시키는 일이라고 설득했다. 측면사상가 (Querdenker )들이 코로나비루스의 존재를 부정하고 예방접종의 캠페인을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고 반대하고 시위를 하는 동안 코로나 비루스는 변이에 들어갔다. 변이성 비루스는 세대를 바꾸면서 전염성을 높이고 빠르게 발전했다.
무한정한 자유에 대한 갈구! 내 몸은 내 것으로 내 마음대로 한다는 원칙의 시위로 내가 낳은 자식들은 나의 소유물로 내 마음대로 내가 죽을 때는 데리고 간다며 W 씨는 온 가족을 데리고 코로나 세상을 떠났다. 온 가족의 사랑을 받던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는 경찰차를 타고 주인 없는 개들이 모여 사는 보호소로 운반되었다. 불려온 동물심리학자는 개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상처의 정도를 테스트 하고 새 환경에 적응 할수 있는지도 검진할 것이다 .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가족이 자기를 두고 죽은 이유를 이해시킬 수는 없다. 개의 신경조직에 입력되어있는 주인에 대한 생생한 기억 역시 세월의 흐름과 함께 개의 뇌리에서 사라질 것이다.